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 않아 웃는다.
꿈을 꿨다. 눈을 뜬 채 꿈을 꿨다. 감으면 사라질까 눈을 뜬다. 닿고 싶은 곳이, 보고 싶은 것이 있다. 혹은 그렇지 않은지 모른다. 돌아가지 못해 잠시 멈춘다. 선명한 시간들이 눈 안에 있다. 깰 수 없으니 특별한 꿈이다.
기를 쓰고 해야만 하는 것일까? 회귀의 본능은 아니다. 자각 따위도 아니다. 숨 쉬듯 자연스러울 뿐이다. 명절에는 집에 간다. 부모님을 뵐 수 있어 좋다. 혼자가 아니라 좋다. 곰치국이 있어 좋다. 빨간 등대가 있는 정라진이 좋다.
그곳에 닿는 일은 쉽지 않다. 298km의 거리는 고통을 수렴한다. 도착시간의 예측이 불가능하다. 용인, 만종, 문막, 원주, 횡성, 진부. 수월하게 지나는 곳이 없다. 과거의 영동고속도로는 2차선이었다. 추월이 없으니 우월도 없다.
스물이 넘어서도 멀미를 했다. 버스를 타면 숨을 달리 쉬었다. 긴 호흡은 고통을 줄여준다. 대관령길 어디쯤 늘 멀미를 했다. 숨이 막혀 좌석 위로 부유한다. 700리 길은 도망갈 곳이 없었다. 그래도 꾸역꾸역 실려 간다.
휴게소는 오래된 폐교 같았다.
이십 년 전, 아들을 보러 구정에 맞춰 한국에 왔다. 돌도 안 지난 아기를 안고 10:00 출발 시골행 버스를 탔다. 출발하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눈이 온다. 도로가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했다. 히터를 켠 버스 안은 거북한 냄새가 났다. 숨을 달리 쉬어도 숨을 곳이 없다. 고통은 깊었다.
느리게 8시간이 흘렀다. 아기는 울고 사람들은 웅성거린다. 휴게소는 멀고 간이 화장실도 없었다. 하얀 눈이 괴물로 변하는 잔혹 동화 같은 밤이다. 밤 아홉 시쯤 새말휴게소에 도착했다. 매점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물도 우유도 빵도 떨어졌다. 아무것도 없는 휴게소는 오래된 폐교 같았다.
각각 다른 시간에 출발한 수십대 버스가 밤 열 시쯤 한 곳에 모였다. 기괴한 풍경이었다. 기사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 대관령 길은 통행이 금지된 상태였다. 돌아갈 수 없으니 어쨌든 가야 했다. 통제 명령이 떨어지지 않은 미시령을 넘기로 결정했다.
떡국은 먹지 않았다. 늙지 않아 기뻐 웃는다.
미시령 길은 대관령보다 험하다. 깊은 길을 밤새 넘었다. 그치지 않고 눈이 내렸다. 칠흑 같은 밤에 낭떠러지 같은 도로를 기어오른다. 버스 안의 누구도 잠들지 못했다. 줄 이은 버스의 붉은 후미등만 따라갔다. 긴 밤이었다.
아침 무렵 미시령 길 정상에 도착했다. 지쳐 울지 않는 아이도, 퀭한 눈의 사람들도, 온통 하얀 정상을 본다. 초월한 아름다움은 여리지 않다. 눈은 그쳤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양양과 강릉을 거쳐 목적지에 도착했다. 28시간 만의 여정이었다. 기를 쓰고 간 그곳에 집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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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설은 특별하다.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 눈을 뜬 채 꿈만 꾸었다. 멀미도 눈도 없다. 냄새도 아기도 집도 없다. 떡국은 먹지 않았다. 늙지 않아 기뻐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