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눈물로 반항한다
"오빠 맛있는 거 해줘, 엄마."
엄마가 냉이를 가지고 오셨다. 늦은 시간에 여동생도 왔다. 순천향병원 응급실에서 일하던 이쁜 여동생은 목사님이 되었다. 아프다는 시늉만 해도 주사를 들이대던 동생에게 욕도 많이 했다. 두 살 터울의 그녀는 괜찮은 사람이다. 가끔 누나 같다.
사유가 있어 "엄마 모시고 너희 집으로 가."라고 말을 건넸다. 화를 내는 동생을 수 십 년 만에 처음 봤다. 빌빌대는 오빠라고 욕도 했다. 마음먹고 내뱉는 말은 아프다. 묵은 사과를 깎았다. 오해라고 말하고 이해를 구했다. 핏줄인데 구차하다. 오만 원 두 장을 엄마에게 건네며 동생은 말했다. "오빠 맛있는 거 해줘, 엄마."
일흔일곱의 엄마는 바쁘다. 일주일에 세 번, 시골 방앗간에서 일한다. 한 달 품삯은 이십만 원 남짓. 생계 때문인지 건강 때문인지 알 수 없다. 아니 모른 척한다. 일 때문에 다음 날 내려간다 고집하신다. 외롭다고 건네는 말이 부질없다. 늙지 않으시면 좋겠다.
ATM기에서 삼십만 원을 찾았다. "필요하신 곳에 쓰세요.", "필요 없다, 너도 어려운데 나는 됐다." 아들은 재미가 없다. 마음을 전하는데 서툴다. 지갑을 찾아 돈을 넣었다. 구천 원이 든 엄마 지갑. 이제 309,000원이다. 부끄러운데 뿌듯하다.
세상에는 맞지 않은 셈법이 존재한다.
백석역까지 배웅하고 집에 들어왔다. 괜찮았는데 서글픔이 밀려온다. 냉장고를 열었다. 시금치 무침과 멸치볶음, 그리고 냉이 된장국. 덩그러니 남은 반찬과 국이 차다. 사용하지 않던 립 크로스를 꺼내 마른 입술에 바른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뭘 잊으신 것이 있는 걸까 방을 둘러보며 받았다.
"버스 잘 타셨어요?"
"응, 잘 내려가는 중이다. 베개 밑에 한 번 들춰봐라."
"베개요?"
"그래, 잘 지내고 아들아."
"......"
베개를 들춰봤다. 삼십만 원이 놓여있다. 9,000원밖에 없을 텐데 버스비를 어떻게 하셨을까? 여동생이 준 10만 원이 생각났다. 가기 전에 오만 원을 주셨다. 웃으시라고 농담처럼 받았다. 늙은 아들에게 주는 것도 기쁨일 테니 받았다. 세상은 맞지 않은 셈법이 존재한다.
가지런히 놓인 만 원짜리 서른 장을 본다. 베개 밑 잘 데워진 공깃밥 같다. 다시 전화할 수 없다. 돈을 보는 순간 모든 것이 접혔다. 두 가지 의미만 둥둥 떠 있다. 아득하고 그립다. 왈칵 눈물로 반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