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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뜽삼이 Jun 11. 2023

무기력

오늘은 어째서인지 무기력하다. 불행하거나, 불편하거나 혹은 답답하거나 짜증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의욕이 샘솟지 않을 뿐이다.


11시가 다 되어 아내와 함께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로써  '내일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서 수리산에 가자' 던 우리 부부의 다짐은 확실하게 물거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일어나자마자 나는 아내와 함께 어제 계획해두었던 '마파두부'를 요리하기 위해, 그 핵심 재료인 '두부'를 사러 다녀왔다. 지난 번에는 단단한 두부로 요리했었는데, 이번에는 연두부로 해보고 싶었다. 


마늘과 생강, 대파, 화자오/마자오 등의 향신채를 손질하였다.

연두부 역시 를 예쁘게 잘라 물에 데쳐두었으며, 지난 번에 마파두부를 만들고 남은 돼지고기(다짐육)를 볶기 시작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내가 무기력하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알아차리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아직은 그래도 기력이 남아있던 것일까?


식사를 마치고, 이어서 설거지를 끝냈다. 저녁에 강남역에서 친구들을 만날 예정인 아내와 함께 집에서 나왔다. 수리산에 잠깐 들러 산책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번에는 집에서부터 수건을 한 장 챙겨갔는데, 수리산 황톳길을 맨발로 걸은 다음 발을 씻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막상 도착한 수리산에서 나는 말 그대로 '무기력'을 느꼈다. 

'어제 새벽에 분명 비바람이 휘몰아쳤는데 왜 이렇게 흐르는 물은 적은거지?'

괜시리 산 속에서 흐르는 시냇물에 불만을 표해본다.


'산스장(산 속 헬스장)도 있으니, 거기 가서 팔굽혀펴기나 좀 해볼까?'

그러나 이 계획 또한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도저히 팔굽혀펴기를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산책을 마친 뒤 아내와 함께 산본역 근처로 이동하였다. 거기서 아내는 지하철을 타러 가고, 나는 거의 3주 만에 피아노 연습실로 향했다. 이상하다. 전혀 즐겁지 않았다. 내 시선은 자꾸만 스마트폰으로 향한다.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기껏해야 1시간 예약했을 뿐인데. 치다 말고 자꾸만 시간을 의식하는 것은 왜였을까?


집으로 돌아와서는 또 요리를 시작했다. 이렇게나 무기력한 와중에도 요리를 피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신기한 노릇이다. 며칠 전 아파트 시장에서 사먹고 남은 족발을 내가 만든 팟타이소스와 함께 불에 볶아 밥이랑 먹었다. 맛이 아주 좋았다. 


그리고...


뭘 하지?


지금도 눈을 꿈뻑꿈뻑거리며 글을 쓰고 있다. 다행히 잠은 잘 올 것 같다. 


이 무기력을 곰곰히 뜯어보았다.

어쩌면 월요일이 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고,

또 아내와 함께 소중한 주말을 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크나큰 아쉬움일 수도 있다.

아니면 어제 명상춤 수업에서 스트레칭을 과도하게 한 나머지, 양 어깨에 심각한 근육통이 찾아왔는데

몸 컨디션이 떨어지면서 반대로 마음 컨디션에도 악영향을 끼친 것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이유가 그 무엇이든 간에

이 무기력 또한 소중한 나의 일부겠지?

남은 하루를 잘 마무리하고 또 하나 뿐인 내일을 위해 푹 쉬어야겠다.


-23.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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