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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뜽삼이 Jun 15. 2023

답할 줄 아는 용기


"카인님 그런데 교육 장소에는 가고 싶어서 가시는 거예요? 만약에 제가 혼자 가는 게 걱정되셔서 가시는 거면 안 가셔도 돼요."


오후에 교육이 있을 예정이었고, 일찌감치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H님이 내게 말했다. 이 말을 듣자마자 가슴이 쪼그라드는 것을 느꼈는데, 마치 H님이 나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막고자 한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리라. 약간의 긴장감이 느껴지면서 순간적으로 호흡히 가빠졌다. 도대체 저 문장을 나는 어떻게 해석하고야 만 것일까? 아마 이랬을 것이다.


"카인님 그런데 교육 장소에는 가고 싶어서 가시는 거예요? 만약에 제가 혼자 가는 게 걱정되셔서 가시는 거면 안 가셔도 돼요." 

= "저 혼자 가도 되는데 왜 굳이 가겠다고 하신 거예요?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저 혼자서도 할 수 있는데 괜히 나서신 것 같네요. 지금이라도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세요! 바로 지금. 제 앞에서!"


그런데 최근에 배운 내용에 따르면, 아직까지는 내가 해석한 것이 바로 H님이 의도한 그 뜻과 일치하는지 알 겨를이 없었다.

1초 내외의 짤막한 혼돈을 경험한 뒤, 이내 정신을 차려 내 안에 있는 것들을 H님에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네, 사실 걱정되긴 하는데 그것은 H님이 혼자 못하실 것 같아서가 아니고요. 제가 어제 혼자 해봤을 때 너무 버겁더라고요. 사람들이 일찍 도착해서 이것저것 해달라고 하니 정신없기도 하고... 그래서 같이 가서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네,제가 가고 싶어서 가는 게 맞아요. 그런데 만약 H님이 혼자 가길 원하시면 그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이렇게 나를 표현하자, 이어지는 H님의 반응으로부터 아까 내가 해석한 것이 H님이 의도한 뜻과 일치하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아 저는 카인님이 저랑 같이 가주시면 좋죠. 같이 하는 게 더 편하니까... 그런데 만약 저 때문에 가시는 거면 안 가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빙고! 이 얘기를 듣자마자 나는 그녀가 역으로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제가 사실은 가고 싶지 않은데 H님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닌가 싶어 걱정되셨던 건가요?"

"네, 그렇죠"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는 것을 느끼며)아니에요. 저도 그거 혼자 하는 게 어렵다는 걸 경험해봐서 같이 가고 싶은 거죠"


그런데 내가 만약 이렇게 질문했었다면 그녀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렇게 여쭤보시는 의도가 무엇인가요?"


때때로 '직접 묻기'를 통해 상대방의 의중을 알아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신중해야 한다. 무턱대고 질문을 던지는 것은 상대를 방어적으로 만들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최대한 '일치적'인 방식으로 나를 표현한 뒤, 상대방의 반응을 예민하게 살피는 데 집중하였다. 

여기서 가장 어려운 것은, 상대방의 질문이 나를 얼어붙게 할지라도 내 의지로 빠르게 얼음을 녹인 뒤,  원하는 모습으로 상대방 앞에 서는 것이다 ! (사티어는 일치적인 인간의 특징으로 어떠한 질문에도 답을 할 줄 아는 것을 꼽았다.)


오늘의 교훈은 다음과 같다.

상대방의 말이 애매모호하면 물어보는 게 낫다. 그러나 물어보지 않고 알아내는 것이 최고다.



-23.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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