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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뜽삼이 Jul 03. 2023

어느 숲해설가 선생님과의 만남

23.07.03.월요일


횡성의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마친 뒤, 간단히 점심식사를 하고 근처에 있는 작은 절로 향했다. 온통 푸른 산으로 뒤덮혀있는 동네라, 아무리 작은 절이라도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줄로 기대하고 약 10분 가량 땀을 뻘뻘 흘리며 오르막길을 올랐다. 그런데 막상 도착한 곳에는 정말 대충 지은 것 같은, 볼품없는 모양새를 하고 있는 절이었고, 우리는 더 이상 볼 것도 없이 바로 뒤돌아 내리막길을 택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울창한 나무와 졸졸 흐르는 계곡 사이를 어떻게 한번 걸어볼 수 있을까 싶어 간단하게 검색을 해보았다. 횡성에도 분명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 만한 숲이 있긴 했으나, 그곳에 가려면 또다시 동쪽으로 약 1시간 가량 이동해야만 했고 그렇게 되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더더욱 험난해질 예정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당초 계획한 대로 횡성의 서쪽에 위치한 경기도 양평에 들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로 하였다.

그 전에 어제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던 책들의 부름에 응답하기 위해 잠시 카페에 들렀다. 책을 일긍며 시원한 음료를 한 잔씩 한 뒤, 우리가 향한 곳은 '산음자연휴양림'.


며칠 전 폭우가 내린 덕분인지 계곡에 흐르는 물의 양이 어마어마했다. 코 끝을 찌르는 풀내음이 너무나 반가웠다. 이 얼마나 그리워하던 향기인가!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숲길을 거닐기 시작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다니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게다가 어떤 구간은 공사중이었고 우리는 잠시 동안 길을 헤매기도 하였다. 


'이쪽인가?'

싶어서 향했던 길이 알고보니 내려가는 길이었고, 나는 짜증이 났다. 누가 봐도 이 방향은 산을 벗어나는 쪽 같은데 내 아내의 제안에 따라 이 방향을 선택한 것이 뭔가 못마땅했던 것이다. 우리는 다시 뒤돌아서 왔던 방향으로 올라갔다. 우리가 아까 길을 헤맸던 구간에 이르자, 이번에는 놀랍게도 올라가는 길이 보였다. 아까는 보이지 않았었는데... 그저 바라보는 각도만을 달리했을 뿐인데, 이번에는 누가 봐도 분명한 경로가 보인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그렇게 자연을 즐기며 올라간지 몇 분이나 지났을까? 저 앞에 성인남녀 3명이 걸어가는 것이 보인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아내는 '저 분이 숲해설가인가?' 혼잣말을 하며 나를 두고 그 무리에게 접근한다. 우리가 이곳에 도착한 시각은 약 2시 반이었는데 숲해설 시작 시각은 2시였다. 평소에 '숲해설 듣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아내. 이번에도 아쉽게 숲해설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인가 싶었으나, 놓쳤다고 생각한 바로 그 기회가 다시금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숲해설가 선생님은 한 쌍의 중년 부부를 데리고 숲해설을 해주고 계셨다.


숲해설가 선생님의 해설에는 힘이 있었다. 매력적인 이야기, 교훈을 주고자 하는 에너지, 자연에 대한 사랑... 그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있었다. 나는 그 해설에서 수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는데, 그 깨달음 가운데 하나를 기록하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그런데

벌써 시간이 11시를 넘겼고 나는 자고 싶다.


그래서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숲해설가 선생님이 해주신 이야기들은 OneNote 앱을 활용하여 녹음해두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꼭 하고 넘어가야겠다.


숲해설을 마치고 해산하기 직전에 각자 소감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내의 소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있었다. "평상시에 산에 다니면서, 나무 이름도 모르고 그래서... 공부하고 싶었는데...이런 우연한 기회에 숲해설을 들을 수 있어 좋았어요"


그 말을 채 끝까지 듣기도 전에, 숲해설가 선생님 입에서 나온 말이 가관이었다.


자연은 원래 이름이 없어요. 이름이 오히려 본질을 가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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