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무결한 소멸
"외출을 하시려면 사유를 써야 하는데 무슨 일이에요?"
수간호사가 물었다. 간병인이 사고 치는 바람에 이야기를 나눈 후 괜히 가까운 척하던 사람이었다. 둘러대지 않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여기에 있다가는 미칠 것 같습니다. 밖에 좀 나가고 싶어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보내드릴 수 없는데요."
"부탁드릴게요. 거짓말을 할 수도 있는데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차라리 거짓말을 하시죠. 그렇게 말씀하신 이상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병실로 돌아왔다. 병상에 눕는 대신 옷을 갈아입었다. 복도를 지나는 동안 대각선에 앉은 수간호사는 컴퓨터를 보고 있었다. 지나갈 때까지 돌아보지 않을 작정인 것 같았다.
오랜만에 병원 뒷길을 걸었다. 꽃밭 옆 벤치에 잠시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 천천히 걸었고 그렇게 버스정류장까지 걸었다. 도중에 몇 번 어지러웠지만 부담될 정도는 아니었다.
사람 없는 정류장에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버스가 다가왔지만 기다리는 버스는 없다. 그런데도 타인처럼 다가오는 버스 번호판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갑자기 어지러워 고개를 숙였다. 이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사람의 존재를 완전무결하게 소멸시키는 것은, 어쩌면 그와의 기억을 가진 누군가의 망각 때문 아닐까. 지난여름의 메모는 건조하다. 개연성 없이 찾아와 나를 흔든다. 그때보다 행복하다, 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