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한테 좋은 냄새가 나
뒤척이다 눈을 떴다. 역겨운 냄새가 난다. 벌떡 일어나 방을 살폈다. 캔들 워머는 어둡고 창은 닫혀있다. 손을 들어 냄새를 맡는다. 머리카락을 비비고, 옷을 뒤집어 킁킁거린다. 자극 없는 살 냄새만 난다. 피부와 거죽은 매일 씻는다. 찌그러진 베개가 눈에 띄었다. 코를 박고 냄새를 맡는다. 묵은 비린내가 날카롭게 찔러온다.
이틀 전 베갯잇을 세탁했다. 어디서 묻어온 것일까. 감정은 가끔 숨을 쉰다. 한 다발씩 묶인 채소 같다. 푸릇한 채 다가와 점점 시들어, 짓이긴 듯 물러진다. 꽁꽁 묶었던 감정이 샌다. 썩기 시작했나 보다. 밀봉해도 샌다. 시린 물에 넣어도 소용없다. 부패한 감정이 비린내처럼 밴다. 배어 베갯잇에 물들었을까.
창밖을 본다. 이자까야 간판 불이 번쩍인다. 옷을 주섬 입고 길을 건넜다. 새벽 2시 반, 끌리듯 들어가 모찌리도후를 주문했다. 생크림과 전분을 섞은 두부 내음이 묘하다. 묵은 냄새의 기억을 시린 물에 담아 세운다.
동부이촌동, 민영 U 동 103호에는 이상한 여자아이가 살았다. 나는 104호에 살았다. 그렇게 커다란 눈을 가진 아이는 본 적이 없다. 목련 같은 목과 하얀 얼굴을 가진 아이였다. 아이의 엄마는 모델처럼 키가 컸다. 아침에 등교할 때 가끔 모녀와 마주쳤다. 안녕하세요라는 말도 못했다. 묵례만 하고 도망치듯 뛰어가곤 했다.
한 살 어린 5학년 아이, 옆집 아이는 코펜하겐에서 살다 왔다. 현실감 없는 먼 도시였다. 가끔 나도 모르게 운동장을 두리번거렸다. 어디에도 눈에 띄지 않아 조바심이 났다. 같은 초등학교가 아니었을까. 이성을 느낀 것은 아니다. 남녀를 구분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뭐가 그리 부끄러웠을까. 아이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향기만이 오롯이 선명하다. 등굣길, 현관에서 가끔 스칠 때면 얕은 바람에 향이 섞여 있었다. 낯설지만, 좋은 냄새가 났다. 로션도 스킨도 향수도 몰랐다. 바닷가에서 자란 내게 알 필요도, 아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것들이었다.
시골 교정 뒤에는 작은 산이 붙어있었다. 곧게 뻗은 나무 사이로 때리듯 매미가 울어댔다. 고개를 들면 저절로 눈이 감겼다. 엄마 같은 냄새에 킁킁대며 숨을 몰아쉬곤 했다. 그 아이에게 그 냄새가 났다. 나무 사이에 로레알 린스가 배인 듯한 냄새. 푸르고 가벼운, 외국에서 사 온 향수였을까.
아이와 스칠 때면 스르륵 향기가 건너왔다. 눈을 감고 냄새를 맡을까 봐 두려웠다. 부끄러움에 저절로 얼굴이 붉어져 얼른 계단 아래로 도망치듯 뛰어갔다. 어느 날, 집 앞에서 그 아이와 마주쳤다. 눈을 부릅뜨고 아이에게 말했다.
"너, 너한테 좋은 냄새가 나."
"......"
아이의 얼굴이 조금씩 발그스레해졌다. 그런 아이를 보고 어딘가 뜨거워졌다. 말을 걸기 전 이미 사과처럼 붉어진 내 얼굴을, 나는 미처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