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인간의 전설

by Moon

집에서 나와 첫째, 둘째가 고군분투하는 동안 병원에서는 아내와 막내가 자신들의 싸움을 싸우고 있었다. 입원 전 여러 센터에 적을 두고 재활 훈련을 해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아이가 어떤 스케줄로 훈련을 소화해야 하는지 아내는 이미 다 파악하고 있었다. 병원은 그런 개개인의 사정을 알리가 없었고, 알았다 한들 일일이 맞춰줄 수 없었기 때문에 아내와 병원 사이 조정의 기간이 필요했다. 이 세 문장을 이해하려면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재활 병원에 입원하면 병원에서는 환자에게 훈련 시간표를 짜준다. 한 세션이 통상 30분씩 진행되고, 그런 수업이 하루에 6~8번 들어간다. 병원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게 물리, 언어, 음악, 감통(감각통합), 심리, 수영, 기구, 연하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제공되는 편이다. 환자마다 이 프로그램들을 다 받는 건 아니고, 아이의 상태에 따라 병원에서 결정한다. 예를 들어 뇌 발달과 인지 등이 멀쩡한데 몸만 불편한 아이라면 언어나 감통 수업을 많이 받을 필요가 없다. 물리치료에 집중하면 된다.


환자와 보호자 입장에서는 입원 수속을 다 마쳤더니 학창 시절 떠오르게 하는 시간표가 주어지는 건데, 워낙 환자 수 대비 치료 시설과 인력이 적다 보니 이 시간표라는 게 입맛에 맞게 예쁘게 나오지 않는다. 병원에서는 새 환자의 질병이나 장애 종류 및 경중에 따라 필요한 수업이 무엇인지 정하고, 그런 후 최대한 빈 선생님을 배정하거나 빈 수업 시간을 찾아 넣어주는 것이니, 당연하다. 모든 사람에게 딱 맞는 결과물이 나올 수 없다.


‘입맛에 맞게 예쁘게’ 나온 시간표는 어떤 시간표일까? 환자와 보호자의 동선을 최대한 아껴주는 시간표, 환자가 최적의 컨디션으로 수업을 받을 수 있게 해 주는 시간표다. 각 수업은 미리 정해진 장소(물리실, 수영장, 감통실, 언어실, 기구실 등)에서 진행되므로, 수업이 끝나면 보호자들은 일제히 환자들을 둘러업거나 휠체어에 태워 부리나케 다음 교실로 이동한다. 이때 연출되는 광경은 중고등학교 시절, 종이 울리면 복도로 너도 나도 우르르 쏟아지던 것과 비슷하다. 환자 입장에서는 주어진 30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이 교실에서 저 교실의 거리가 짧을수록 좋다.


하지만 동선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교실들이 서로 떨어져 있어봐야 한 건물 안에 있기 때문이다. 막내가 입원했던 병원의 경우 2~3층의 물리실에서 치료받다가 지하 1층의 수영장에 가는 게 그나마 좀 긴 편에 속했다. 그 외에는 동선 때문에 아이 치료에 차질이 생겼다고 불만을 제기한다는 걸 쉽게 상상하기 힘든 정도였다.


진짜 문제는 환아 컨디션 조절이었다. 못해도 대여섯 살까지 사람의 컨디션을 가장 크게 좌지우지하는 건 식사와 낮잠이다. 아이들은 배가 고프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빽빽 울기만 한다. 낮잠 시간을 놓치면 칭얼거리다가 결국 잠들어버린다. 아무리 수업 시간이라도 예외가 없다. 아무리 엄한 선생님이어도 배고프고 졸린 아이를 이기지 못한다. 골든타임 내에 최대한 많은 치료를 하려는 부모 입장에서는 그 극심한 경쟁률을 뚫고 입원 치료 등록까지 성공했는데, 수업에서 아이가 잠드는 것만큼 허무하고 아까운 게 없다. 수업 한두 타임 이상의 기회를 허공에 날리는 거다.


아내가 입원 치료 전 센터들을 돌아다니며 파악했던 건, 우리 막내가 어느 시간에 잘 먹고, 어느 시간에 잠을 자야 하며, 그걸 어길 시 어떤 일이 벌어지며, 아이의 수업 태도가 어떻게 변하는지였다. 병원에서 처음 준 시간표를 보자마자 아내는 무슨 요일 무슨 요일에 수업하기가 어렵겠다는 계산이 섰다. 아이가 보통 먹고 자는 시간들에 일부 수업들이 겹쳐 있다는 게 대번에 보인 것이다.


