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아침에 엄마와 막내가 사라진 집. 나와 첫째, 둘째를 가장 괴롭혔던 건 부실해진 메뉴가 아니었다. 갑자기 늘어난 집안일도 아니었다. 그리움이었다. 우리는 아내와 막내가 너무 보고 싶었다. 그 시끌벅적했던 ‘가내 재활’ 흔적이 마음을 아리게 했다. 우리는 부엌에서건 화장실 앞에서건 냉장고 열다 닫으면서건 눈만 마주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보고 싶다’ 혹은 ‘지금쯤 엄마랑 막내는 뭐 하고 있을까?’라고 했는데, 그게 혼잣말인지 상대에게 하는 말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아마 둘 다였을 거다.
그렇다고 마음껏 전화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막내와 아내는 병원서 빠듯한 시간표 대로 움직이느라 전화를 받지 못할 때가 많았다. 우리는 하염없이 전화벨이 울리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보통 막내의 하루 일과가 끝나는 4~5시 이후에 전화가 왔다. 집에는 내 핸드폰과 집 전화 딱 두 개가 있었는데 어느 쪽이든 전화가 오면 모두가 서로에게 소리를 치며 전화가 왔다는 걸 알렸다. 전화벨의 용도가 전화 왔다는 걸 알리는 건데, 우리는 그 전화벨이 울린다는 걸 서로에게 알리는 역할을 자처하고 있었다. 전화벨의 전화벨이랄까.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그만큼 통화에 목이 말랐던 뜻이다.
수화기를 집어 들면 누구랄 것도 없이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영상 통화 돼요?” 전화를 끊고 다시 영상 통화를 시작하면, 이제 그 좁은 화면에 세 사람이 서로의 얼굴을 집어넣느라 경쟁이 시작됐다. 그리고 막내의 이름을 정신없이 불렀다. 화면에 비친 막내는 처음엔 멀뚱멀뚱했다가, 갑자기 우리를 알아보고는 버둥거렸다. 팔다리를 휘젓기도 하고, 입으로 소리를 내기도 하고, 우리 쪽으로 시선을 빤히 고정시키기도 했다. 뭘 하든 우리에겐 기쁨이 따로 없었다. 작은 몸짓 하나에 우리 셋은 깔깔 웃었고, 예쁘다, 잘한다, 화면 너머로 힘껏 환호를 보냈다. 그렇게 하루를 기다렸다 잠깐 얼굴 마주하는 게 얼마나 행복했던지. 우리 집엔 막내만 한 선물이 없음을 그 순간엔 누구나 실감할 수 있었다.
잠시나마 마음껏 웃고 떠들 수 있던 우리는 다행이었다. 아내는 아무래도 주변에 병원 사람들이 있어서 그리움을 마음껏 표현하지 못했다. 대신 애들에게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마음껏 표현할 것을 은근 종용했다. 엄마 얼마나 보고 싶었어? 왜 이렇게 안 반가워해? 더 표현해야지? 애들이 멋쩍어서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면 진심으로 서운해하기도 했다. 그걸 보며 아내도 10년 넘게 매일 옆구리 가득 끼고 살았던 첫째와 둘째가 갑자기 사라져 여간 허전하지 않았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린 통화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하루에 많아야 1~2번이고, 한 번에 길어야 5~6분 정도인데, 그건 24시간 같이 있던 것에 비하면 찰나 같은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저녁 먹을 때까지 그 둘만 생각하다가 5분 정도 얼굴 보는 것만으로 그 지독한 그리움이 해소될 리 만무했다. 아이들은 궁리했다.
가장 먼저 아이들이 할 수 있었던 건 사진과 영상을 보는 거였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핸드폰이 없었다. 내가 사진과 영상 몇 개를 이메일로 공유했다. 아이들은 배경 화면을 바꿔가며 막내에 대한 그리움을 식혔다. 그걸 보고 나도 서재에 작은 모니터를 하나 따로 마련했다. 원고 쓸 때 사용하는 주력 컴퓨터 화면 바로 옆에 새 모니터를 가져다 놓고 그동안 찍었던 막내 동영상을 연속 재생시켰다. 배경음악 대신 막내 소리가 서재를 메웠다. 그러면 옆 자기들 방에 있던 아이들도 뛰어왔다. 우리 셋은 하염없이 보고 또 봤던 막내 영상을 봤다. 같은 부분에서 웃고 또 웃었다.
문득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너네 정신 차려! 얘는 그냥 한 아기일 뿐이야. 세상에 안 이쁘고 안 귀여운 아기가 어디 있어? 우리처럼 이러는 거 이상한 거야.”
“하지만 얘는 좀 더 특별히 귀여운 거 같아요. 좀 이상하게 귀여워요.”
“... 음... 그래, 무슨 말인지 알 거 같아.”
그러고는 우린 다시 영상에 시선을 꽂았다. 마음까지도 같이 화면에 들어갔다.
