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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뜽삼이 Jun 17. 2023

모르는 척 하기


나도 글 쓸 줄 아는데...

점심시간에  모처럼 만에 팀원들과 다같이 도시락을 싸들고 DDP로 향했다. 여기서 '팀원들'에는 팀장님과 H님 단 2명이 포함되어있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도시락을 까먹는데 내가 자주 애용하는 피아노에서 녹턴 선율이 흘러나온다. 누군가 그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팀장님이 H님에게 글을 자주 쓰냐는 식의 질문을 던졌다. H님은 브런치에도 쓰고 블로그에도 글을 쓴다고 대답하였다. 그 때,  순간적으로 내 안에서도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나도 글 쓰는데 ! 나도 글 좀 쓰는데 ! 나도 브런치 작가인데 !'


내  안의 목소리를 그대로 외부로 드러냈다가는 대화의 흐름이 깨졌으리라. 그 때 당시 스포트라이트는 H님에게로 향해있었고, 나 역시 그  흐름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길 원했다. 그러나 어쨌든 밖으로 튀어나가려는 그 목소리를 잠재우는 데 꽤나 애를 먹었다. 이 때  등장한 내면의 규칙은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근처에 있는 누군가가 주목받고 있는가? 그리고 그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것을 나 또한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나 역시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호소해야 한다. 관심을 받기 위해서는.


판정하는 자아

오후에는  우리 셋이 모여 아이디어를 발산하는 회의를 하였다. 고객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더 효과적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우리가 무엇을 해볼  수 있을지를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최근에 「인플루엔서」라는 책의 내용을 팀원들에게 공유한 적이 있었고, 오늘 회의 역시 그 때  내가 공유한 내용을 기반으로 진행되었다. 예를 들면, 「인플루엔서」에는 1. ~ 2. ~ 이런 내용들이 있는데, 각각의 내용을  우리 활동에 어떤 식으로 적용해볼지 논의하는 식이다. 그래서 나는 H님이 어떤 의견을 제시할 때마다, 과연 「인플루엔서」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과 합치하는지 그 여부에 자연스럽게 의식이 집중되었다. 내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이러하였다.


'음... 그건 「인플루엔서」에서 주장하는 것과는 좀 다른 것 같은데. 음... 그 의견은 「인플루엔서」랑은 거리가 먼데...'


그러나,  「인플루엔서」가 제시하는 방법론의 효과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팀원 H님의 의견 제시를 가로막을 권리가 그 누구에게 있단  말인가? H님이 제시하는 방법의 효용을 아이디어 발산 단계에서 평가하고 판정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는가? 내 안에서  판정하는 자아가 등장할 때마다 불편하고 매스꺼운 느낌도 함께 올라왔다. 동시에 나의 의견이 더 적절하다는 것을 주장하고자 하는  욕구도 의식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아마 다음과 같은 규칙이 있었을 것이다.


책을 감명 깊게 읽었는가? 그래서 그것을 남들보다 잘 안다고 확신하는가? 그렇다면 그 지식을 잣대로 남들의 의견을 평가해야 한다. 내가 더 낫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러나  팀으로서 효과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회의의 방향성은 지속적으로 점검하되, 아이디어 자체는 최대한 이끌어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다음 번에는 좀 더 수용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현실성/효과성 등은 나중에 아이디어를 '수렴'하는 단계에서 테스트해도 늦지 않을  테니.


-23.06.16



p.s. 점점 '저널쓰기'에서 멀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글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조금 더 내면에 다가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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