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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현 Jan 09. 2023

사회복지사의 시선

사회복지실천현장 이야기



사회사업실천, 인사가 절반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학창 시절 사회복지를 공부하며 인상 깊게 들은 내용이지만 한편으로는 '무슨 인사가 절반인가. 중요한 건 알겠지만 너무 과하게 표현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례관리 담당자로 새로 일하게 된 요즘,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금 깨닫고 오히려 '인사가 절반 이상이다.'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장애인종합복지관으로 이직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입니다.


제 앞자리 여자 선생님에게 전화가 한 통 왔습니다. 약간 상기된 음성으로 답하는 목소리에 처음에는 그냥 독특한 민원인이 전화를 주셔서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전화가 끝나고 무슨 일인가 해서 물어보니 사례관리로 지원을 하고 있는 한 아이의 어머니셨는데 화를 많이 내셨다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앞으로 담당할 아이의 어머니셨습니다. 제 자리에서 일하시던 선생님께서 도움을 드리던 분이셨는데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으셨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다음 날, 같은 분께서 또 전화를 주셨습니다. 이번에도 제 앞자리 선생님께 전화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더 목소리가 좋지 않았습니다. 전화를 마치고서는 여자선생님께서 눈물을 훔치며 화장실에 갔다 오셨습니다. 무슨 말을 했길래 그랬는지 팀장님과 함께 물었습니다.


"아니, 본인이 장애인 자녀가 세 명인데 지금까지 해준 게 뭐 있냐고. 전에 있던 선생님은 본인이 간다고 인사도 안 하고, 제대로 일 못하느냐고 하시는데 너무 화가 나서요. 제가 담당했던 분도 아니고 이전에 그 가정 맡아서 도와줬던 선생님이 얼마나 열심히 하셨는데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속상하네요." 어떻게 해야 하나 참 난감했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앞으로 맡아야 할 가정이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하시는 걸까.


전화가 끝나고 팀장님과 이야기하며 제가 가서 인사를 드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새로 온 김에 앞으로 함께 할 사회복지사로서 인사도 드리고 어떤 부분이 불만이 있으셨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이 일이 있고 다음 날, 전화를 주신 어머님 댁으로 찾아갔습니다. 차를 타고 박 씨 아주머니 댁 근처에 주차를 하고 집에 들어가려는데 심장이 쿵쾅거렸습니다. '혹시 들어가서 욕을 먹는 건 아닐지, 말이 너무 안 통해서 싸우게 되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대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짧게 화살기도를 했습니다.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잘 돕고자 하는 마음이 전달되어서 박 씨 아주머니의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지고 잘 대화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똑똑, 계세요. 복지관에서 왔습니다."


"네,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박 씨 아주머니께서 집에 계셨고 둘째 딸과 함께 계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박동현 사회복지사라고 합니다."


"네, 그래요. 들어오세요."


약간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한 경계의 눈빛과 약간의 불만이 섞인 목소리였습니다.


"처음 뵙는 건데 맨 손으로 오기 뭐해서 뭘 좀 챙겨 왔어요. 석류 즙인데 건강에 좋은 거니까 드세요."

복지관에서 미리 후원 담당자에게 따로 부탁해 챙겨 온 석류즙을 전해드리며 분위기를 바꿔보려 했습니다.


"아.. 그래요. 고마워요."


"제가 이제 어머니 셋째 아들이랑, 아주머니 가정을 담당하게 되어서요. 인사를 드리러 왔어요. 잘 부탁드려요."


"네네. 그러시군요."


"네. 혹시 어제 전화하시면서 저희 복지관에 대해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으신 거 같던데. 혹시 어떤 부분 때문인지 알려주실 수 있어요?"


"아, 어제는 제가 너무 화가 나서 조금 소리를 냈어요. 여자 선생님께서 잘못 한 건 아니라는 걸 아는데 조금 화가 나서 그랬네요."


