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늘의 사건 사고

2017.11

by 온다



1.

그 즈음 두 번이나 극장에서 본 '라라랜드'가

시드니에서도 개봉 중이었다.

세 번째라서일까

낯선 곳에서 움츠러들었기 때문이거나

자막 없이 이미지를 흘려보낼 수 있었기 때문일까

값이 좀 되는 맥주바틀과 함께

감정 그대로를 들이킬 수 있었고

그건 매우 산뜻했다


크레딧이 올라간 후에도 한참 자리에 앉아있다가

청소부가 좌석을 들썩이자 그 때서야 바깥으로 나왔다.

잠시 지나간 소나기의 흔적이

유리천장 위로 장식처럼 반짝였다

먼 곳에 오니 지난 감정들도 소나기처럼

지나가 버린 듯 했다.


빈 유리바틀을 쓰레기 더미 위에 조심스레 포개놓고

선착장 주변을 걷기로 했다.


얼마나 더 끌어내려야 삶이 예술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에 빠져 꽤 멀리까지 가서는

낯선 곳임을 자각하고 얼른 숙소로 되돌아 왔다





2.

착각이 달콤할수록

치명적이란 걸 알고 있다.

몸이 얼어붙는 걸 잊을만큼.


그래도

그래도, 라고 되뇌이면서

그 노래가 나를 향한 이야기였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3.

어느 날 혼자 걷는 길 위에서

꽃 한송이를 만났다


그가 질 때까지 바라보고 싶었지만

해가 저문 어둠을 버텨내기 두려워 나는 떠나버렸다


꽃은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혼자 기대하고 적잖은 상처를 얻었다

그리고는 여전히

꽃이 싫다고 말한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02화하나 그리고 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