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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뜽삼이 Jul 04. 2023

베란다 문이 준 교훈

23.07.04.화요일, 나의 생일


오늘은 참으로 비참함을 겪었던 날이다. 오전부터 아내와 다, 투고 가 아니라 내가 일방적으로 크게 짜증을 내고야 말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매우 예민한 상태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것은 결코 바꿀 수 없는 나의 기질이다 !

내가 이 기질을 인지했다고 해서 원하는 모습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 선택권 자체가 없다... 

아내가 잠들어있으면 차라리 내가 짜증을 낼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무언가 나를 자극하는 것들을 봤다고 하더라도... 그러나 오늘은 아내 역시 아침 일찍부터 출장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6시 50분에 알람을 맞춰놓고, 아내는 6시 55분에 기상하였다. 저 멀리 의정부까지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나는 무엇을 보았길래 아침부터 짜증을 내고 지금 이렇게 일기장에 그 때 그 사건을 적으며 반성하고 있는 것일까?


바로, 문제의 원인은 바로 '열려있던 베란다 문'이었다 !!!!!! 누가 보면 꽤나 창피한 일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다. 우리 집에는 베란다가 있는데, 환기를 시킬 땐 베란다 창문과 베란다 문을 열어둔다. 어제 밤까지 환기를 시킨 뒤, 나는 아내에게 부탁했다.


"베란다 창문 닫고 자는 게 어때?"


미세먼지가 심하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우린 거기에 동의했다. 그렇게 우린 잠들었고.

오늘 아침에 일어났을 때 베란다의 창문은 닫혀있으나 안타깝게도 베란다 문은 열려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나는 베란다 문이 열려있으면 화가 난다. 왜냐 하면, 베란다는 별로 '실내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 안에는 다음과 같은 규칙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별로 실내 같지 않은 공간이 있다면, 최대한, 가능한한 최대한으로 분리시켜야만 한다.


그런데 그 규칙이 지켜지지 않았고, 아내를 믿었건만 !!! 그리고 베란다 문을 닫으며 생활하자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얘기된 바가 있었다. 그럼에도 아내는 여전히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분노가 들끓었다... 베란다 문을 닫는 것이 그렇게나 힘든 일인가!!! 창문을 닫고 이어서 문을 닫는 것이 그렇게나 어려운 일이냐는 말이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분노, 화라기보다는 '절망' 혹은 '좌절'에 가까웠다. 아내와 함께 공동의 공간을 아름답게 가꾸어나가기 위한 나의 모든 노력들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것을 나의 생일 아침부터 목전에서 경험해야만 했던 것이다! 물론 내가 생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진 않는다. 특별한 의미 부여하지 않기로 전국 등수를 매긴다면 최상위권 아니 극상위권에 속할 것이다. 카톡에서도 생일이 드러나지 않게 설정을 바꾸었고, 나 역시 다른 사람의 생일을 짐짓 모른채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는 카톡의 상술에 놀아나지 않기 위함도 있고, 그리고 생일이 아니더라도 이어질 인연이라면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든 이어질 거라는 믿음 또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아침부터 극심한 절망감에 휩싸여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출근하는 데 꽤나 여유가 있었음에도 나는 결코 그 여유를 살려 일찍 나가지 않았다. 대신 그 여유를 살려 절망감을 한껏 만끽하는 ... 그런 선택을 내렸다. 아...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아마 내 안에는 이런 규칙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표현한다면, 몇 번 이내에 상대방은 그것을 따를 의무가 있다.


아내는 이 상황을 어떻게든 풀어보고자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비가 많이 오는데, 긴 바지 입고 가야 해?"


그런데 나는 그 질문을 듣고 황당하고 아주 기가막혔다!!!

지금 출퇴근하는 이 회사에 반바지를 입고 가지 못하는 것은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 ! 그리고 심지어 그것에 대해 우리가 이미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이 응수했다.


"내가 여기 반바지 못 입고 가는 거 쟈기도 알잖아? 그런데 묻는 이유가 뭐야?"


아주 짜증이 가득한 그런 대답이었다. 그 대답을 듣고 당연히 짜증 에너지가 아내에게도 잔뜩 전달되었으리라. 아내 역시 울상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쓸데없는 질문 안할게" 라고 말한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풀리지 않는 의문을 안고 나는 집을 나섰다. 마땅한 화해의 절차도 없이...

집을 나서는 그 발걸음, 아직 비가 오지 않으나 내 마음 속에는 태풍, 폭풍, 장마, 홍수,... 무엇으로 표현해도 모자를 그런 강력한 혼돈이 일고 있었다... 오늘 출근길을 나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출근하며 나는 곰곰히 생각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것이 과연 내가 원하는 것일까?

내 안에 무엇이 흐르고 있기에 오늘 오전과 같은 결과로 이어졌을까?

답답하고, 혼란스럽고, 무섭고, 두렵고, 아주 슬프고 서글펐다. 속상했다.


오전이 지나며, 오후가 되며, 차츰 누그러졌다. 장마라고 해서 평생 끝없이 오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의 마음도 적당한 때가 되자 평화를 되찾았다.

나는 이것을 해결하고 싶었다. 더 나아가고 싶었다. 아내와 함께 하는 삶을 위해. 이것을 극복하고 싶었다.


오늘, 회사 사람들과 회식을 마치고 술을 잔뜩 마신 채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은 험난했다. 간만에 마신 와인은 나의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을 매우 흐릿하게 만들었다. 귀가 먹먹하기도 하고, 순간적으로 온세상이 하얗게 변해버리기도 하였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마중나와달라고 했다.


다행히 아내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산뜻했다. 아이스크림까지 하나 사먹으니 정신이 또렷해졌고 지금 그래서 일기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술 마신 직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 또한 오늘 나의 하루를 축소해놓은 것만 같다. 오늘 오전 나는 얼마나 알딸딸하고 정신이 혼미했는가...


집으로 돌아와 눈물을 흘리며 아내에게 말했다.

"오늘 아침에 그 일이 있고 나서 너무나 힘들었어. 나는 나의 그런 모습들을 극복하고 싶어. 자기와 함께 더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이것은 나의 깨달음이자, 앞으로에 대한 다짐이기도 했다.


"비록 단번에 바뀌긴 어렵겠지만, 계속해서 노력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줘 자기야."


그리고 우리는 여느 때와 같이 책 이야기, 여행 이야기, 오늘 하루 이야기를 하며 지금 잘 준비를 하고 있다.

내 안에 무엇이 흐르는가... 역시 나는 세상을 바꾸기보다 나 자신을 바꾸는 데 가장 관심이 많다. 그리고 그것은 내 평생의 과제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낫겠지? 하루하루 나아지는 삶을 꿈꾸며, 오늘도 하루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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