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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뜽삼이 May 28. 2023

사티어 모델로 나 자신 이해하기

오늘 아내와 나누었던 대화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오늘은 아내의 대학 친구들이 집들이를 위해 우리 집에 방문하는 날이다. 지금쯤 슬슬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겠지? 나는 홀로 집에서 나와 수리산자락에 위치한 군포시 중앙도서관에 와있다. 근처에 주차를 한 뒤, 도서관에 가방을 두고 우선 수리산으로 향했다. 산림욕장에서 각양각색의 나무와 꽃들이 내뿜는 피톤치드를 한 사발 들이키기 위함이었다. 식물들이 저마다 발산하는 이 풀내음의 조합은 언제 맡아도 향긋하기 그지없는데,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에는 그 향기가 최고조에 달하니 놓치면 나만 손해다. 게다가 오늘 오전 아내와 나 사이에 의사소통 문제가 있었다. 숲 속을 거닐며 나 자신을 돌아보고 또 내 안을 자연에서 오는 에너지로 가득 채우고 싶었다.


집들이 음식에 필요한 준비물을 구매하기 위해 오전 10시 30분쯤 아내와 함께 동네 마트로 향했다. 얼마 전부터 아내와 나는 장을 볼 때 가급적 식재료를 포장할 수 있는 '용기'(ex.락앤락)를 챙기려고 노력한다. 오늘도 아내가 락앤락 하나와 예전에 한번 재료를 담는 데 쓴 적이 있는 지퍼백을 챙긴다. 이 지퍼백은 한번 쓰고 나서 세척을 마친 놈이었는데, 지퍼백 겉 부분의 촉감이 무언가 꺼림칙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물질이 묻어있을 거라 생각했고, 나중에 다시 세척하기 위해 그 지퍼백을 주방의 한 켠에 치워두었었다. 그리고 아내가 챙겨 나온 것은 다름 아닌 그 지퍼백이었다.


나의 마음 속에서는 불편함,짜증,불안함 등의 느낌이 일어났다.

나는 아내에게 설명하기 시작한다.

"지퍼백의 겉에 뭔가 묻어있는 상태인데, 자기가 손으로 그걸 만졌고, 그 손으로 또 나를 만지고 있잖아? 단순히 오염에 대한 강박 이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 오염이 옮겨가는 것에 대한 걱정, 불안이 있어"


내 딴에는 나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솔직하게 고백하는데, 어쩐지 아내의 반응이 영 시원찮다.

"음...그랬구나"


내가 아내에게 위와 같이 말을 했던 것은, 나의 감정을 아내에게 인정받고 수용받고 싶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음 그랬구나' 정도로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나는 한층 더 큰 좌절감을 맛보게 되었다.  


이러한 좌절감을 한번 더 표현하였다. 그런데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 같다.


방금 전,「테크니컬 리더」라는 책에서 '사티어 모델'을 접하게 되었는데, 의사소통을 이해하는 데 매우 강력하고 효과적인 듯한 관점을 제시한다. 나는 여기에 흥미를 느꼈고, 오늘 있었던 일에 사티어 모델을 적용해보고자 한다.


1단계 : 감각 기관을 통한 입력

아내가 "음 그렇구나" 라고 말을 하고, 그 말은 나의 귀를 통해 입력된다. 그런데 여기서 함정이 있다. 어쩌면 아내는 "음 그렇구나"라고 말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내의 목소리, 어조 또는 비언어적 표현 등을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

절대로 상대방이 보낸 메시지를 그대로 받을 수 없다.
- 제럴드 와인버그, 「테크니컬 리더」


2단계 : 해석

1단계에서 아내가 한 말이 나에게 "음 그렇구나"라고 입력되었다. 그런데 나의 과거 경험을 기반으로 다양하게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음 그렇구나. 별로 와닿지 않으니 다른 주제로 넘어가자"

"음 그렇구나. 지금은 장을 봐야 하니 나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음 그렇구나. 피곤하니까 더 이상 얘기하지 말아 줘"

첫째로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며, 둘째로 다양한 해석 중에서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기대하는 해석이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제럴드 와인버그, 「테크니컬 리더」


3단계 : 감정

2단계에서 해석된 메시지에 대해, 자동반사적으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예를 들면

"내가 용기 내서 나의 현재 상태를 이야기했는데, 그것이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을까봐 두렵다."

"내가 한번 더 나의 상태를 표현했는데도 불구하고, 별다른 반응이 돌아오지 않아 실망스럽다."

"이대로 나의 감정이 수용되지 않을까봐 긴장된다."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감정이 먼저 나타난다.
- 제럴드 와인버그, 테크니컬 리더」


4단계 : 감정에 대한 감정

감정에 대한 감정은 나 자신의 '자존감'에 달려 있다. 만약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3단게에서 불안/공포/두려움 등의 감정을 경험한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방어하거나,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현실에서 도피하거나 등의 선택을 내릴 수 있다. 반면 자존감이 충만하다면 3단계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에 따르는 자신의 반응을 이해함으로써 그 반응을 더욱 잘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오늘 내가 아내와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는 데 방해가 되었던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책에서는, 사티어에 따르면 이 4단계가 매우 중요한 지점이라고 한다. 나는 나의 두려움, 걱정, 불안, 긴장감을 알아차리는 데 성공했다고 생각하였으나, 그러한 감정들을 현명하게 처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5단계 : 방어

결과적으로, 이후 아내와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나는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아내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못하였고, 계속해서 해소되지 않은 나의 감정 안에 갇혀 건설적인 대화의 장으로 나아가질 못했던 것이다. 분명 아내는 듣지 못하였겠으나, 나는 줄곧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나의 감정이 당신에게 이해받기 전까지 나는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을 거야!"


6단계 : 의사소통 규칙

이러한 내면의 외침은 일련의 의사소통 규칙에 따라 필터링되어 외부 세계로 표출된다. 내가 가지고 있던 규칙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비록 감정적으로 동요하고 있더라도, 최대한 침착하게 나의 상황을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비폭력대화를 배운 사람이기 때문에 상대방을 평가하지 말고 나의 느낌과 욕구를 말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규칙들이 적용되어 내면의 목소리는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아내에게 다가간다.

"(이를 꽉 깨물고 표정은 굳은 채) 자기야, 자기가 '음 그렇구나' 라고 얘기했을 때, 나의 이야기가 수용되길 원했기 때문에 좌절감을 느꼈어..."


7단계 : 결과

6단계 규칙을 적용한 문장은 나의 비언어적 표현과 더불어 실제 결과로 나타난다. 그 결과는 다시 아내 입장에서 1단계 입력이 된다. 이렇게 사이클이 반복되며 의사소통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로부터 깨닫게 된 오늘의 교훈은 다음과 같다.

나의 말과 행동에 (나조차 모르는)나름의 이유가 있듯이, 상대방의 반응에도 (상대방조차 모르는)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서로 이해하는 것이 의사소통의 시작이다.


23.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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