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쿼시의 낭만
스쿼시에 한창 빠져 있을 때가 있었다. 흔히들 하는 라켓볼이 아니라, 검은색 고무공으로 하는 진퉁 스쿼시였다. 쳐본 사람은 알겠지만 스쿼시 공은 잘 튀기지 않는다. 고무로 만들어져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의 저급 탄성이다. 그래서 라켓을 생각보다 세게 휘둘려야 게임이 진행된다. 하지만 찰싹찰싹 두들겨 맞다 보면 공이 점점 뜨거워지고, 온도 증가에 따라 탄성도 올라간다. 공이 점점 강력하게 튀기기 시작하는데, 이 때문에 선수들은 경기가 진행될수록 더 정신없이 뛰어다녀야 한다.
친구와 함께 좁은 스쿼시장에 들어가 유리문을 닫고 경기를 시작할 땐 여유가 있다. 어차피 공도 잘 튀기지 않아 빠르게 뛰지 않아도 된다. 손목 스냅에 순간순간 힘만 더 넣어주면 된다. 이 단계에서는 서로 웃는다. 생각보다 탄력 없는 공이 의외의 지점에 낙하하는 바람에 허무하게 점수를 내주는 경우들이 경기 초반에 왕왕 발생한다. 어이없이 공을 놓치는 서로의 모습에 선수는 또 웃는다. 화기애애하다. 그러다 공이 조금씩 멀리, 더 빠르게 벽을 박차기 시작하고, 그때부터 웃음은 헉헉대는 숨소리로 바뀐다. 눈과 발이 정신없이 공을 쫓느라 웃음의 빈도는 떨어진다.
경기가 크레셴도처럼 강도를 높여가는 이 스쿼시만의 매력은 그 좁은 방안에 들어가 채를 휘둘러봐야 느낄 수 있다. 그 좁은 공간에서 공이 벽에 부딪히는 굉음, 신발 밑창이 바닥에 끌리며 내는 마찰음, 땀이 흐르는 게 절로 느껴지는 숨소리가 입체적으로 섞일 때의 현장감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하다. 게다가 스쿼시장은 사방으로 막혀 있기까지 하다. 그 소리들은 사방이 막힌 공간 속에서 공보다 빠른 속도로 반사하면서 서라운드 사운드 효과까지 낸다. 정면의 커다란 스크린을 찰나의 순간에 지나치는 작은 공을 놓치지 않으려는 선수의 집중력은, 이 풍성한 배경음으로 인해 살아있다는 느낌까지 덧입어 더 싱싱한 경험으로 전환된다.
잘 치는 편이 아니었지만 스쿼시를 낭만 있게 즐길 줄 알았다는 게 그 당시 내 수준이었다. 도서관에 가서 스쿼시 관련 책자도 찾아보고, 어쩌다 스포츠 매장을 지나치면 스쿼시 용품을 먼저 둘러봤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스쿼시 프로 선수들의 시합을 접할 기회는 없었다. TV만 틀면 온갖 종목의 시합들이 중계되고, 내가 살던 도시에 있던 각종 경기장들이 여러 종목 팀들을 유치해 시합을 붙여놓곤 티켓을 판매했는데, 그렇게 보고 싶었던 스쿼시 경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보고 접하는 스쿼시는 내 주변 친구들이나 선배들의 화기애애하다가 허무하다가 요란한 스쿼시뿐이었다.
그러다 건넛마을 꽤 큰 쇼핑몰에서 판촉 행사를 하나 주최했다. 건물 가운데가 뻥 뚫려 있는 4층짜리 건물이었다. 어떤 층에서든 가운데 빈 공간을 통해 다른 층을 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1층은 모든 층에서 내려다볼 수 있었기 때문에 아예 무대로 꾸며져 있기도 했는데, 친구랑 가보니 이번에도 무대가 설치되고 있었다. 또 뭐 뻔한 광고 이벤트겠지, 했는데 며칠 있다가 그 친구가 새로운 정보를 줬다. 그 무대 위에 스쿼시 코트가 임시로 설치되고 있다는 거였다. 그것도 투명한 유리로. 알아보니 프로 스쿼시 선수들을 초대해 시합을 벌인다는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쇼핑몰 근처에는 전단지들이 나돌아 다니기 시작했다. 스쿼시 선수들의 얼굴이 대문짝만 했다. 무료 초청 시합. 오랜 시간 스쿼시 시합을 보고 싶었던 나는 행사 당일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몇 차례 답사를 통해 시합이 가장 잘 보이고, 코트 내 소리가 가장 잘 들릴 만한 지점을 찾았다. 선수들의 등을 볼 수 있는 각도에, 2층이었다. 뒤에서 봐야 선수들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를 가장 정확히 볼 수 있었고, 그 유리 코트는 천장이 뚫려 있어 그 안에서 나는 모든 소리들이 위로 분출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시합 당일에도 나와 친구는 조금 일찍 움직였고, 미리 봐두었던 자리를 어렵지 않게 차지할 수 있었다. 처음 보는 프로 경기라니, 심장이 두근두근 댔다.
