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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뜽삼이 Jul 08. 2023

나에게 소중한 것

23.07.07.금요일


팀장님이 휴가를 갔다. '휴식이 필요하다'며. 휴식만을 위해 휴가를 쓴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 동안 가족행사가 있거나 아니면 아파서, 혹은 아이가 아파서 등의 이유로 회사를 나오지 않은 적은 꽤 많지만.


그래서  간만에 H님과 나 단둘이 사무실에 남게 되었다. 꽤 많은 시간을 잡담하는 데 할애하였는데, 아침에 출근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잡담을 시작했다. 우선 커피를 사러 1층 바깥에 있는 매머드커피에 갔는데, 커피를 사들고 바로 사무실로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회사 건물을 빙빙 몇 바퀴나 돌고 나서야 사무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우리 둘다 일하기 무지 싫었나 보다. 나에게는 할  일도 좀 있었는데 말이다.


기억에 남는 얘깃거리가 있다. 

H님의 입에서 갑자기 이런 문장이 튀어나왔다.


"아, J님 보고 싶다."


나는 호기심이 생겼다.

"무엇이 J님을 보고 싶게 만드나요?"


그런데 사실 그 때 당시 나의 가슴은 왠지 모르게 쿵쾅쿵쾅 뛰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큰 일이라도 난 것처럼 나는 잔뜩 긴장을 한 채 H님의 대답을 기다렸던 것일까?


H님은  J님의 장점(?)을 이야기하며 바로 그 장점이 있어 J님이 보고싶다고 하였는데, 그 장점은 바로 '자기 자신을 잘 안다'는  것이다. 요새 들어 H님이 '자기 자신을 아는 게 중요한 것 같다'는 식의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음. 우선 나는 J님에 대해 잘  모르는데 H님이 J님에 대해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 뭔가… 나에게 위기의식을 심어준 것 같다. 왜냐하면 사실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아는 것은 다름아닌 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아닌 J님이 자기 자신을 잘 안다고? 그럴  리가 없다. 만약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H님은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일 테다. 


이런 식으로 나의 사고는 흘러갔다. 그러나 다행히 메타인지적으로 봤을 때 나는 이러한 긴장감과 위기의식을 H님에게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게 질문을 이어갔다.


"J님의 무엇을 보면 자기 자신을 잘 안다는 것을 알 수 있나요?"


H님은 나의 질문에 매우 성심성의껏 답을 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것이 우리의 대화를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렇게 열심히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잘 이해했다면… H님은 H님 자신이 되고자 하는 모습을 J님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요." 

그러면서 내가 아는 '투사'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었다.

만약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그것은 그 누군가가 내가 나 자신에게 원하는(기대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반대로 내가  누군가를 싫어한다면 나 자신이 갖고 있으나 벗어나고 싶은.. 그런 모습을 그 사람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  말을 하면서 나는 뭔가 내 안의 긴장감이 묘하게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는데, 만약 J님에 대한 H님의 칭송(?)이 그저 자기  자신의 내면을 투사한 것에 불과하다면, 내가 그런 칭송에 대해 위기의식이나 긴장을 느낄 이유가 전혀 없어지기 때문이다.


조여왔던 마음이 한층 누그러지고 편안해졌는데, 심지어는 '정말 맞는 것 같아요!' '적어놔야겠다!' 라며 내가 말한 내용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를 … 우월감이 느껴졌던 것 같다.


거봐 그럴 줄 알았어

그 사람은 당신이 믿고 있는 것처럼 그다지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그런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

사실 그것은 나에게나 해당하는 설명이지. 그리고 그건 정말 도달하기가 어려운 것이야. 자기 자신을 안다는 표현을 그렇게 아무에게나 쉽게 갖다 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야.


나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위 글을 쓰고 나서, 아내에게 내가 쓴 내용을 공유하였다. 아내가 이 글을 읽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자기한테 소중한 것을 지키고 싶었던 것 같네"


여지껏  나는 나 자신을 나름대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내의 저 말을 듣고 나니 뭔가 흐릿했던 것들이 그제서야 또렷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 나는 내 안에서 흐르는 것들을 정확하고 섬세한 언어로 잡아내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이어서 아내가 '소중한 것 지키기'의 다른 예시를 들어준다. 

자신의  친구들에게 나에 대해 '코칭 공부한다'고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 중 한명이 '아~ 코칭 나도 잘 알지'하면서 뭔가 아는  척을 했다고 한다. 그럴 때 아내에게도 묘한 거부감 같은 게 느껴졌다고 하는데, 내가 자격 취득을 위해 수십 시간을 투자하고, 또  열심히 책을 읽고 하면서 얻어내고자 하는 그것과, 친구가 이야기하는 그 코칭이 결코 같을리가 없다는 데에서 오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자 나에게도 하나의 사례가 떠오른다. 내가 만약 누군가에게 '저는 벌써 60일째 일기를 쓰고 있어요.' 라고 이야기하고, 상대방이 '아 일기 저도 옛날에 많이 썼죠.' 하면 '당신이 쓰는 그런 일기랑은 달라도 한참 달라!!!' 라고 외치고 싶을 거라는.


나에게  아주 소중한 무언가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안다고 하거나 혹은 가졌다고 이야기를 할 때 나의 영역이 침범당한 것 같은,  그런 억울한 느낌이 드는 것 같다. 이 또한 그저 나의 일부일 텐데... 그 소중한 무언가가 나 자체는 아닐 텐데...말이다.


아내의 한 마디가 나를 또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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