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가 여러 가지 약점을 가지고 태어난 건 맞지만, 대단히 큰 장점도 하나 있었다. 무지막지하게 귀엽다는 것이었다. 난 이게 아빠란 자의 콩깍지인 줄 알았다. 40대 중반에 얻은 늦둥이었으니 뭔들 안 이쁘고 안 귀여웠을까. 그렇잖아도 막내를 품에 안을 때마다 나는 거대한 미스터리가 풀리는 느낌을 받는데 말이다. 그건, 손자 손녀를 바라보는 조부모의 마음이다.
난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돼서 자손들을 사랑하는 게 어떤 느낌인지가 유독 궁금했었다. 정확히는 4~5학년 때부터였다. 어쩌다 학원 선생님과 부모님의 사랑에 대한 토론을 하게 됐는데, 그 선생님이 우리가 받는 사랑은 곧 끝난다고 선포하셨기 때문이다. “너네가 커서 아기 낳아봐라. 부모님들은 그 애기를 지금 너희보다 훨씬 더 사랑하실 거야. 너네는 본체만체하시면서.” 어른의 가벼운 농담 한 마디였을 뿐이었는데, 부모의 사랑이 현존하는 가장 큰 사랑인 줄 알았던 당시의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더 큰 게 있다니.
나중에 커서 아이 둘을 낳고도 이 이야기는 계속 귓가를 맴돌았다. 이토록 소중한 걸 가져보지도 못했고, 이렇게 깊은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했는데 이거보다 더 큰 게 내 인생 후반부에 있을 거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내 부성애도 점점 부풀어갔고, 그러면서 조부모의 마음이라는 수수께끼는 더 모를 것이 되어갔다. 얼마나 그게 궁금했는지 첫째와 둘째에게 가끔씩 “빨리 결혼해서 손주나 낳아봐라”라고 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이제 초등학교 졸업반이다.
그런 차에 우리 가정에 온 막내를 한 아름 안고 난 내가 이르게 할아버지가 됐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분명 손주가 아니라 자식을 안고 있는 거였지만, 첫째와 둘째 때와는 조금 달랐다. 간이고 쓸개고 눈알이고 다 빼줄 수 있는 마음이 문득문득 현실화되려고 해서, 나도 모르게 내 손을 붙잡게 되는 느낌이랄까. 물론 첫째와 둘째에게도 내 목숨이나 신체나 장기가 아까운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만일의 사태’에 대한 얘기다. 셋째의 경우는 나 자신이 얼마나 안 아까운지, 그 녀석을 볼 때마다 그 작은 몸 안에 내 생명을 당장 박아 넣고 싶었다. 그걸 어떻게 실천해야 하나, 자는 녀석 얼굴을 보면서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른다.
‘자는 얼굴’ 얘기가 나와서 조금 더 비교해 보자면 이렇다. 첫째와 둘째 때도 오밤중에 꼬맹이들 자는 얼굴 구경하며 희죽희죽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경우, 잠에서 깰까 봐 구경만 했었다. 막내 때도 비슷했다. 다만 내가 날 제어하지 못해 잠든 녀석 볼을 매만지고, 부둥켜안고, 뽀뽀를 해 아이가 자다가 깰 때가 많다. 성장하는 아이가 잠을 잘 때, 그 시간을 존중해줘야 한다는 걸 잘 알지만, 그건 이성의 이야기고 아이 앞에 나는 본능 덩어리가 되고 만다. 그리고 그걸 어쩌지 못한다. 난 이미 할아버지이기 때문이다.
내가 애 앞에서 이 지경이 되니, 가족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아빠 창피해”라는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공공장소나 이웃들 앞에서 스스로를 많이 억제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삐죽삐죽 나오는 모습들이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나도 할 말이 없진 않다. 가족들 전부 비슷하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막내 앞에서 누가 누가 더 모지리인가 시합을 하면서 살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런 혼란 속에서도 나는 막내가 우리 눈에만 예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 식구니까 당연히 그렇게 보이겠지.’
아니었다. 막내는 입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에서 슈퍼스타가 되어 있었다. 어린이 병원이라 어린이가 많고, 세상에 예쁘지 않은 아이가 어디 있을까만은, 막내는 그중에서도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나이’였다. 아내가 아이의 이상을 대단히 이르게 발견했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에 비해 우리 아이는 어렸다. 입원 당시 병원 전체에서 막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사회, 어느 조직에서건 막내는 무조건 사랑을 받게 되어 있다.
