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뜽삼이 Jun 14. 2023

아내의 안에는


아내가  설거지하던 중, '같이 산책하러 갈까?' 하고 내가 먼저 제안하였다. 설거지를 마무리하며 아내는 '좋다'고 대답하였다. 그 무렵  나는 글을 쓰는 데 필요한 문장을 수집하기 위해 책을 가지고 컴퓨터가 있는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설거지를  끝마친 아내는 클렌징 오일로 얼굴을 부비적대며 내 앞에 등장하는 것이 아닌가!


무언가 수상쩍었다. 나는 다음과 같이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가 설거지를 끝마치는 즉시, 우리는 밖에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아내는 나와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이미 산책을 위한 준비를 마쳤으며, 그저 아내가 설거지를  끝마치기만을 기다렸다는 점을 주지시켰다. 그 말을 들은 아내는 세수만 얼른 마무리하고 산책하러 나갈 것을 맹세한 채 시야에서  사라졌다.


"자기야 언제쯤 나갈 수 있어?"


위  문장은 뜻밖에도 나의 입이 아닌, 바로 아내의 입에서 나온 문장이다. 아내는 씻는 도중 나의 준비 상태를 확인하고자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진 것이다. 이 질문에 나는 적잖이 당황하였는데, 아내가 세수하기를 기다리는 것은 다름아닌 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질문을 듣는 순간, 마치 아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은 인상을 받게 되었다. 그렇다. 우리의 의사소통 과정에서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즉각 인지하였다.


여전히 씻고 있는 아내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까 전에, 내가 자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또 바로 나갈 준비가 되었다고 이야기했잖아. 그런데 지금 나에게  언제 나갈 수 있냐고 질문한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아까 내가 한 말이 자기한테 어떤 의미로 다가갔을까?"

"무언가 잘못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아서, 나는 이걸 바로잡고 싶거든"


아내는 내가 컴퓨터 앞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것만으로도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는 의미로 해석한 모양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는 의문이 가시질 않았다. 과연 그 뿐일까?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불현듯 하나의 새로운 가능성이 스쳐지나갔는데, 어쩌면 아내도 계속해서 '씻기를 완성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던  것이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차근차근 아내에게 질문을 던지며 아내의 내면을 탐색해나갔다. 나의 안에서도 순간순간 언짢은 느낌이  올라왔지만, 아내를 존중하는 마음을 떠올리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나중에 확인한 결과, 다행히 아내 역시 나의 질문들에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렇게까지 소통하려는 의지를 가져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느꼈다고 한다.)


예상대로 아내는-비록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으나-씻기에 대한 욕구가 매우 충만한 상태였다!

1) 생각해보니 저녁 먹고 양치를 하지 못했으며,

2) 복싱 체육관에 다녀와서 양말을 벗고 발을 보니 매우 더러운 상태였다

는 점을 어필하는데, 이는 씻기에 대한 열망이 강렬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요새 의사소통에 관심이 많다. 그 시작은 아내와의 소통이다.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과 상대방이 해석하는 내용은 대부분의 경우 '다르다'. 중요한 것은 그 간극을 줄여나가려는 노력이 아닐까?

그리고 이와 같은 '내면 탐색'을 위한 대화를 나눌 땐 아래의 교훈을 명심해야 할 것 같다.

상대방이 무엇을 의도했는지, 그리고 나의 말과 행동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스스로 이해하고 있을 거라 단정짓지 말 것.

-23.06.14





작가의 이전글 오해 해소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