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드웨인 Feb 21. 2018

엄마의 저울

네가 나의 틸트 센서였다.

못에 박히듯 고정되어 머무른다. 남자는 여자의 뒷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떠나는 이는 남자였다. 몰래 돌아보면, 여자는 항상 남자를 보고 있었다. 발목을 잃은 것처럼 하염없이 서서. 세상은 흐르는데 그녀만 멈췄다. 멈추고 줄어들어 사라진다. 떠나는 그는 입술을 깨문다. 내 편 없는 곳에 가려면 그래야 한다. 그녀는 따스한 곳에 남을 것이다. 차가운 머리가 감정을 속인다.


떠나는 이와 남겨진 사람은 뭐가 다를까. 질량과 두께 차이만큼 다른 슬픔일까. 살아온 날만큼 눈대중할 수 없다. 슬픔에 대한 질량과 두께는 수학 같지 않다. 떠나는 남자는 무겁다. 아무렇지 않은 척, 더께처럼 두터워진다. 그의 저울은 수평이 맞지 않는다. 기운 저울을 가진 그는, '그녀'의 아들이다.


기억나지 않은 아버지의 기일, 엄마가 서울에 오셨다. 넘어져 다치셨다는 왼손에 붕대가 감겨있다. 오른손에는 보따리, 작은 음식들이 들었을 거다. 고단한 여정이지만 길어야 이틀 머무르고 내려가신다.


다리가 불편하다는 핑계로 지하철역까지만 배웅했다. 계단을 내려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본다. 기우뚱 걷는 어깨 아래, 다친 왼손이 대롱거린다. 깊은 계단이 밉다. 어머니의 뒷모습을 본다. 하염없이 본다. 마음이 무너져 쏟아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모든 것이 정지한다. 발목이 못 박히듯 고정된다. 기울어 있던 저울이 점점 올라간다.


"어렸을 때 앨범 집에 다 있어요?"

"응? 아들 것은 다 있지, 내 사진은 이사하며 다 버렸어."

"아니 그 많은 걸 왜 다 버리셨어요? 제가 보관하면 되는데."

"살아보니까 남기는 게 의미가 없어, 당대에서 끝나는 게 좋아. 네 아들이나 챙겨."


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엄마에게 여쭸다.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무슨 일이 생기면 어디로 연락해야 하나요?"

"응? 교회로 하면 되지."

"아니, 이번처럼 다치거나 전화할 수 없으면 연락할 데가 필요할 것 같아서요. 비상연락망처럼."

"응, 그래 교회로 하면 돼."


짧은 대답을 한 엄마는 차창 밖을 보셨다. 어렸을 때 사진관을 잠깐 했다. 사진도 앨범도 책장 한가득이었다. 그 사진을 다 버리셨다. 당신 혼자 한 장씩 한 장씩 버렸다. 점점 작아져 사라지는 엄마, 뒷모습의 그녀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비상연락망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말을 왜 지금 했을까. 무엇을 예감한 것일까. 연유를 알 것 같지만, 나는 모른 척한다.


세월이 흘러도, 뒷모습을 보았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기울어진 저울은 맞춰지지 않는다. 수평처럼 보일 뿐이다. 기울어진 아들은 변하지 않는다. 버려진 사진들을 찾을 수 있을까. 인생은 지독하다. 심지처럼 혈관이 타들어 가 휘청이는 밤이다. 네가 나의 틸트 센서였다. 가없이 고맙다.

작가의 이전글 슬픔에 설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