본인이 전화 통화를 하면서 화를 낸 부분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목소리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근데 조금 화가 났던 게 전에 있던 선생님이 다른 데로 가면 간다고 인사를 하고 가야지 인사도 안 하고 간 게 우선 화가 났고, 그리고 저희 집 주거환경개선사업을 한다고 했는데 그게 저한테 물어본 적도 없는데 신청을 했다는 거예요. 그것도 화가 났고, 생필품으로 지원해 주신 것도 별로 도움이 되지도 않아서요."


화가 났던 첫 번째 이유가 바로 '인사를 하지 않아서'라는 부분이 확 다가왔습니다. 전임자도 그럴만한 상황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담당하고 있는 가정이 많고 정리해야 하는 일이 많았기에 놓친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박 씨 어머니의 불만에서 가장 먼저 나온 것이 '인사'였습니다.


두 번째 화가 났던 이유는 '묻지 않아서'였습니다. 분명 전임자는 좋은 마음에서, 박 씨 어머니와 자녀들의 주거 환경이 나아지길 바라서 주거환경개선 사업 신청을 한 것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좋은 의도가 당사자의 동의 없이 이루어질 때 이러한 문제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았다고 느끼셨기에 그렇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사회복지사가 만나는 분들은 사회적 약자입니다. 모든 분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마음이 더 연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까지 마주해 온 삶이 녹록지 않았기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가시가 조금 더 길게 자라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작은 행동 하나 가 더 크게 다가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약자일수록 예를 갖추어 정성스럽게 묻고 의논하고 부탁합니다. 어린 아이나 지적 약자, 자폐증이나 치매증이 있는 사람, 정신 질환이나 술 중독증이 있는 사람, 귀 어둡거나 어눌한 사람, 전신 마비나 의식 불명 상태의 사람에게는 더욱 그리합니다.
 -복지요결-


세 번째 불만은 생필품으로 지원된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봅니다. 만약, 인사하고,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는 과정이 잘 되었다면 세 번째 불만은 아마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설령, 불만족스러웠다고 하더라도 표현의 방법이 이와는 달랐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머니, 지금까지 어머님을 화가 나게 했던 상황들을 제가 대신 사과하겠습니다. 죄송해요. 앞으로는 제가 같이 옆에서 도와드릴 테니 앞으로 불편하시거나 힘드신 부분이 있으면 저에게 말씀해 주시면 돼요."


정중하게 박 씨 아주머니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뭐, 선생님께서 그러신 건 아니니까 괜찮아요. 그냥. 제가 복지관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이전에 제가 거기서 요양보호사로 일한 적도 있었거든요."


"아, 정말요? 저희 복지관에서 일하신 적이 있으신 거예요?"


"네, 저도 몸이 괜찮았을 때는 열심히 일을 했어요. 그러다가 허리를 다친 이후로 몸도 힘들고 애들도 5명을 낳았는데 3명이 다 장애가 있어서 너무 힘들어요."


"아이고, 정말요? 지금까지 아이들 키우시느라 고생 많이 하셨네요. 대단하셔요."


"그래도, 아이들을 이렇게 낳아서 키우는 건 잘한 것 같아요. 그래도 첫째는 다 키워서 독립시켜서 지금은 혼자 일하고 있어요."


자녀 이야기가 나오자 힘들기는 하지만 혼자서 5명의 자녀를 키워내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첫째는 독립을 해서 잘 사회생활을 하고 있고 둘째도 대학교를 다니고 있고 다른 자녀들도 지적 장애가 있지만 집에서 학교, 센터까지 다니는 것을 스스로 알아서 버스, 도보로 갈 수 있도록 교육을 해놓으셨다고 했습니다.


"근데 저도 몸이 힘들어서 지금은 너무 치지고 그러네요. 약도 먹고 있고 일도 지금 못해서 힘들어요."

