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드웨인 Jan 22. 2018

영화 만추, 그리고 러브레터

중국 여자와 일본 여자를 만나


쓰러지지 않으려면 날것이 필요하다


일하는 시간이 점점 새벽으로 간다. 아침이면 자유로가 멀리 보인다. 작은 방으로 돌아와 의자에 앉는다. 서서히 근육이 풀어지며 숨은 세포가 움직인다. 새벽이 편하지만, 정상은 아니다. 정상과 비정상이 맞물려 있는 곳에 서 있다. 면역은 양지에 걸쳐있다. 밝은 곳은 멀기만 하다.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며칠 감기가 와서 몽롱한 채 부유했다. 바닥에 내려서고 싶다. 죽을 듯 아파도 병원은 무섭다. 누구나 사정이 있듯 나만의 이유가 있다. 약을 독처럼 주문해 제조한다. 감기가 독약보다 강하다. 바이러스와 독이 만나 나를 죽인다. 머리가 핑 돈다.


의자에 앉아 기지개를 켠다. 머리는 몸에 끊임없이 경고한다. 쉬고 싶지만, 세포와 신경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감염이 쉬운 날이다. 한줄기 면역세포도 보이지 않는다. 쓰러지지 않으려면 날것이 필요하다. 핏물이 배인 고기도 좋다. 주저하는 아픔이 밴 영화는 더 좋다.




만추(晚秋) 러브레터 (Late Autumn, 2010) 감독 : 김태용(1969)
현빈 (1982): 훈
탕웨이 (1979) : 애나


모호한 것은 몰입이 깊다


만추(晚秋)란 영화가 있다. 영화를 보지 않아도 탕웨이는 안다. 탕웨이는 애나다. 애나인 탕웨이는 그녀의 음성으로 노래한다. 유튜브를 뒤져 만추의 탕웨이를 찾았다. 헤드폰을 쓰고 눈을 감는다.


중국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어로 부르는 노래에 미친다. 漢字 하나하나에 기억이 숨어있다. 음으로 덮인 기억이다. 곡절과 굴곡이 덜해도 가슴이 뛴다. 모호한 것은 몰입이 깊다.


속삭이듯 멀리 울리는 탕웨이의 음성은 낮은 안개 같다. 안개를 헤매다 마지막 소절을 만난다. '晚秋不晚 又何妨.' 네 마디를 부르고 나지막이 한숨을 쉰다. '又何妨'이란 다음 가사를 불러낸다. 찰나의 그녀 한숨이 영겁이고 회귀 같다. 가슴이 세차게 덜컹거려, 비어져 나온 한숨이 기억을 불러낸다.


러브레터 (Love Letter, 1995)
감독 : 이와이 슌지 (1963)
나카야마 미호 (1970): 후지이 이츠키/와타나베 로코토
요카와 에츠시 (1962) : 시게루 아키바
음악 : Remedios (레이미, 1965)

 

눈물이 기억으로의 회귀를 인식한다


탕웨이는 일본 영화 [러브레터]의 누군가와 닮았다. 닮지 않았지만 닮았다. 나카야마 미호는 와타나베 히로코이면서 후지이 이츠키이다. 후지이 이츠키는 대출카드 앞면에 쓰인 후지이 이츠키란 이름을 본다. 뒤꿈치를 들어 책을 꽂는다. 서가에 꽂히듯 유년의 사랑은 기억을 닫는다.


잃은 시간을 찾기 위한 기억이 필요하다. 끌리듯 기억을 한다. 우연처럼 대출카드를 뒤집는다. 그녀를 그린 후지이 이츠키의 그림을 본다. 오인된 기억에서 돌아와 그의 사랑을 본다. 눈물이 기억으로의 회귀를 인식한다.



잃은 기억은 소멸하지 않고 숨어있다.


애나와 후지이 이츠키는 닮았다. 나카야마 미호의 눈물과 탕웨이의 한숨은 닮았다.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픔이 깊다. 아픈 것은 아름답다. 작고 연약하지만 아름답다. 어쩌면 아픔은 아름다움의 다른 이름일지 모른다.


사랑은 정신이자 물질이다. 동일한 성질을 갖는다. 끌림에 하나가 되려 한다. 일체와 충일의 스킨십을 원한다. 네모이든 세모이든 끝을 만나 이루려 한다. 이룸을 위해 시간을 만들고 시간이 만들어져 기억된다. 기억되어 시간이 흐르면 잃는다. 잃은 기억은 소멸하지 않고 숨어있다.




Late Autumn, 汤唯


过去的阴影紧随我流浪

지난 일들이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녀요

眼前的世界麻木得坦蕩

눈앞의 세상은 그저 무감각해져만 가네요

不失望 也避免期望

실망하지 않아요 기대 또한 없어요


爱情足够让两个人难忘

사랑은 서로를 잊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충분해요

孤独却只有我一个承担

남은 이 외로움은 한 사람만의 몫이에요

谢谢你 走过我身旁

고마워요, 나와 함께 걸어줘서


陌生的你像熟悉的阳光

낯선 당신은 마치 익숙한 햇살처럼

提醒我身处在地球游蕩

내가 이 세상에 살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죠

原来 我还会看看到慌乱

나는 당신 때문에 허둥대기도 할 수 있는 사람이네요


爱不是不任性就能反抗

사랑은 내 마음대로 저항할 수가 없죠

风来时浪花也只能狂放

바람이 불면 물보라는, 그저 사방으로 흩어질 뿐

不这样 又怎样

그렇지 않다 한들, 또 어떠하겠어요


不问你什么是真正喜欢

진정으로 좋아한다는 게 무언지 묻지 않겠어요

不去想永远是如何短暂

영원이란 얼마나 짧은 순간인지도 생각지 않겠어요

只要我还会期望在身旁

단지 당신이 내 곁에 머물러주길 바랄 뿐이에요


爱不是一个人所能抵抗

사랑은 사람이 막아낼 수 없는 거예요

错误有你和我一起补偿

잘못되더라도 우리 함께 채워나가요


等什么 又怎样

무엇이 기다린다 한들, 또 어떠하겠어요

晚秋不晚 又何妨

가을은 늦지 않았어요, 다 괜찮아요


http://youtu.be/ApAsj4HVGCg


작가의 이전글 터럭만큼 용서받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