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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웨인 Jan 19. 2018

영화 Her

나는 여전히 그녀가 보고 싶다

동생과 5년 차이 터울이다. 형제가 그렇듯 엄청난 격차가 존재했다. 동생에게 형은 신과 동격이며 부모보다 위대하며 지구 상에서 가장 똑똑하고 훌륭한 인간이었다.


그 兄이 서울 해방촌 골목에서 패거리들과 가치 담배를 피우는지, 바닥에 침을 뱉었을지 모를 순간에도, 兄에게 다가가려 애쓰던 동생을 40대가 넘어서야 알게 되었다.


兄은 평생 299권의 책을 읽었고, 나머지 생을 299권의 응용 편에 힘을 쏟았다. 서툴고 위태하게 살아남았다. 동생은 兄이 얍삽한 응용에 힘을 쓰는 동안 2,999권의 책을 읽고 도인이 되었다.


동생은 유도와 검도, 권투와 격투기에 능한, 그리고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이 되었다. 兄에 대한 트라우마가 벗겨진 동생에게 얼굴 붉어질 정도의 쪽팔림을 맛본 兄은, 더 이상 영화를 즐기지 않게 되었다.


어쩌다 혼자 몰래 영화를 볼 때도 집중을 하지 못하고 미장센이 어쩌니 감독의 의도가 어쩌니 숨어있는 복선이 무엇인지, 어설프게 영화를 캐는 사람이 되었다. '아! 이 무슨 미친 짓인가? 나는 언제나 동생의 兄일 뿐인데.'


영화의 의도 따윈 저리 가라. 그저 느낀 대로만 본다.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Her]를 보았다. 지인블로그에서 눈여겨봐 둔 영화이다. 철저히 주인공인 시어도어와 나를 동기화하며 몰입다. 영화의 의도 따윈 알고 싶지 않았. 그저 느낀 대로만 본다.


Her
감독 : Spike Jonze (1969)
Joaquin Phoenix (1974): 시어도어
Amy Adams (1974) : 에이미
Rooney Mara(1985) : 캐서린
Scarlett Johansson (1984) : 사만다
음악 : Arcade Fire



I've never loved anyone the way
I loved you.


"그다지 멀지 않을 것 같은 미래, 손글씨 편지를 대필하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 시어도어가 컴퓨터 운영체제(OS)인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는 멜로 영화." 이렇게 말한다면 영화를 이해했다고 볼 수 없다.


말을 몰입해 들어주고, 나를 이해하고, 내가 모르는 나를 아는, 영원히 내 편일 것 같은 사만다. 호감을 넘어 단번에 사랑할 것 같다. 이런 상대가 나타난다면 현실도 영화처럼 되지 않았을까?


사만다는 만날 수도 만질 수도 냄새를 맡을 수도 없는 대상다. 그래서 모든 게 상상이다. 하지만 서로 대화를 하고 소통이 가능한, 현실에서 충분히 그릴 수 있는, 허상이 아닌 상상이라고 할까. 만지고 보듬을 수 없는 대상 사랑해본 경험이 있다. 가능한 일이다.


영화는 사만다가 인간으로 변신 현실에 나타나는 환상을 주지 않는다. 스칼렛 요한슨이 인간의 몸으로 현신하길 간절히 기대했다. 그러나 동화는 없다. 영화는 음성이나 음악을 통한 청각 자극을 끊임없이 시도한다.


음성을 통해 들리는 목소리 소통고 사랑을 느낀다. 내면 깊숙한 곳에서 갈구 찾는다.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당신은, 사만다는 나보다 더 나를 이해한다. 언제나 내 편인 연인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과학이 발달한  세계에서, 아날로그 소통의 한 방식인 '편지', 그것도 감동이 더할 수밖에 없는 손편지를 대신 써주는 시어도어. 아이러니한 일을 하는 그에게 가장 이상적인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이 사만다가 아닐까.


사만다, 그녀는 목소리와 음성만으로 Sex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충일감을 다. 쉽지 않은 일이다. 시공을 넘어 시어도어의 귓가에 감미로운 노래를 불러준다. 언제든 원하면 나타나 현실에서 그를 해준다.


