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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뜽삼이 Jul 05. 2023

강력한 적대자의 등장

23.07.05.수요일

교육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강사와의 협력은 필수다. 현재 우리 상황에서는 강사 없이 교육을 진행할 수가 없다. 그리고 교육은 M365 도입의 필수 요소로 여겨지곤 한다. 즉, 고객사의 직원들이 M365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선 양질의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굉장한 미신에 가깝다. 근거없는 믿음이다. 이에 대해선 최근에 읽었던 책에서 잘 다루고 있다. 책에 관한 내용을 말하려고 한 것은 아니기에 우선 이 이야기는 잠시 접어둔다.

아무튼, 현재로서 우리는 강사를 끼고 교육을 진행해야 하는 운명에 놓여있다. 아... 이 얼마나 가혹한 운명인가. 교육의 품질에 대한 통제권도, 일정에 대한 통제권도, 아무 것도 없다 ! 우리에게는. 양 옆에서 쥐어터지는 그런 안타까운 입장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강사에게 무언가 요청하기 위한 혹은 하다못해 의견을 구하기 위한 전화를 걸 때 몹시 두렵고 불안에 떠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어느 정도였냐하면, 수첩에다가 강사와의 통화를 통해 얻어야 할 것들을 적고, 그리고 몇몇 질문을 던지며 셀프코칭을 시도한다. 가령 내가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들에는 이런 것들이 포함되어있다.

"나는 강사와 어떤 관계를 맺고자 하는가?"

"그런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이번 통화와 그런 삶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기가막힐 노릇이다. 전화 한 통에 이런 심오한 질문을 낭비하고 있다니... 

어떤 날은 이런 질문들이 효과를 발휘할 때도 있다. 지난 금요일처럼... 그러나 어떤 날에는 택도 없는 경우도 있는데, 바로 오늘 같은 날이다. 

고객사의 요청사항을 정리하여 어제, 강사에게 메일을 보내두었고 오늘까지 업데이트된 자료를 요청하였다. 오후가 되어도 소식이 없자 현재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2시경 전화를 걸었다. 강사는 이제 막 내가 보낸 메일을 열어보며 나와 약 15분간 대화를 이어나갔다.

강사는 내가 전화를 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우리가 통화하는 이 상황에 대한, 내가 무언가 요구하는 이 상황에 대한 불편함과 거부감, 저항감을 잔뜩 머금은 채 대화에 임한다. 안부를 묻는 나의 인사에도 결코 아랑곳하지 않고, 네- 네-와 같이 단답으로 일관하며 이런 무언의 메시지를 던진다.

'그래서, 이번엔 뭘 요구할 건데?'

이런 상황에 나는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 사람은 기본적으로 나를 하나의 동등한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예전에 읽었던 책에서 그랬다. 아마 「결정적 순간의 대화」였을 것이다. 인간에게 '존중'이란 산소와 같아서, 그것이 없으면 다른 건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고. 이 사람과의 통화에서 나는 '존중'을 찾아볼 수 없었고, 내 안에서 점차적으로 불쾌함과 짜증이 쌓여만 갔다. 

내가 무엇을 보완하면 이 상황이 조금은 나아질까? 참 어렵다. 지금까지 생각해본 것으로는... 우선 이 사람이 짜증나지 않게 조금 더 시간 여유를 확보하는 것이 좋을 텐데, 그러려면 고객사 안에서 서로 잘 소통하고 의견을 조율하도록 촉진할 줄 알아야 한다. 왜냐 하면 고객사에서는 정말 상황이 닥치기 전까지는 넋을 놓고 있다가 하루이틀 전에 부랴부랴 그 일을 준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 상황의 피해자는 바로 중간에 낀 내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급하게 이것저것 요청하는 나를 곱게 바라볼리가 없다. 강사 입장에서도. 이 교훈은 예전에도 한번 느꼈던 것인데, 기본적으로 시간에 쫓기는 것에 상당한 부담감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런데 그렇다 하더라도, 상황이 이렇다할지언정 나는 협력적 관계를 원한다. 시간이 부족해서 뭔가 요구사항을 들어주기 어렵다면, 그것을 그냥 이야기하면 된다. 혹은 반대로, 시간이 촉박해지기 전에 강사가 먼저 내게 연락하는 수도 있지 않는가? 강사 역시도 내가 요구하기 전까지는 가만히 있다가, 내가 요구하면 그제서야 '시간이 없다'느니, '요구사항이 뭐이리 많냐'느니, 별별 아쉬운 소리를 다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나에대한 존중이 결여되어있다는 점 그리고 협력적 관계가 유지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강사한테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우리인데도 말이다. 갑을관게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 어쩌면 강사야말로 갑의 위치에 서있다. 그 일을 하는 강사는 대한민국에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번 교육 영상을 제작할 당시에도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이미 계약내용에 포함되어있음에도-영상을 제작하지 않았고그 제작을 내가 대신 맡지 않았었나. 하기 싫으면 그냥 안해버리는 그런 배째라 마인드가 나의 비위를 상하게 한다.

한편으로는 나는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을 둘 사이에 끼여있는 중간자라는 점에서 찾기도 한다. 그러니까, 고객사랑 강사가 직접 소통하면 어찌저찌 조율이 될 일은, 괜히 우리가 둘 사이에 껴서 양측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 양측은 나를 욕받이로 삼아 이것저것 요구하게 되는 그런 유혹에 빠진다. 한쪽에서는 '이거 해달라고 하세요' 다른 한쪽에서는 '이걸 어떻게 해요? 못해요' 다시 저쪽에서는 '아니 강사가 그것도 못해요? 하는 게 도대체 뭐예요?' 그냥 양옆에서 실컷 쳐맞다가 끝나곤 한다.

나는 이 상황에 신물이 날 지경이다... 정말 답답하고 지겹다. 내가 만들어내는 가치란 도대체 무엇인가? 애시당초 이 모든 교육 프로그램의 가치에 대해 회의적인 판국에, 그 가운데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고군분투하는 바로 현재의 내가 만들어내는 가치는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아무리 학습의 관점에서 접근한다고 해도, 이건 도저히 내가 이고가기 어렵다. 그냥 내려놓고 싶다. 이런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이 세상 어디에라도 존재한다면, 그에게 기꺼이 이 일을 맡기고 싶다. 실컷, 즐겁게 하라고. 

아무튼 나는 머지않아 강사에게 '결정적 순간의 대화'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니까, 내가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고, 당신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나는 협력을 원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뭐 그런 질문들... 기본적으로 협조적으로 나오지 않는 상대를 나는 어떻게 할 수 있는 걸까? 어쩌면 정말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상황 자체가 지금 나에게 매우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전화 통화를 조금 더 잘한다고 해서 뭔가가 나아질까? 그 사람의 반응이 조금은 더 부드러워질까? 글쎄, 잘 모르겠다. 그래도 몇몇 대안을 생각해낸 것은 또 ... 수확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나의 편이 되어주는 팀장님과도 합의된 내용인데,

  

    아예 다음부터는 강사와 고객사를 직접 만나게 하는 자리를 주선한다.  


    일정을 조금 더 여유롭게 가져가본다.  

+ 내가 스스로 생각해낸 '결정적 순간의 대화' 시도하기

그래, 벌써 몇 가지를 배웠다. 그것만으로 만족한다. 내일 드디어 오늘 그렇게 준비하던 교육이 내일인데, 내일 또 어떻게 되겠지. 내 손을 떠난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런 대로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한다. 난 나대로 최선을 다하고,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행동하고 말하고. 그렇게 오늘도 무언가를 배우고. 이렇게 생각하면 꽤나 만족스러워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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