어머니께서는 현재 잠을 잘 주무시지 못해서 1년가량 잠을 잘 잘 수 있도록 돕는 약을 복용 중이시며 혼자서 5명의 자녀를 키우시느라 많이 지치신 상태였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너무 잘 키워오셨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정말 존경스러워요. 저도 올해 결혼을 했는데 저 한 몸 케어하기도 벅차서 아이들 키우시는 분들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고 있거든요."


아이들에 대한 사랑, 몸은 힘들지만 아이들을 잘 양육하고 싶다는 마음이 박 씨 아주머니의 큰 강점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격려와 칭찬을 해드리니 더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드셨나 봅니다.

 

"그리고 뭣도 없는 집이기는 하지만 저희 집에 필요 없는 것들은 저희보다 더 어려운 가정에 나눠드리기도 해요. 복지관에서 후원품으로 들어온 것들 중에서 저희에게 필요 없는 것들이 들어오더라고요. 그럼 그것들은 저희가 가지고 있지 않고 주변에 이웃들에게 나눠줘요."


"우와, 정말요. 대단하시네요. 그렇게 주변 사람들 챙겨주기 쉽지 않은데."

 

"뭐, 마음 같아서는 이렇게 복지관에서 도움 안 받고 일하면서 자립해서 살면서 다른 사람 도와주면서 살고 싶죠. 근데 몸도 아프고 키워야 될 자식들도 있고 하니까 쉽지 않은 게 안타깝죠."


"그래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계신 것만으로도 대단하셔요. 제가 앞으로 아주머니랑 자녀들이 잘 살아내실 수 있도록 옆에서 거들어 드릴 테니까 힘내셨으면 좋겠어요."


"네 감사해요."


이렇게 긴장하고 걱정했던 박 씨 아주머니와의 만남을 마무리하고 복지관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간 쌓여있던 감정들도 해소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했는데 기대하지 않았던 박 씨 아주머니의 강점도 확인하고 온 시간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라는 유명한 심리학 실험이 있습니다. 1999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실시한 실험으로 인간의 착각에 대한 연구를 위해 설계한 실험입니다. 유명한 실험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계실 겁니다. 실험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러합니다.


피실험자들에게 1분 남짓의 영상을 보여줍니다. 영상에는 검은 셔츠를 입은 3명, 흰 셔츠를 입은 3명이 각각 팀을 이루어서 농구공 2개로 패스를 합니다. 6명은 뒤섞여 움직이며 같은 색깔 사람들에게만 공을 전달합니다. 이 동영상을 보여주기 전 피실험자들에게는 '흰 셔츠를 입은 팀의 패스 횟수를 세어보라'는 미션이 주어졌습니다. 동영상을 모두 시청한 후 실험자는 피실험자들에게 "혹시 고릴라 보셨어요?"라는 뜬금없는 질문을 합니다. 이때 50%가 넘는 피실험자들은 패스 횟수를 세는 데 집중한 나머지 고릴라가 영상에 등장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 사진


갑자기 왜 이런 심리실험을 이야기하는 걸까요? 사회복지사가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경제적, 신체적, 사회적 어려움을 맞닥뜨린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경우 본인이 겪고 있는 어려움들, 문제들, 힘든 부분들을 호소하며 사회복지사에게 다가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해 주세요. 내가 이렇게 힘들어요. 도와주세요."


이렇게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당사자들의 문제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물론 당장 급하거나 중요한 문제의 경우 집중해서 지원을 해야 할 때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에 집중하게 되면 당사자가 가지고 있는 다른 점들, 강점, 희망, 소망과 같은 부분들은 잘 찾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것을 주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박 씨 아주머니와의 만남에서 첫 대화의 시작은 불만, 불평이었습니다. 분위기는 그리 좋지만은 않았고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아주머니도 그것을 듣고 있어야 하는 저도 마음이 좋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이어나가며 계속해서 어려운 부분에 집중하기보다는 좋은 것에 집중하기 시작하자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목소리에 힘이 실렸고 얼굴에는 미소가 생겼습니다.


무엇을 바라보고자 하는가에 따라 다른 것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복지사의 시선에 따라 우리가 만나는 당사자도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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