외모도 한몫했다. 막내는 쓴 약도 넙죽넙죽 받아먹을 정도로 식성이 좋았다. 주는 대로 잘도 먹고, 많이도 먹었다. 10살 많은 둘째만큼 먹을 때도 종종 있을 정도다. 그러니 아이가 전체적으로 둥글넓적했다. 배가 튼실히 나와 어떤 옷을 입어도 팽팽한 맵시를 선보여 웃음을 자아냈다. 자세히 보면 살이 접히지 않아야 하는 부분에서도 살이 접혀 있어, 한 번 더 웃음을 유발했다. 발이 통째로 동그랗고, 목은 드러나지 않아 턱이 가슴팍에 닿는 비율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짱구는 못 말려의 짱구를 꽤나 닮아 있었다.
아픈 아이들 중 재활 훈련을 힘들어하는 경우가 꽤 있다. 어느 재활 수업에 가서나 아이들이 울고 짜증 내는 소리는 쉽게 들을 수 있다. 그 옆에서 아이를 달래고 어르고 혼내는 선생님과 부모님들의 안타까운 소리는 덤이다. 그런 괴롭고 지난한 현장 속에 짧고 동그랗고 불룩한 것이 느닷없이 등장했으니 이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수업을 받다 말고 막내를 쳐다보고, 막내에게 다가오고, 막내 이름을 알려고 했다. 어떻게 해서든 막내를 한 번 만져보거나 안아보고 싶어 했다. 일부 선생님들이 이걸 이용했다. “이번에 수업 잘 받으면 한 번 안아보게 해 줄게.” 그러면 그 아이는 열심히 수업에 참여했다.
수업에서만이 아니었다. 사실 재활 훈련이라는 게, 수업에서만 잠깐 한다고 효과를 발휘하는 게 아니다. 입원실로 올라와서, 혹은 집으로 가서도 꾸준히 해야 한다. 그래서 입원실에서도 뭔가를 꾸준히 연습하는 아이와 부모들이 있다. 침상 많은 곳이라고 다들 누워만 있는 게 아니다. 계속 복도를 왔다 갔다 하며 걸음을 익히기도 하고, 우리 막내 같은 경우 두 손 두 발로 기는 것을 틈틈이 훈련했다. 하지만 수업 시간에 짜증 냈던 아이가 갑자기 입원실이나 집에 가서 웃으며 훈련할 리 없다. 그래서 ‘우리 한 바퀴만 걷자’고 달래고 사정하는 부모님들과, ‘싫어, 싫단 말이야’라고 투정 부리는 아이의 줄다리기 역시 흔히 볼 수 있다.
그런 입원실 아이들 중 일부는 우리 막내에게 걷는 거 보여준다며,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아이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걷기도 했다. 말이 좀 어눌한 아이도 막내에게 와서 이 말 저 말하며 아는 척을 했다. 가만히 와서 아이 손을 잡거나 안아 드는 형 누나들도 있었고, 자기 장난감을 막내에게 마구 가져다주는 꼬마들도 있었다. 우리 막내는 그 어떤 행위나 언어도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
환자에게 개인적인 감정을 표출하지 않는 재활 선생님들조차 막내만 보면 소리치며 달려왔다. 그리고 한참을 아이 볼을 만지고 살 접힌 곳을 꼬집고 말 걸고 웃다가 돌아갔다. 의료진들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게 흔한 일은 아니라 의아했다. 소아과는 다른 분과와 조금 다른가 싶기도 했다.
난 당시 가끔 면회를 가서 아내와 아이와 잠시 시간을 보내곤 했었는데, 너무 여기저기서 우리 막내 이름을 부르며 반가워해서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난 원체 ‘아웃사이더’ 성향이 짙다. 사람도 잘 안 사귀고, 친구도 몇 없다. 사람 알아가는 걸 귀찮아한다. 주변이 조용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막내를 유모차에 태우고 끌고 다니면, 적어도 그 병원에서는, 그런 외부인의 삶이 불가능했다. 저쪽에서 우리 아이에게 손을 흔들고 달려와 예뻐해 주는데, 멀뚱히 서 있을 수 없었다. 민망하기도 하고, 무안하기도 하고, 어떻게 인사해야 할지 전혀 몰라 난 지금도 내가 어떻게 대응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이게 바로 ‘인싸’의 삶이구나,라는 생각을 측은히 했었던 것만 떠오른다. ‘아싸’라 다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