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
1.
그 즈음 두 번이나 극장에서 본 '라라랜드'가
시드니에서도 개봉 중이었다.
세 번째라서일까
낯선 곳에서 움츠러들었기 때문이거나
자막 없이 이미지를 흘려보낼 수 있었기 때문일까
값이 좀 되는 맥주바틀과 함께
감정 그대로를 들이킬 수 있었고
그건 매우 산뜻했다
크레딧이 올라간 후에도 한참 자리에 앉아있다가
청소부가 좌석을 들썩이자 그 때서야 바깥으로 나왔다.
잠시 지나간 소나기의 흔적이
유리천장 위로 장식처럼 반짝였다
먼 곳에 오니 지난 감정들도 소나기처럼
지나가 버린 듯 했다.
빈 유리바틀을 쓰레기 더미 위에 조심스레 포개놓고
선착장 주변을 걷기로 했다.
얼마나 더 끌어내려야 삶이 예술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에 빠져 꽤 멀리까지 가서는
낯선 곳임을 자각하고 얼른 숙소로 되돌아 왔다
2.
착각이 달콤할수록
치명적이란 걸 알고 있다.
몸이 얼어붙는 걸 잊을만큼.
그래도
그래도, 라고 되뇌이면서
그 노래가 나를 향한 이야기였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3.
어느 날 혼자 걷는 길 위에서
꽃 한송이를 만났다
그가 질 때까지 바라보고 싶었지만
해가 저문 어둠을 버텨내기 두려워 나는 떠나버렸다
꽃은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혼자 기대하고 적잖은 상처를 얻었다
그리고는 여전히
꽃이 싫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