그래서 전체 수업을 관리하고 계획하는 ‘코디 선생님’을 찾아갔다. 병원의 사정과, 우리나라 의료 생태계의 현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막무가내로 진상을 부리지는 않았다. 아이가 이 시간에 먹거나 잠이 들곤 해서 실제 수업 참여가 불가능하다는 걸 설명하고 대체 수업을 부탁했다. 집에서 최소 두 시간 이상 운전해서 이곳에 왔다는 것, 그래서 이번 입원이 우리에게 정말 큰 기회라는 것, 그 기회를 최대한 살리고 싶다고 간곡히 요청했다.


당연하지만 병원 측에서 한 번에 오케이 할 수는 없었다. 우리 막내 시간표를 움직이려면 다른 수많은 환아들과, 재활 치료 선생님들의 이미 정해진 스케줄들까지도 변경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병원의 시간표는 거대한 시계 속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었다. 요지부동이었다. 너무 많은 것들이 걸려 있어, 톱니의 조임은 누가 봐도 단단했다.


그럼에도 빈틈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막내가 입원한 뒤에도 누군가는 퇴원을 하고 또 새로 입원을 하기 때문에 그 빡빡한 시간표들도 이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최초 몇 번의 면담 끝에 아내가 얻어낸 건 새 시간표가 아니라, 그러한 시간표의 간헐적 유동성이었다. 공략 포인트를 찾아낸 것이다. 보름달마다 늑대로 변하는 어떤 슬픈 인간의 전설처럼, 아내도 그러한 때를 기다렸다.


다행히 입원 병동 내 소문은 빠르게 도는 편이었다. 누가 언제 퇴원한다더라, 그 자리에 어떤 아이가 온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보호자들 사이에서 금세 확산되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한민국 재활 치료 시스템이 너무나 작았기 때문이다. 얼마 되지 않는 재활 병원들을 순회하면서 재활을 수년 하다 보면 이 병원이나 저 병원에서 만났던 사람을 또 만나게 된다. 그 사람들이 또 다른 보호자들을 소개해주고 친구(혹은 원수)가 되면서 장애 아동을 가진 부모들은 전국에 걸쳐 거대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다. 막내 입원 전에는 전혀 알 수 없었던, 보이지도 않았던 커뮤니티였다.


A라는 유명 병원에서 누군가 퇴원을 한다고 치자. 보통은 집에서 남은 치료를 하거나, 학교로 가거나, 다른 재활 병원으로 가는 경우다. 어떤 경우든, 퇴원 예정자는 같이 입원했던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또, 이전 병원이나 재활 치료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에게도 안부를 전한다. “우리 퇴원하게 됐어.” 그러면서 이야기가 가지를 뻗는다. 그러다가 “응, B병원에 자리가 나서, 그리로 갈 예정이야”라고 한다.


그러면 그 이야기가 알음알음 B병원의 보호자들에게 전파된다. 그런데 때마침 B병원 간호실에서 어떤 입원실을 비우고 청소하기 시작한다? 혹은 누군가 B병원에서 퇴원하기로 되어 있다? 소문의 아다리가 맞아 들어가는 거다. 병원에서 발표도 하기 전에, 이미 보호자들은 누가 어느 방으로 올 거라는 걸 다 알게 된다. 정확히 어떤 유형의 보호자가 온다거나, 아이의 연령이 어떻게 된다거나 하는 세밀한 정보까지 전달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게 다 맞지는 않는다. 어디까지나 소문은 소문일 뿐.


병원이 시간표를 다시 짜는 시기만 알면 되는 아내에게 있어서 새로 오는 환아나 보호자가 어떤 사람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누가 들어올 기미만 보이면 일단 코디 선생님을 찾아가 일부 수업 시간을 바꿔달라고 거듭 언질을 넣었다. 여기 그 수업 시간만 되면 자는 아이 있으니 잊지 말고 고려해 달라는 거였다. 시간표를 보고 얼마나 골똘히 연구했는지, 코디 선생님이 상담하다가 자리를 잘 못 찾으면 아내 편에서 역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그렇게 여러 번 요청하고 제안해 아내는 만족할 만한 시간표를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아이는 최대한 중간에 붕 뜨는 시간 없이, 적당히 배 부른 채, 낮잠 시간도 충분히 확보한 상태로, 수업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그 시간표가 나온 게 입원 후 불과 한 달 만의 일인 것으로 기억한다. 아내가 시간표를 전리품처럼 사진 찍어 나에게 보내줬지만, 나는 뒤에서 진행된 아내의 그러한 싸움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오, 시간표네’ 이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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