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에 숨은 여백처럼
80 frame/sec의 순간을 만난다. 현실이 비현실처럼 흐른다. 믿을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 공기가 울리듯 이명이 들린다. 돋아난 소름에 호흡이 멈춘다. 스톱모션처럼 흐르는 세상을 본다.
360 frame/sec의 순간은 비현실적이다. 압축된 공간은 무겁지만 얇다. 쉬 찢겨 현실에 노출될 것 같다. 오래 머물 수가 없다. 벗어나려 애쓰지만 축축하고 서글퍼 무력해진다. 빛처럼 관통해 잊히지 않을 장면을 떠올린다. 소리와 배경이 칼라처럼 선명하다. 시간에 씻겨 칼라는 흑백으로 묻힌다. 관통된 기억은 정수만이 남는다. 흑백에 숨은 여백처럼 영원하다.
슬픈 4월에는 그저, 가만히 서있다. 손을 잡고 볼을 비비고, 부대끼고 어우러지는 것이 어렵다. 피부와의 접속이 낯설다. 스킨십이 주는 안온함을 모른다. 손을 내밀면 어색하고 불편했다. 내색하지 않았을 뿐이다. 냉정하고 까칠한 사람이라 불린다.
곧 5월이다. 내년에도 4월이 오겠지. 압축되어 숨겨진 기억을 꺼낸다. 기억해 낼 수 있다면 충분하다. 냉정한 우울과 까칠한 슬픔을 버릴 수 있을 거다. 내민 손이 네게 닿을 거리, 당신은 인식하지 못할지 모른다. 세월과 죽음의 엄정함 아래 물리적 거리는 의미 없다. 용서와 우리 둘, 서로만이 남아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