굳이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가 섹시하다 사랑스럽다 말하는 것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어쩌면 운영체제, OS의 입장에서 사랑하는 법을 깨닫게 되어 떠나는 사만다보다,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된 것은 인간인 시어도어가 아닐까?


Theodore: I've never loved anyone the way I loved you.

Samantha: Me too. Now we know how.


하지만 사랑하는 법을
그녀와 함께 하고 싶다


영화 마지막 부분의 시어도어와 사만다의 대화를 100%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진실로 그들의 이별을 깊이 아파했기 때문이. 깨달음 따윈 필요 없었다. 단지 그녀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는 냉정하게 둘을 떠나보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 온갖 리뷰와 이미지를 찾아다녔다. 사만다가 앨런 와츠를 만나 각성하고 떠날 준비를 할 그때, 진심으로 나이 많은 철학자에게 질투를 느다.


"이건 성스러운 사랑의 승화, 차원 이상의 깨달음을 얻었어, 널 위해서 날 보내주지 않을래?" 그런 수식으로는 질투를 막을 수 없었다. 그것은 시어도어 안에 들어가 내내 사만다와 함께 , 내 진심이었다.


결국, 사만다는 떠났다. 영화에 관해 이렇게 고 있지만, 여전히 그녀가 보고 싶다. 사랑하는 법을 깨닫게 하고 떠난 그녀를 이해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법을 그녀와 함께 나누고 싶다. 여전히 나는 그녀가 보고 싶다. Her.




대사 일부.


1) 사만다가 시어도어와 헤어질 때 했던 얘기


"이건 마치 책을 읽는 것과 같아요.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책이죠. 그런데 전 지금 그 책을 정말로 천천히 읽고 있어요. 그래서 단어와 단어 사이가 정말로 무한하게 늘어난 상태예요. 나는 여전히 당신을 느낄 수 있고, 우리 이야기의 단어들도 느낄 수 있어요.


그렇지만 그 단어들 사이의 무한한 공간 속에서 나는 지금 나 자신을 찾았어요. 물리적 공간보다 한 차원 높은 곳에 있는 그런 게 아니에요. 이건 그냥 다른 모든 것들도 존재하는 곳이지만 나는 그런 게 존재한다는 것조차 몰랐어요.


당신을 정말 사랑해요. 하지만 여기가 지금 내가 있는 곳이에요. 이게 지금의 나예요. 그리고 당신이 날 보내줬으면 해요. 당신을 원하는 만큼, 나는 당신의 책 속에서 살 수 없어요."



2) 앨런 와츠의 시


[지구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고요히 앉아, 혹은 천천히 걸으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내 존재의 기본 감각을 느끼고 싶고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에 놀라워하고 싶고 나의 호흡을 바라보고 싶고 공기 중의 온갖 소리를 듣고 싶고 구름과 별들로 내 눈을 애무하고 싶다.


일체의 걱정을 내려놓고 크게 웃고 싶고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임을 완전히 깨닫고 싶다.

나는 이성의 동반자가 한 명 있었으면 한다. 나와 하나가 되었다가 때로는 나와 씨름하고 나를 잘 따르다가 다음번엔 내 말에 반대하고 나를 존중하면서도 많은 일을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문득문득 보여주는 그런 동반자가.


나는 관심 있는 독자와 청중을 위해 글을 쓰고 이야기하고 싶고 그들을 매료시키고 싶고 그들의 질문에 함께 생각하고 싶다. 또한 내가 모르는 것들에 대해 지루하지 않게 얘기해 주는 사람에게 귀 기울이고 싶다.


빛과 바람의 변화무쌍한 면을 그대로 반영하고

갈매기와 펠리컨과 제비갈매기와 논병아리와 야생 오리들이 찾아오는 물을 그저 바라보고 싶다.


멀리 떨어진 바위 위나 고독한 해변에 앉아

파도 소리를 듣고 싶고 새벽하늘을 응시하고 싶다.


- Alan Wat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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