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의 낭만
입에서 나오는 선언이 반드시 마음속 진심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 선언이 우리의 자발적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선언에 속는 건 타인이기도 하지만 자신이기도 하다. 우리의 진심은 의외로 입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는데, 많은 경우 ‘지갑’이 투명하게 그 알리미 역할을 맡는다. 지갑이 열리는 곳이 사실 사람의 진심이 향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어지간한 교양과 학식을 갖춘 우리 모두는 저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게 얼마나 중요하고 숭고한 일인지 잘 알고 있으며, 거기에 동의해 마지않는다. 하지만 실제 그 보호를 위해 내 개인 지갑을 열어야 한다면, 의외로 머뭇거리게 된다. 그래서 고음질 음악 파일이나 영화 파일을 불법 다운로드하여 아는 사람들끼리 공공연히 나눠보던 20여 년 전 음지의 문화가, 아직 척결되지 않고 있다. 더 시간을 되돌린다면, 인기 있는 만화책이나 소설도 빌려주고 빌려 보며 우리는 살아왔다. 그런 시절, 저작자들에게 지갑 열 생각이 스쳐 지나가기라도 했다면 다행이다.
일반 소비자들만의 문제일까? 한 유명 북디자이너분 밑에서 일했을 때의 일이다. 마침 당시에는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 유행했던 ‘크리에이티브’라는 철 지난 낱말이 다른 분야에서 절찬리에 사용되기 시작했었다. 그만큼 디자이너나 카피라이터들이 구현하는 놀랍고 기발한 생각들에 세상이 주목했기 때문이다. 그전 같았으면 ‘창의력이 뛰어나시네요’, ‘독창성이 돋보이네요’라고 했을 말들이 ‘크리에이티브가 대단합니다’로 바뀌었다.
디자이너들과 카피라이터들이 책을 내고, 각광을 받았다. 그들의 문제 해결 방식을 다룬 도서들이 서점 가판대에 진열되고, 베스트셀러에도 등극했다. 모두가 그들에게 손뼉 치고, 그들을 선망했다. ‘크리에이티브인’이라는 복합적 외래어도 심심찮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미술감독(아트디렉터) 위에 크리에이티브디렉터(CD)라는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게 됐다. 자기 스튜디오를 차린 젊은 디자이너들은 너도 나도 스스로에게 CD라는 직분을 주고 명함을 팠다. 그런 때였다.
그때 나는 그 유명한 북디자이너분께 ‘크리에이티브’로서는 인정을 받지 못해 행정 업무를 도맡아 했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건 견적서를 만들어 의뢰인들에게 보내 결제를 받아오는 거였다. 견적은 주로 종이값, 인쇄비, 제본비를 합산한 것이었다. 처음 견적서를 만들 때, 난 각 공급처에 의뢰를 하고 비용 정보를 받아 서류를 완성시켰다. 그분께 혼이 났다. ‘크리에이티브’ 비용을 빼먹었기 때문이다. 고객들의 의뢰를 받고, 북디자이너께서 고민하고 또 고민해 내놓은 창의적 답안, 즉 크리에이티브에 대해서도 가격을 책정해야 한다고 하셨다.
“얼마 정도로 하면 될까요?”
“100만 원 정도는 받아야겠지.”
하지만 예전 견적서들을 참고했을 때 ‘크리에이티브’라는 항목은 없었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종이, 인쇄, 제본뿐이었다. 그래서 ‘크리에이티브’ 항목을 한 칸 추가하여 100만 원을 기재했다. 결과는 또 실패. 그분께서는 다시 호통을 치셨다. “누가 크리에이티브에 100만 원을 주냐? 아무도 이 돈 안 준다!” 그날 나는 그 100만 원을 종이값과 인쇄비와 제본비에 적절히 배분해서 숨기는 법을 배웠다. 각 공장들에서 준 비용보다 높아진 값으로 중간에서 견적서를 조작한 거라고 할 수 있다.
요즘 말로 ‘현타’가 세게 왔다. 그렇게나 ‘크리에이티브’가 유행하던 때, 디자이너라는 사람들의 말 한마디 한 마디가 숭배되던 시기, 그래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갈채를 받고 미디어의 관심을 끌던 분위기에서도, 사실 그 아이디어 자체에 돈을 지불하려 했던 사람은 드물다는 사실이 절망스러웠다. 심지어 내가 모시던 분은 꽤나 이름을 날리시던 분이셨다. 이런 분께조차 클라이언트들은 ‘아이디어 비용’을 내기 싫어한다니,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세상은 그저 신기한 것에 박수만 칠 뿐, 좋아 보이는 구호에 동조했을 뿐, 진심은(그러므로 지갑은) 굳게 닫혀 있었던 것이다.
‘저작권 보호’는 창작물을 함부로 가져다 소비하면 벌금을 낸다는 협박을 가지고는 자리 잡지 못한다. 신선하고 손뼉 칠 만하고 독특하고 칭찬할 만한 작품을 봤을 때, 그 감탄과 환호를 입이 아니라 지갑으로 하는 문화가 정착될 때에 진정으로 뿌리를 내린다. 잘 쓴 글을 보고 ‘이 감동은 n원 짜리야’라는 마음이 습관처럼 들 때, 그래서 그걸 실제 이체하는 행위가 자동으로 손끝에서 이뤄질 때 ‘저작권 보호’라는 개념은 꿈틀거리며 하나의 실체가 될 것이다. (글의 감동이 얼마 짜리냐는 별개의 문제므로 다루지 않겠다.)
저작권 보호? 모두가 동의한다. 모두가 동의하는 것을 주야장천 설교하고 밑줄 그으며 강조해 봐야 소용없다. 이미 모두가 동의하고 있으니, 잔소리처럼만 들릴 뿐이다. 문제는 저작권 보호를 위해 실제 할 일에 대해 아무도 직설하지 않는다는 거다. 방법은 간단하지만 어렵다. 돈을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개 소비자부터, 창작물에서 느끼는 감동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어야 한다. 그걸 북돋는 게 진짜 저작권 보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