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탕형 보일러의 낭만
낡았던 본가의 보일러는 저탕형이었다. 보일러가 어느 정도 물을 덥히고, 그 덥힌 물을 수도로 내보내는 방식이라 요즘 보일러와 달리 더운물이 실시간으로 공급되지 않는다. 컨트롤러에서 온수 스위치를 누르고 곧바로 화장실에 들어가면 낭패를 본다. 보일러가 물을 준비할 시간을 줘야 한다.
젊은 동생과 나에게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방식이었지만 엄마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미리 준비된 물만 쓰면 된다는 건 곧 샤워를 하는 동안 보일러를 꺼둘 수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에 절약 정신 투철한 엄마에게는 오히려 안성맞춤이었던 것. 실제로 동생이나 내가 샤워를 하러 들어가면 엄마는 보초처럼 컨트롤러 앞에서 보일러 스위치를 내리셨다. 그리고 문에다 대고 “보일러 껐으니 빨리 씻고 나오라”라고 경고까지 하셨다. 어쩌다 보일러 끄는 걸 모두가 잊으면 엄마는 그 시간 동안 끓어버린 물이 아까워 직접 샤워를 하기도 하셨다.
신혼집 보일러는 저탕형보다 신식이었다. 온수 스위치를 누르면 그때부터 곧바로 뜨거운 물을 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이론상’ 일뿐이었다. 우리 집 보일러는 온수 스위치를 눌러도 더운물을 내주지 않았다. 보일러는 분명히 돌아가고 있었는데, 수도꼭지에서는 찬물만 흘렀다. 사람을 불러 알아보니 수압이 낮아서 보일러가 물이 지나갈 때 감지하지 못한다고 했다. 수압을 높이려면 펌프를 별도로 설치해야 하는데, 집주인께서 공사를 허락지 않았다. 아내와 나는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누구 머리에서 나왔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는 그럴듯한 방법을 찾아냈다. 욕실 물과 싱크대 물을 동시에 트는 것이었다. 양쪽에서 물을 뽑아냄으로써 보일러를 통과하는 수량을 억지로 늘린다는 게 그 개념이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샤워하러 들어가면 나머지 사람은 싱크대에서 보초를 섰다. 비누질할 때는 물을 같이 끄고, 헹굴 때는 같이 틀기 위함이었다.
단점이 여러 개 있었다. 밖에 있는 사람이 어쩌다 싱크를 못 맞추면 샤워하는 사람은 찬물을 맞아야 한다는 것이 첫 번째였다. 이건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우리가 새 샤워법에 익숙해져 가면서 해결됐다. 좀 더 치명적이면서 우리가 어찌할 수 없었던 단점은, 옆집에서 물을 같이 쓰기 시작하면 새 꼼수가 아무 효력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웃이 끌어간 물은 그대로 우리 수압에 영향을 줬고, 우리는 샤워실에서 벌거벗은 채, 혹은 수도꼭지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옆집에서 물을 잠가주기만 기다렸다.
이 단점들 때문에 겨울에 우리는 인간 저탕형 보일러가 됐다. 미리 쓸 물을 양동이에 끓여가지고 욕실에 들어간 것이다. 나야 씻는 것도 금방이라 이런 불편함이 크게 와닿지 않았지만, 머리도 길고, 원래 씻는 것 좋아하는 아내는 달랐다. 아내가 양동이에 받은 대량의 물은 도무지 끓을 줄을 몰랐고, 샤워를 결심한 순간과 실제 욕실에 들어가는 때의 시간 차이가 지나치게 벌어지곤 했다. 물 켜놓고 깜빡 잠이 들기도 하고, 물 양을 줄였다가 생각보다 이르게 물이 동나는 등 자잘한 에피소드들이 그 낡은 집에 저금됐다.
그래서 가끔 본가에 가면 난 샤워를 했다. 그럴 땐 구두쇠 엄마도 물 넉넉히 쓰라고 온수 스위치를 급하게 내리지 않으셨다. 아들 집 사정을 알아서가 아니었다. (어려운 상황을 연로한 부모에게 꼬치꼬치 알리는 자식이 어디에 있나.) 밖에서 보초의 본분을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독 어르신들에게 살가운 아내가, 시어머니한테도 그 특성을 발휘하고 있었고, 샤워를 넉넉히 끝내고 나와 보면 둘은 소파에 마주 앉아 한창 대화의 싱크를 맞추고 있었다. 서로의 손을 한 움큼씩 쥐고 있었을 때도 많았다. 알람시계처럼 어김없던 보초는 며느리에게 녹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둘이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했을까, 나는 알지 못한다. 아내도 이제 와 특별한 기억은 없는 듯하다. 본가도, 신혼집도 주인이 바뀐 지 오래고, 엄마는 물어도 대답할 수 없는 곳에 계시다. 본가의 새 주인은 저탕형 보일러를 저탕형 보일러답게 쓰고 계신지, 새것으로 바꾸셨는지, 그때 신혼집 주인께서는 펌프 공사를 하셨는지, 간혹 궁금할 때가 있는데 이 역시 일부러 찾아가 보지 않는 이상 나는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동네들에 가면 그 옛날 두 고부가 마주 앉아 이야기 나누던 장면이 희뿌옇게 떠오를 것이라, 난 갈 수가 없다. 어떤 기억은 모르는 채로 기억하는 게 적당하다고 스스로 얼버무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