나의 이 대화는 이다음부터 화자만 바꾸어 이따금씩 반복됐다. 가끔 막내를 안고 있는 나의 헤벌쭉한 모습을 보며 첫째와 둘째는 이렇게 말했다.
“아빠, 정신 차리세요. 얘는 그냥 한 아기일 뿐이에요. 세상에 안 이쁘고 안 귀여운 아기가 어디 있어요? 지금 이거 과한 거예요.”
“하지만 얘 좀 봐봐. 이 눈코입이랑 살 접히는 거 봐봐. 좀 이상하게 귀엽지 않니?”
“음... 그런 거 같기도 해요.”
그러고는 우린 다시 막내를 물고 빨기 시작했다. 영영 없어질 것 같지 않은 막내의 아기냄새가 우리 마음에 같이 들어왔다.
컴퓨터 화면의 단점은 들고 다닐 수 없다는 거였다. 아이들은 막내가 보고 싶을 때마다 컴퓨터를 켜야 했는데, 이게 횟수가 한두 번이 아니다 보니 영 귀찮은 게 아니었다. 아이들은 다시 궁리했다. 그러다가 오래된 밴드워치가 생각났다. 오래전 손목시계 겸 사준 4~5만 원짜리 밴드가 마침 세 개 있었다. 나는 몸에 뭘 장착하는 걸 대단히 싫어해서 결혼반지도 안 끼고 다니는데, 그때는 막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던지 아이들이 어느 서랍 구석에서 찾아준 먼지 낀 밴드를 자발적으로 차고 다녔다.
집에서 마주칠 때마다 한숨 쉬며 ‘보고 싶다...’고 말하던 게 사라졌다. 대신 서로에게 밴드워치를 보여주며 내가 어떤 사진으로 배경화면을 바꿨는지를 자랑하기 시작했다.
“이것 봐. 어제 아빠가 이 사진을 찾았어. 예쁘지 않냐?”
“아빠, 이 사진이랑 이 사진을 이렇게 콜라주 하니까 화면에 잘 어울리죠?”
“오, 나도 좀 줘바. 이걸로 바꿔야겠다.”
이런 대화들이 한참 오갔다. 손목을 수시로 들어 막내의 얼굴을 보고, 볼 때마다 아이가 고된 치료를 잘 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그리움을 원천적으로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아주 잠시의 위안만 됐을 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틈만 나면 병원에 찾아갈 계획을 세웠다. 아내가 통화하다 지나가는 말로 베개가 불편하다고 그러면 우리는 병원 가야 하지 않겠냐고 토의했다. 아이 양말 한 짝이 사라졌다고 그래도 우리는 여행가방을 챙길 것처럼 움직였다. 실제로 몇 번은 실행에 옮기기도 했다. 별 거 아닌 걸 구실 삼아 2시간 길을 두근대며 운전해 내달렸다. 어떤 날은 나 혼자 서울에 갈 일이 있는 것처럼 하고서 아이들을 몰래 태워 가 ‘서프라이즈 방문’을 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아내도 놀라 소리치며 아이들을 부둥켜안고 반가워했지만, 다음부터는 절대 이런 식으로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나중에는 진지하게 역정을 내기까지 해 우리는 자중하기로 했다. 하긴 아직 초등학생일 뿐인 아이들의 체력과 시간, 연료값까지 낭비가 심한 것에 비해 우리가 같이 있을 수 있던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아 누가 봐도 미련한 짓이긴 했다. 엄마와 동생이 간절히 보고 싶었던 게 생전 처음인 아이들은 그렇다 쳐도, 이 모든 몸부림의 한가운데서 어른답지 못하고 오히려 앞장섰던 나는 특히 많은 꾸중을 들었다. 그래도 난 막내가 그립고 또 그리웠다.
결국 내가 그런 ‘서프라이즈 방문’을 그만두게 된 건 아내가 부탁해서가 아니었다. 아이들의 학교 일정이 점점 많아져서도 아니었다. 그렇게 막내를 보고 온 날, 아이와 함께 있고 싶다는 내 마음이 달래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커져서였다. 보고 싶은 사람을 실제로 보면 그리움이란 게 식을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오히려 더 날카롭고 집요하게 심장을 후비고 들어갔다. 막내와 같이 있던 그 잠깐과, 집에 돌아왔을 때 마주하는 적막의 괴리가 고통스럽도록 컸다. 아내와 막내를 병원에 두고 집에 들어오는 날, 밤을 꼬박 새우는 경우가 점점 많아졌다. 장거리 운전 때문에 몸은 젖은 솜같이 무거운데 도무지 잠들 수 없었다.
“누가 나 자는 법 좀 알려주라
병원에서 나 혼자 온 밤
눕지 못하는 내 마음을 달래주라
이불들엔 주말의 냄새가 아직 있는데
공간들은 왜 갑자기 비었는지 알려주라
내 아내, 내 새끼
얼마나 더 두고 와야 하는지 가르쳐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