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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뜽삼이 Jul 13. 2023

흡수할 것인가, 튕겨낼 것인가?

23.07.13.목요일


어제, N님에 관한 저널을 썼다. 그런데 오늘도 역시 굉장한 사건들이 있었고, N님 역시 결코 만만하지 않은 상대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오전 10시, N님이 새로 맡게 된 업무에 관한 의견을 '구하기' 위하여 기존 멤버였던 나와 H님에게 시간을 좀 내어달라고 요청하였다. 나와 H님은 흔쾌히 그 자리에 참석하였고, N님이 고민하고 있던 것들을 듣고 그 고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이야기해주었다. N님이 맡아 진행하는 업무는 교육 자료를 축적하기 위한 HUB사이트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 동안 진행했던 수많은 교육들, 배포했던 무수한 컨텐츠들을 한 데 모으는 작업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 동안 진행되어왔던 업무에 대한 이력을 잘 아는 나와 H님의 의견이 필요했던 것이다. 


"(컴퓨터 화면을 보며) 여기에서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자료는 또 없을까요?"


그 질문을 듣고 나는 꽤나 상세하게 답변을 해주기 위해 노력했는데, N님의 이해를 돕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없을 겁니다. 왜냐 하면, 그런 자료들을 이미 교육하면서 교육 자료 안에 전부 포함되어있는데요, 학습자들이 그 교육을 받은 다음에 팀에 가서 그 내용을 전파할 수 있도록~~~어쩌구저쩌구"


'이 정도면 설명이 충분했겠지?'

조금 장황하게 설명한 듯한 느낌은 있었지만, 이만하면 N님의 이해를 돕기에 충분하다는 판단이 들 때쯤 대답을 마쳤다. 그런데...


N님의 대답이 정말 어마무시했다!!!


"그건 저도 아는 거고요, 저한테 다 대답해주실 필요는 없어요, 여기 모인 분들 다들 바쁘니까 후딱 필요한 것만 이야기하고 각자 일하러 가시죠."

뭐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그것도 아주아주 평온하고 천연덕스러운 말투로 말이다. 


나는 순간 벙쩠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답변이었다!!!

신인류의 등장을 알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의견을 '구하기'위해 우리를 불렀고, 나는 어느 정도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자세하게 설명해준 것 뿐인데, '다 얘기해줄 필요가 없다'니... 해야 할 대답의 성격과 길이가 정해져있는 것일까? 내가 답변한 내용이 그 기준을 아득하게 초과해버린 나머지 N님은 나에게 그런 즉각적인 피드백을 줄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나는 너무도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당황도 잠시 곧바로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남은 대화를 이어나기기 위해 애썼다. 


이 때 먹은 충격이 한동안 가시질 않았다. 점심을 먹고 일을 하는 중간중간에도 내 안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오후에 인재원으로 이동하여 현장 교육을 운영하던 중, 갑자기 N님에게 전화가 왔다.

본사에서 온라인으로 진행 중인 또 다른 교육 과정의 운영을 N님에게 맡기고 왔는데, 내가 미처 수정하지 못한 문구를 N님이 발견한 것이다. 우리가 원래 반말을 하는 사이였던가? N님은 평소보다 짧은(?) 말로 내가 실수한 부분을 지적하고, 어떻게 수정하는 것이 좋을지 물어봤다. 음...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생각해둔 답을 제시하고, 어느 것이 맞는지 내게 선택하게 만들었다.


집에 와서 아내와 녹음된 통화파일을 함께 듣는데, 아내는 이 사람의 언어에 대해 '고압적'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나 또한 그렇게 느꼈다. 실수한 것을 빌미로 나를 굴복시키고자 하는 그런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잘못된 것에 대해 함께 개선해나가고자 하는 협력적이고 생산적인 의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통화로 나눈 오늘 오후의 대화가 2차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루 안에 N님으로부터 비롯된 충격이 두 차례나 있었다.

사실 세 번째 충격도 있는데, 이것은 앞선 두 충격에 비하면 우스운 수준이라 언급하지 않겠다. (팀장님과 나 사이의 대화에서 어느덧 팀장님 편이 되어 열심히 맞장구를 치고 있는 N님을 발견한 것이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나는 이 모든 사건에 대해 선택을 내려야만 한다.

스펀지처럼 이 모든 것을 흡수할 것인가, 아니면 튕겨낼 것인가?

이 또한 일종의 수행으로 받아들이고, 이런 상황이 닥칠 때마다 내면을 바라보며 나 자신을 갈고닦을 것인가, 아니면

상대방의 언행에 대한 나의 반응을 성숙하게 표현하여 상대방의 변화를 유도할 것인가?


내가 무엇을 원하느냐에 따라 달렸다. 

상대방과 연결되고자 한다면 후자를 택할 것이다. 내가 팀장님과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에 대해 언급했던 것처럼. 그러나 지금으로서 나는 N님과 연결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 이 사람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계속해서 주시하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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