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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뜽삼이 Jul 03. 2023

새로운 형태의 여행

23.07.02.일요일


오늘은 아주 색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 우리 부부는 각자의 생일에 따로 선물을 준비하는 대신, 여행을 떠나기로 정한 바 있었다. 4월 25일 아내의 생일에는 정선으로 여행을 떠났었고, 7월 4일 나의 생일을 앞두고 우리는 지금 횡성의 어느 펜션에 와있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하였는데, 집 한 채를 통째로 빌린 느낌이다. 들어오는 길에 펜션 이름이 쓰여있는 팻말을 발견하였는데 그 팻말을 통해 '원래는 펜션이었나?' 하고 추측할 뿐이다.


이번 여행은 우리가 그 동안 해오던 여행과 아주 다르다. 우선 숙박비만 20만원에 육박한다. 그 동안 야놀자를 통해 5,6만원 짜리 '잠만 잘' 숙소를 구했던 것과 비교하면 파격적이다. 그리고 바깥에서 돌아다니는 시간 없이 오로지 숙소에서'만' 머무르고 있다. 체크인 시간이 3시였는데, 조금 늑장을 부리느라 3시 반쯤 도착한 뒤로 계속 이 곳에 머무르고 있다. 이번 여행의 컨셉은 휴식, 재충전 그리고 독서였다. 

오자마자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적어나갔다.


            상반기 업무 회고/정리          

            글쓰기          

            독서          

            자연석* 정리                                          독서 기록                                            경험 정리                                    

*내가 일상 속 모든 경험으로부터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들을 기록해두었는데 그 하나하나의 기록을 자연석이라고 부른다.


저녁 먹기 전까지는 노트북을 뒤지며 지난 3개월 간 해온 일들을 돌아보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뿔싸, 여기에 너무 많은 시간을 써버렸다. 심지어 다 끝내지도 못했다. 


집을 떠나기 전, 이마트트레이더스에서 구매한 몇몇 간편식사를 간단하게 조리하여 저녁식사를 해결하였다. 그리고 나서 독서모드로 들어갔다. 책도 한보따리를 싸왔는데, 캐리어 안에 담아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천재성을 다루는 책 한 권만을 겨우 훑어봤을 뿐이다. 그런데 벌써 시간이 새벽 1시를 넘겼다. 시간이 생각보다... 짧은 것 같다.


이런 여행은 처음이다. 이렇게 떠나올 생각을 단 한번도 해보지 못했다. 아내와 나는 연애 초창기부터 그저 돌아다니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같이 붙어있으면 2시간이고 3시간이고 할 말이 끊이질 않았는데, 그래서 우린 영화관에 가본 적이 없을 정도다. 영화관에 있는 것은 말할 기회를, 자유를 박탈당하는 안타까운 시간이라 느끼기 때문이다. 2시간 3시간 내내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니! 대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영화를 볼 수 있다면 그것은 괜찮다. 집에서는 가끔 영화를 본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 곳에 돌아다니지 않고 그저 한 공간에서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원하는 대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굉장한... 기쁨인 것 같다. 이런 종류의 여행을, 두어 달에 한번은 다니고 싶다. 


문에 들어서자 황토와 나무 그리고 약간의 향수 냄새가 섞인 기분 좋은 향이 우릴 반긴다. 여유로운 공간이 우릴 안아준다. 오직 우릴 위한 시간과 공간. 밤이 되어 밖에 나가보니 온 세상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보름달이 우리더러 이제 나왔냐며 인사를 건넨다. 이제 나와서 미안하다고,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그 인사에 화답한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수놓은 다른 친구들이 있는지 두리번거린다. 분명 반짝이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고 애쓰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밝은 저 달이 있어 그 친구들은 존재감을 드러내기에 역부족이다. 아까 차를 타고 올라오는 길목에 있던 개들이, 짖지 않던 그 개들이 어두컴컴한 밤중에 우릴 보니 이번엔 짖는다. 동네방네 소문날까, 황급히 집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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