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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회복지사 박동현 Jun 14. 2020

자선을 베푸는 여덟 단계 계단

2부. 내가 사회복지에 발을 담그게 된 이유

2부. 내가 사회복지에 발을 담그게 된 이유

3장. 선을 베푸는 여덟 단계 계단


 이전 장에서 말한 전공선택의 두 가지 기준, ‘약자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가.’, '다양한 프로젝트에 도전하고 기획할 수 있는가'를 가지고 전공 입문 수업 수강신청을 했다. 그런데 사실 대학교를 가보면 알겠지만 수강신청은 전쟁이다. 대학 가기 전에는 대학만 가면 좋은 교수님들과 좋은 수업들을 자유롭게 들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만 그렇지 않다.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정해지듯 수업 신청도 그 수업의 인기에 따라 수강 신청 난이도가 올라간다. 원하는 수업이 같은 시간대에 있을 가능성도 있다. 보통 학생들이 선호하는 수업들의 경우 좋은 시간대에 배정을 하기 때문에 더욱 원하는 수업을 듣기란 하늘의 별따기가 된다. 거기다가 필수로 들어야 하는 교양과목들도 있기 때문에 정말로 자신이 듣고 싶은 수업을 들으려면 8학기 안에 졸업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아무튼 사회복지개론 수업을 듣게 된 것도 이 치열한 수강신청 과정에서 들을 수 있는 전공 입문 수업 중 하나를 힘겹게 쟁취해낸 것이었다. 그렇게 수업을 듣게 되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사회복지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다.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일을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일 자체는 직접 경험해 본 적이 없기에 막연하게 봉사활동 비슷한 일을 하는 것이겠지 했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도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이 어떤 일을 하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대부분 ‘착하고 좋은 일’, ‘사회복지기관에서 하는 일’ 정도로 알고 있다. 나도 그랬다.     


  첫 사회복지학개론 수업시간을 잊지 못한다. 교수님은 PPT 페이지의 첫 번째로 ‘자선을 베푸는 여덟 단계 계단’이라는 제목을 준비하셨다. 1단계 ‘준다, 억지로 후회하는 마음으로’부터 시작해서 8단계, ‘구제받을 필요가 없게 함’까지 의 단계들을 보면서 사회복지가 최종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마지막 단계, 도움을 줄 필요도, 도움을 받을 필요도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하셨다. 지금의 사회복지의 단계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생각하면서 공부하라고 말씀하셨는데 나의 이상주의적인 성향과 맞아서 그랬던 것인지 가슴속에서 뭔가 울컥하는 것이 느껴졌었다.


교수님이 활용하신 '중세 유대계 대표적 지식인 마이모니데스(Moses Maimonidees)의 자선의 8단계'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한 수업들은 여러 명의 교수님들께서 번갈아 가며 해주셨다. 처음에는 왜 많은 교수님들이 들어오셔서 수업을 해주시나 궁금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사회복지 접근 수준에 따라서 미시적 접근, 중도적 접근, 거시적 접근으로 나뉘어 있고, 또한 아동복지, 가족복지, 노인복지, 교회사회사업, 정신보건사회복지 등 수많은 실천 영역에 따라 전문성을 필요로 했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 다른 전문성과 커리어를 쌓아 오신 교수님들께서 자신이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분야의 수업에 들어오시는 것이었다.


 이어진 개론 수업을 들으며 모든 수업이 재미있었던 것은 아니다. 행정이나 정책을 다루는 수업에서는 지루하고 어려워 졸기도 했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나를 사회복지 전공으로 만든 계기가 있었는데 한 사회복지사 선생님의 특강이었다.


 ‘호숫가마을 도서관’이라는 곳에서 한 사회복지사 선생님께서 오셨었다. 대전의 작은 마을에서 사회사업을 하고 있다고 소개하신 선생님은 자신이 그곳에서 어떻게 사회복지를 실천하고 계신지 소개해 주셨다. 몇 가지 사례를 말씀해주셨는데 듣고 있으니 이런 마을에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나는 사례는 ‘마을 선생님’이라는 활동이다. 작은 마을에서 아이들이 모여서 낚시 선생님을 찾아 낚시를 배웠다는 어찌 보면 아주 사소한 이야기였다. 얼핏 보면 사회복지 같지도 않고 뭐지 싶었는데 찬찬히 그 과정을 엿들어보니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었다. 아이들이 모여 자기들이 배우고 싶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마을 선생님’을 구하기 위해 회의를 하고, 누구누구네 아빠를 선생님으로 선정하고, 초청장을 만들고, 감사 인사를 드리러 동네를 쏘다니고,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동네 어른들이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며 함께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그 모습들이 머릿속에 그려지며 얼굴에 미소가 지어지고 웃음이 났다. 그 과정 가운데서 선생님은 아이들이 활동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옆에서 잘 거들어 돕는 일을 한다고 하셨다. 사회복지사라고 하면 보통 기관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돈이나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일을 한다고 배웠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이런 것도 사회복지라니,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동 호숫가마을도서관  출처: 호숫가마을도서관 카페


 물론 이렇게 실천하는 것은 사회복지의 작은 한 부분이다. 그런데 이렇게도 사회복지를 실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약자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고’, ‘이렇게 재미있게 일 할 수도 있는’ 사회복지를 조금 더 배워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학창 시절을 보내며 팀을 만들어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들이 재미있었던 기억이 있는 나에게 이런 일이라면 잘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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