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죽기도 어려운 계절이다.
세시 사십오 분 정도, 정오를 비켜선 시간이 태양을 내려 그늘을 만든다. 파라솔 아래 멍하니 아래를 보다 시선을 돌린다. 잘린 밑동을 뿌리 삼아 감나무가 일어난다. 화단 모퉁이에 쪼그려 앉아 구석 ㄱ자 여백에 정물인 듯 박힌다.
설날, 오시지 말라고 어머니께 전화했다. 혼자 계실 생각에 마음이 불편하다. 자랑 없이 늙었지만 지랄 같은 아들이다. 그래도 어머니는 올라오셨다. 아들이 좋아하는 절편을 손에 드셨다. 숨을 곳이 없어 눈물을 참았다.
그는 어머니를 침묵으로 대했다. 여동생이 오기 전 말없이 집을 나갔다. 불편했던 어머니는 동생 집으로 갔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어머니는 아이처럼 나를 안았다. 가족도 아들도 없는 명절에 홀로 남았다. 엉켜진 족보 안의 가족이 타인 같다. 탓할 수 없으니 도려낸 고통이 남는다.
연속된 일들에 숨이 멎는다. 생각할 시간 따위 주어지지 않는다. 문제가 있다. 답이 없는 문제에 답을 낼 수 없다. 달도 산적도 가슴도 부러졌다. 구석진 방에 내 시체를 남겼다. 부서진 명절을 보내고 일어났다. 나는 내가 아니다.
무릎에 힘을 줬다. 의지가 뉴런과 시냅스를 지난다. 근육 안 세포에게 일어나자 애원한다. 찢긴 근육에 이온이 눈물처럼 방출된다. 늙은 칼슘의 농도를 감지하는 트로포닌을 부른다. 팽창된 근육이 나를 밀어낸다.
시퍼런 욕이 가득한 하늘을 본다. 씨발, 몰래 죽기도 어려운 계절이다.
살아서 펄떡이는 것들을 모두 스튜 냄비에 안치고 서서히 고아 내는 일. 살의나 열정보다는 평화로움에 길들여지는 일. 그건 바로 용서하는 일인지 모른다. 타이머에서 종소리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