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단처럼 감각하기 원합니다. 그는 마땅히 자기가(혹은 자기 혈육이) 차지해야 할 왕위에 미련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을 차기 왕으로 정하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호와의 뜻이 그에게는 가장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절망하는 다윗, 자신의 정적이 될 수밖에 없는 자를 북돋아주고 위협으로부터 안전히 지킬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뜻을 아는 감각, 그것을 내 육신의 이득보다 앞세우는 감각... 주여 이 감각에 저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저도 이 감각으로 살게 하시옵소서.
나는 주님 앞에 선포합니다. 주님이 주신 선포입니다.
“나의 명예를 좇는 것은 쓰레기를 모으는 것과 같다. 나는 주의 이름을 쫓는 자이다.”
이것을 소리 내어 선포합니다. 내 입술을 열어 선포할 때, 그리고 그 선포에 믿음을 실을 때, 주께서 나를 죄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이름을 부지런히 쫓아다닌다면, 어떻게 주의 뜻을 알고 추구하겠습니까. 그런 감각을 언제 익힐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버립니다. 나를 버립니다. 버리는 것조차 내 능력으로 되지 않으니 주께 의탁합니다. 주여 도우소서. 나를 버리게 하소서.
지금 내가 한 기도가 어떤 작용을 할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방금 읽은 성경도 나에게 어떤 가르침을 줄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주께서 돕지 않으시면 내가 가진 것으로는 예측도 해석도 풀이도 되지 않습니다. 주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친히 해석해 주셔서 알려주셔야 합니다. 저는 가만히 앉아 듣겠습니다. 제 생각을 끊임없이 제하면서 오로지 주의 가르침만을 구하겠습니다. 알려주소서.
“여호와를 찬양하십시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분의 명령에서 큰 기쁨을 얻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시편 112:1-
정말로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여호와는 자신을 보여주십니다. 주님을 얻는 것 자체가 가장 큰 복이니,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그의 명령에 기뻐할 줄 아는 것이 가장 큰 능력입니다. 저는 오늘 이 복을 구합니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살게 하시고, 여호와의 명령에 기뻐하게 하소서. 그 감각이 요나단의 감각입니다. 내 생명보다, 내 지위보다, 내 명예보다, 내 부보다 귀한 게 여호와의 이름입니다.
주님께서도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십니다.
“그러나 나는 내 이름을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살고 있던 여러 나라들 앞에서 내 평판이 더럽혀지지 않게 했다. 나는 그 나라들이 보는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 내가 누구인가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알려주었다.”(겔 20:9)
“그러나 나는 내 이름을 위하여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내는 것을 본 여러 나라들 앞에서 내 명예가 더럽혀지지 않게 했다.”(겔 20:14)
주의 이름을 위해 오늘을 살기 원합니다. 주의 모든 자녀들이 그렇게 살도록 하시옵소서. 자기 자신이 아니라 주를 위해 살도록, 마음에 찔림을 주시고, 가르침을 주시고, 순종하게 하시고, 영혼의 평안함을 감각하게 하소서. 이것이 제가 오늘 주와 함께 이룰 기도의 사역입니다. 저와 제 가족을 포함한 모든 주의 자녀들이 주를 두려워하고, 주의 명령에 따라 충실히 살아가게 하소서. 요나단처럼, 나의 왕위가 아니라 여호와의 뜻을 더 앞세우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