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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뜽삼이 May 28. 2023

행복은 때때로 그 모습을 감추고 있다.

"자기야, 자기네 가족과 함께 시간 보내는 거 나도 편하고 좋은데, 이렇게 많이 방문하는 것은 좀 힘들기도 한 것 같아. 아무래도 우리만의 시간과 경쟁 관계에 있다보니, 그만큼 우리 시간이 줄어드는 거니까. 자기한테는 원가족이지만 나한테는 아니니까 어쩌구저쩌구..."


아내의 가족을 만나러 떠나기 직전, 내가 그녀에게 한 말이다. 어쩐지 쉬고 싶고 게임을 하고 싶고 책도 보고 싶고 그런 와중에 토요일 점심부터 아내의 가족을 만나러 떠나는 발걸음이 꽤나 무거웠던 모양이다.


아내의 아버지(장인어른이라는 호칭이 있지만 우리는 그 호칭을 쓰지 않는다)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온가족이 모여 점심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다. 일단 한번 만나고 나니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그 시간을 즐길 수 있었고, 12시 반쯤 만나 거의 저녁 7시가 다 되어서야 헤어졌다. 밥을 먹고 아내의 집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이젠 제법 편해져 소파에 눕기도 하고, 안마 의자에 앉아있다가 잠을 청하기도 했다. 


해가 지기 전에 그 곳을 떠나고 싶었다. 낮잠을 자서인지 머리가 지끈거렸고, 근처에 있는 칠보산에서 잠시 산책을 하며 나무들이 내뿜는 산소를 흠뻑 들이마시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내의 어머니, 아버지도 산책을 하시겠다며 우리와 함께 집 밖으로 나오셨다. 그런데 집 안에서 바라볼 때와는 달리 비가 꽤나 거세게 내리는 것이다 !


나는 갈등하기 시작했다. 비가 조금 오지만 산책을 조금 해보는 게 나을까? 아니면 신발과 옷이 더러워질 테니 그냥 차를 타고 아예 자리를 이동할까? 


그 순간, 조금 전 비가 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즉시 집으로 돌아가셨던 어머니가 우산을 챙겨 다시 나오시는 것이 보인다. 어머니의 손에는 우산이 무려 3개나 들려있었고,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그래 잠깐 걷고 가자"였다.


우리 넷은 칠보산 쪽으로 발걸음을 향하였고, 비를 흠뻑 머금은 대신 맑은 공기와 향을 토해내는 나무들 사이를 걸었다. 생명력을 간직한 두꺼비 약 6-7마리를 발견하였는데, 그 두꺼비들로부터 일종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비'는 자연이 지속하거나 성장해나가기 위한 소중한 양식인 것 같다. 잠시나마 나 또한 자연의 일부가 되어 태동하는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고, 나를 괴롭혔던 두통은 거짓말 같이 사라져있었다. 사티어 명상법에 따라 호흡도 해보았는데 어쩌면 그 효과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교훈은 다음과 같다.


행복은 때때로 그 모습을 감추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 처음에는 하기 싫다가도, 일단 하고나면 예상치 못했던 행복감을 맛보는 수도 있는 것이다.


23.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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