곧 선수들이 소개됐다. 무늬가 조금 다르긴 했지만 대강 흰색이라고 하면 될 상의와 하의를 둘 다 입고 있었다. 구분이 안 되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축구나 농구처럼 명확히 식별되는 것도 아니었다. 경기를 즐기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을 듯했다. 두 선수는 관중들을 향해 목례를 까닥하고 유리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사회자는 행사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이 시합을 주최하는 후원사에 대한 광고도 살짝 섞여 있었던 듯하다. 내 귀는 이미 워밍업 하는 선수들의 공 치는 소리에 매료돼 있어서 소개 멘트는 하나도 접수하지 못했다.
시합이 시작됐는데, 예상과 달리 처음부터 공 튀기는 소리가 컸다. 워밍업 동안 선수들이 공을 충분히 덥혀 놓은 모양이었다. 이 시간대에 벌써부터 이렇게 찰진 소리가 나다니, 역시 프로는 다르다고 나는 친구와 소곤대기 시작했다. 모두가 조용히 시합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큰 소리로 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스쿼시 공이 덥혀지는 것보다 빠르게 사람들의 집중력은 흐트러졌고, 나와 친구의 대화 소리도 평상시 수준으로 올라왔다. 경기가 예상 밖의 양상으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너무나 프로다워서, 너무나 재미가 없었다.
스쿼시는 사각의 방 안에서 라켓을 휘둘러 공을 때리는 경기다. 방 한가운데에서는 누구나 있는 힘껏, 원하는 방향으로 공을 칠 수 있다. 그 풀스윙의 쾌감이 기가 막힌 게 바로 스쿼시다. 하지만 코트의 구석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벽에 라켓이 부딪히기 때문이다. 절제된 궤적으로 라켓을 제어해 손목 스냅만 줘야 하는데, 이게 무척 난이도가 높다. 나와 친구들 같은 아마추어들은 공이 어쩌다 코너로 날아가면 ‘얍삽하게 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는 팔을 있는 힘껏 휘둘러 공을 치는 데에 재미를 느꼈던 것이다.
점수를 더 많이 내야 하는 프로들의 경기는 달랐다. 그들은 정확히 절제된 궤적으로 단련된 스냅을 줘서 공을 기가 막히게 코너로만 보냈다. 그들에게 주어진 공간은 통째의 넓은 코트인데, 두 선수는 벽에 바짝 붙어서 떠날 줄을 몰랐다. 대단한 공간 낭비였다. 물론 프로의 스냅이기 때문에 아마추어의 풀스윙과 같은 파괴력이 있긴 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우리는 코트의 모든 면적을 바삐 누비는 프로의 운동량과 순발력도 같이 보고 싶었다. 그들이 코트를 어떻게 활용하고, 어떻게 즐기는지를 알고 싶었다. 그 궁금증에 대한 답은 너무나 허무하게도 ‘벽에 붙어서 쳐’,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얍삽하게 쳐’였다. 코트 앞뒤로 오가고, 양 옆으로 누비는 프로의 모습은 그날 몇 번 보지 못했다.
난 그날 왜 스쿼시가 테니스만큼의 인기를 누리지 못하는지를 확실하게 이해했다. 지금도 이 글을 쓰기 위해 시합 영상들을 몇 개 찾아봤는데, 내가 그때 본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여전히 프로들은 강하고 빠르게 공을 치긴 하나, 대체적으로 벽에 붙어서 시합을 진행하고 있었다. 가장 어려운 스윙을 서로에게 강제시킴으로써, 사실상 ‘누가 먼저 실수하나’를 겨루는 프로들의 시합은, 그 안에서 고도의 훈련 결과를 마음껏 발산하는 당사자들에게는 큰 의미를 가질지 모르나, 바깥에서 관람하는 사람들에게는 대동소이한 양상의 지루함만을 가져다줄 뿐이었다.
그 이후에도 스쿼시는 나에게 중요한 스포츠였다. 기회가 될 때마다 친구들과 코트를 찾아 공을 쳤다. 하지만 프로의 시합을 못 보는 게 아쉽지는 않았다. 벽과 코너를 이용하는 영리한 시합을 하기에 우리 아마추어들에게는 스쿼시 코트의 남은 공간이 너무 아까웠다. 빛과 거울을 처음 실험하는 아이들처럼 사방 모든 면들에 공을 튕기고 싶었고, 크레파스 처음 쥐어본 손처럼 코트 바닥의 모든 면적을 가로질러 공을 쫓고 싶었다. 언젠가 이 시기가 지나면 우리도 프로와 비슷한 경기를 선망하게 될지 몰랐다. 지금 못 보는 그들의 경기는 그때 가서 보면 됐다. 일단은 우리의 설익은 숨이 충분히 차오르는 게 중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