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든 잘 지내.
좋은 기회다. 신병 훈련을 마친 아들이 자대 배치를 받았다. 평택 미군 부대 안 어디쯤이다. 그에게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보고 싶어도 쉬 보지 못했다. 갇혀있는 그는 도망갈 곳이 없다. 가면 볼 수 있을 것이다. 적응하기 전이라 반가워할지도 모른다.
하늘이 흐려 다문듯한 일요일이다. 시외버스로 평택에 갔다. 피자나 치킨집이 눈에 띄지 않았다. 문 열기 전인가보다. 기다려 고르곤졸라 피자를 샀다. 길을 물어 시장을 찾았다. 닭강정, 어묵, 만두, 떡볶이, 순대를 샀다. 검정 봉지 네 개만큼 두근거린다.
시골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부대에 도착했다. 절차를 밟고 들어간 면회실은 작았다. 여남은 개의 테이블이 차 있었다. 애인과 군인 커플 셋, 가족과 함께인 군인 넷. 음식을 올려놓고 왠지 뻘쭘해졌다. 면회 온 친구라고 우기기에는 늙었다. 아들을 만날 생각에만 집중했다.
눈이 오기 시작했다. 면회실 풍경이 바뀐다. 면회 온 가족들이 떠나고 애인들도 갔다. 새로운 애인과 가족들이 왔다. 기다려도 아들이 나오지 않는다. 신병이라 준비가 오래 걸리나 보다. 식어가는 음식처럼 두근거림도 잦아든다. 풍경이 다시 바뀔 때쯤 교대 근무를 한 병장이 다가왔다.
"OOO 이병 면회 오신 분입니까?"
"네."
"오늘 면회가 안 될 것 같습니다."
"네?"
"OOO 이병이 아파서 격리 치료 중입니다."
"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갓 자대 배치를 받은 아이가? 면회를 못 할 정도로 아파 치료 중이라고? 격리됐다고? 물어도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자세히 아는 것 같지도 않다. 면회실 안이 비현실 같다. 테이블 위 봉지들이 눈에 밟힌다. 두근거림이 걸려 있다.
"이 음식이라도 전해줄 수 있나요?"
"부대 내 음식물 반입은 불가합니다."
"아빠가 면회 온 건 알고 있나요?"
"전달했습니다."
"왜 몇 시간이 지나서야 알려주죠? 정말 괜찮나요?"
"아직 보직을 받지 않아 신병을 조금 전에 파악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화내서 될 일이 아니다. 궁금한 것투성이지만 해소되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돌아섰다. 검정 봉지 네 묶음도 챙겼다. 버릴 수는 없다. 700m 밖 버스 정류장까지 걸었다. 왔던 길인데 멀고 무겁다. 눈이 꽤 온다.
아프면 치료해 나으면 된다. 면회가 안된다면 다음에 와 보면 된다. 얼굴을 봤어도 헤어질 땐 쓸쓸했을 거다. 고단한 거리였지만 기쁘게 왔다. 두근거림도 두 손에 가득했다. 별거 아니다. 그런데 왜 이리 뻐근할까. 길이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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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가 시원찮아 한참을 씻지 않았다. 더 참을 수 없을 때 샤워했다. 온수인데 물이 뜨겁지 않다. 화장실은 바깥과 온도 차이가 없다. 참고 씻었다. 춥지만 개운하다. 옷을 갈아입는데 주저앉았다. 뚝 소리도, 징후도 없었다. 움직일 수 없어 침대를 잡고 일어났다. 허리가 미칠 듯 아프다. 몸을 젖힐 수가 없다.
허리가 어딘지 드디어 알았다. 통증이 있는 그곳이다. 아파야 알게 되는 것일까. 십 년 전쯤 췌장이 어딘지 알았다. 다리를 다치고 난 후 무릎의 위치를 알았다. 이제 세 번째, 허리를 알게 됐다. 더는 알고 싶지 않다. 아들이 어디쯤 있는지 알 것 같다. 그래서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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