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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사진을 써요,

사라지는 것들과 생각이 머무는 자리를 찍어요

by 온다



늘 영감이 되어주던 나의 친애하는 친구,

사랑이란 게 있기는 한 거냐며

힘없는 분노를 나누던

나의 20대 시절의 사랑스러운 친구가

어느샌가 사람 좋은 단짝 친구를 만나

외국으로 함께 유학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선사해 주고 간 선물은 필름카메라였다.


일명, 똑딱이.

버튼을 똑⏤딱 누르면

필름이 휘이잉 감기는 소리를 내며 사진이 찍히는

매 순간마다의 경이로움을

처음 맞이한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분명, 어릴 때 수없이 다뤄봤을 물건인데도

왜 그때 그렇게 새롭게 다가왔는지.


우리는 결과보다는 과정을 연기해 내야 하니까.

그녀가 나에게 영감을 주는 것들은

그 과정에 관한 것들이었다.

맑고 순수함에 관한 것들이었고,

예술가로 살아내고 견뎌내기에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

손에 쥘 수 있는 것들과 맞바꾸더라도

여실히 버텨낼 힘을 주는 것들.


그녀는 혼인과 동시에 잠시 유학을 떠났는데

두 아이와 그녀의 남편과 함께

먼 타지에 아예 자리를 잡고야 말았다.

나의 영감이 되어주는 친구가

멀리 떨어진 것은 아쉽지만

나는 문득문득 그녀가 행복을 쟁취해 낸 것에 대해

동경과 경외를 표하기도 한다.

그녀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이상하리만치 사무치게 감사하고 행복하다.


누군가의 행복이

그토록 행복이라는 단어에 박한 나에게 행복이 되다니.

그녀는 내게 영원한 영감을 남기고 갔구나⏤

생각하곤 한다.


나는 더 이상 움직이길 멈추고

몸뚱이만 남은 카메라들을

몇 개나 처박아 두고 있는지 모르겠다.

왠지 버릴 수는 없는데

다시 꺼내 고쳐볼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잊고 있던 초창기 미러리스를 되찾았다.

진심으로 응원했던 동료에게 선물하는 셈 치고

빌려줬던 터라 돌려받을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는데

끝나지 않을 것 같던

2년 남짓의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그녀가

여행에서 채워온 생기와 함께

카메라를 돌려주겠다고 연락을 해온 것이다.

마침 좋은 타이밍에 미러리스가 돌아와

필름카메라를 떠나보낼 기회가 생겼고

이제는 미러리스로 셔터를 남발하고 있달까 :)


사실은 확실한 이유가 있다.

부르는 게 값이 되어버린 필름값도 값이지만,

몇 번이나 거듭되는,

티도 나지 않는 카메라 고장으로

귀한 순간들을 영영 잃은 경험에 지쳐버렸기도 하고

(한 때는 필름카메라의 묘미라고 생각하고

잘 버리는 법을 배운 시절이 있긴 했다)


좀 더 예리하게 사라지기 전의 것들을,

생각이 머무는데 그치지 않도록⏤

흘러가는 대로 맡기는 게 아니라

더 늦기 전에 명확한 형태로

담아보고 싶은 욕망이 일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시간을 과감히 떠나보내는 걸 잠시 멈추고,

넘치는 양의 기억들을 수집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고.


필름사진에 담아 온

꽤 대대적인 장정에 마침표를 찍으며

여기에 하나하나 끄집어내 보려 한다.


뭐, 언젠간 다시 흘러가는 곳으로 돌아가

글과 사진은 또 쌓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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