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담배 심부름을 자주 했다. 아버지는 삼 남매 중 꼭 나를 지목하셨다. 길모퉁이 담배 가게는 멀지 않아 속옷 바람으로 다녔다. 떨어질까 봐 돈을 꽉 움켜쥐고 뛰었다. 가끔 돈이 없어졌다. “아빠, 돈 잃어버렸어요.”라는 말은 상상할 수 없었다. 겁이 나 집 주위를 몇 시간이고 맴돌았다.
누군가의 발에 밟혀 조각나면 좋겠다.
USB가 없다. 어제부터 보이지 않는다. 그 안에는 이야기가 잔뜩 들어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내 이야기들이다. 꽤 오래 쓰고 모았다. 잃어버린 것을 깨닫는 순간 가슴이 뛰었다. 어릴 때처럼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제 혼 날 사람도 없는데.
책상 위에도 의자 밑에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어제 입었던 옷들을 뒤졌다. 겨울 패딩 왼쪽 주머니에 작은 구멍이 나 있다. 아침에 올 때 어디서 빠졌나 보다.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길을 훑었다. 밤새 내린 눈이 쌓여 찾을 수 없다. 누군가의 발에 밟혀 조각나면 좋겠다.
결국, 찾지 못했다. 별 것 아닌데 불안하다. 어깨를 움츠리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작은 구멍은 그대로이다. 집게손가락을 그 사이에 넣고 꼬무락거렸다. 걸을 때도 버스를 탈 때도 손가락을 움직였다. 마치 없어진 그것이 손에 잡힐 것 같았다.
한 땀씩 공그르기를 했다. 안과 밖의 경계가 사라진다.
새벽이 오고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의자에 잠시 앉았다. 머리가 아파져 왔다. 던져놓은 패딩을 꺼냈다. 구멍 난 주머니에 손가락을 넣었다. 안과 밖의 경계가 사라진다. 어딘가 구멍이 난 것처럼 시리다. 가슴이 아려왔다.
기워야겠다. 선반에서 반짇고리를 찾았다. 바늘에 검은 실을 꿰고 주머니를 기웠다. 눈이 어두워 간격이 촘촘하지 않다. 한 땀씩 공그르기를 했다. 언제 바느질을 했던 걸까? 어릴 때 자잘한 것은 스스로 했다. 새 옷의 단추가 헐렁하면 꼼꼼히 다시 달곤 했다.
난 왜 지금 여기서 바느질을 할까? 눈이 뻐근해져 고개를 들었다. 바느질하는 내 손을 본다. 엄지와 검지를 하트처럼 살며시 잡는다. 힘을 빼고 시접 사이로 바늘을 움직인다. 작고 통통하고 못생긴 손. 누군가와 닮았다.
시골에서 좋은 옷을 입지는 못했다. 하지만 늘 단정했다. 구멍 나거나 해진 바지를 기워주던 엄마를 떠올렸다. 한없이 젊고 예쁜 분이셨다. 엄마에게 바느질을 배운 적은 없다. 박음질도 홈질도 모른다. 형태나 쓰임에 상관없이 무조건 공그르기를 했다. 그래도 단단히 잘 붙었다.
어머니를 떠올린 것은 잘했다. 기운 구멍처럼 따스해져 온다. 바늘은 성냥처럼 현실을 잊게 한다. 주머니의 구멍은 튼튼하게 메워졌다. 다시는 뜯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를 잃는 일도 없을 것이다. 맴돌다 이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