냄새가 사라지면 숨이 끊어질까
감기에 코와 목이 거북하다. 냄새가 사라진다. 오픈하기 전 스무 개의 양파를 썰었다. 알싸한 매운 내가 없다. 도마를 내리치는 삭도 소리만 남는다. 대파와 향신료 냄새도 사라졌다. 후드가 윙윙대는 주방이 고요하다. 너의 냄새는 없고 나의 냄새도 사라진다. 기억으로 냄새의 흔적을 좇는다.
기억의 냄새라도 붙잡아야 산다.
고요하면 무섭다. 세상으로 들어와야 편하다. 연거푸 킁킁거려본다.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다. 호흡을 해야 한다. 호흡은 날숨과 들숨이다. 날숨은 부교감신경을 자극한다. 후 날숨을 깊게 뱉는다. 날숨보다 들숨이 가빠진다. 눈이 확장되고 심장이 벌렁댄다. 냄새가 호흡을 장악한다. 기억의 냄새라도 붙잡아야 산다.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뛰어가면 바다가 보이고 걷다 보면 계곡을 만난다. 물과 녹음이 마주하는 곳에 냄새가 있다. 냄새는 있어도 느낄 수 없는 자연에 동화된다. 냄새는 맡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다. 감각으로 냄새를 본다.
겨울이다. 아이가 숨기 좋은 작은 방이 있었다. 동네 아이와 놀다 잠이 들었다. 덥고 답답해서 뒤척이다 동치미를 마시는 꿈을 꿨다. 턱을 타고 서늘한 국물이 흐른다.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이틀 후 병원에서 깼다. 같이 놀던 아이는 괜찮았다. 투명한 냄새가 감각을 죽인다.
날숨은 호흡이 아니다. 관계에 맞선 선택이고 심리였다.
선잠에서 깨어났다. 잠이 덜 깨 느껴지는 코끝의 비린내가 송곳처럼 찌른다. 무서운 냄새였다. 소리쳐 엄마를 불렀다. 엄마의 허리춤을 잡고 울기 시작했다. 생선을 굽는 엄마의 몸에서 안전한 냄새가 난다. 내 편인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를 보았다.
낯선 곳에서 사람을 마주칠 때가 있다. 본능적인 매뉴얼이 있다. 얼굴을 보고 상대의 움직임을 느낀다. 그래야 감각으로 냄새가 느껴진다. 냄새로 판단을 한 후 다가설지 물러날지 선택한다. 피해야 할 사람이면 내 호흡에 집중했다. 들숨을 뺀 날숨만을 가쁘게 쉰다. 나를 보호해야 했다.
냄새를 느끼는 행위는 어쩌면 고통에 가깝다. 잘못된 결정을 할 때가 많다. 걸러야 하는 관계는 괴로웠다. 다가가지 못하고 주변에 머물기만 했다. 정답지가 없는 냄새의 오류이다. 냄새를 벗어난 너와 내가 그립다. 다가가기보다 물러서야 했다. 아직도 세상 끝에 닿아 날숨만 헉헉대는 거 아닐까.
냄새와 호흡이 하나인 걸 안다. 냄새를 느끼면 호흡을 멈췄다. 살려면 날숨을 쉬어야 했다. 들숨을 쉬면 허파가 팽창해 터질 것 같았다. 냄새와 호흡은 함께이다. 호흡이란 행위를 통해 날숨을 선택했다. 날숨은 호흡이 아니라 관계에 맞선 심리이고 어려운 선택이었다.
호흡과 냄새는 기억 속에 영원하다
순천향병원 중환자실에 아버지가 머문 것은 3시간이다.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기억의 범위 내 최초이다. 아버지는 의사에게 말을 하셨지만 나에게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의 눈을 보지 않았다. EKG monitor만 주시했다. 아버지에게 익숙하지 않은 냄새가 느껴졌다. 날숨을 쉬어야 했다. 날숨이 되지 않고 들숨만이 느껴졌다. 숨이 가빠 고통스러웠다.
아버지의 호흡이 짧아진다. 들숨도 날숨도 멈추었다. 여전히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있었다. 들숨도 날숨도 끊어질 것 같다. 중환자실의 냄새가 사라진다. 아버지와 나의 냄새도 사라진다. 맞잡은 손만이 축축하다. 냄새는 기억의 회랑에 남는다. 호흡과 냄새는 기억 속에 영원하다. 숨이 멎을 만큼 질긴 혈육의 냄새를 기억한다.
평생 선택한 날숨은 긴 한숨이었을까?
살기 위해 호흡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호흡 안에서 숨을 쉰다. 숨을 쉬지 않아도 죽는다. 나는 숨을 선택한다. 냄새를 만나면 숨을 선택한다. 호흡이 끊어져도 죽는다. 선택하지 않아도 죽는다. 감각으로 최선을 선택한다. 위태한 숨쉬기를 한다.
246,375,000번 호흡을 해왔다. 천천히 숨을 쉬고 싶다. 날숨도 들숨도 쉬고 싶다. 선택하는 숨에 지친다. 냄새를 느끼고 싶지 않다. 너의 냄새는 없다. 내가 느끼는 감각일 뿐이다. 내게 냄새가 있다는 것이 돌연 이해가 된다. 나처럼 너도 선택했을 것이다. 냄새와 호흡의 선택에 선다. 난 늘 도망가기를 꿈꾼다. 평생 선택한 날숨은 긴 한숨이었을까?
“위대한 것, 끔찍한 것, 아름다운 것 앞에서도 눈을 감을 수는 있다. 달콤한 멜로디나 유혹의 말에도 귀를 막을 수는 있다. 그러나 결코 냄새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다. 냄새는 호흡과 한 형제이기 때문이다.” - 패트릭 쥐스킨트,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