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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회복지사 박동현 Jun 17. 2020

단순한 봉사를 넘어서, '복지요결 강독회'

2부. 내가 사회복지에 발을 담그게 된 이유

2부. 내가 사회복지에 발을 담그게 된 이유

4장. 단순한 봉사를 넘어서, '복지요결 강독회'


 사회복지학개론 수업을 듣던 어느 날, 교수님께서 일주일 동안 ‘복지요결 강독회’를 하니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참석하라고 하셨다. ‘저건 또 뭘까? 이름도 이상한 책인데 특강을 일주일씩이나 한다니’ 사실 처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 강독회에 참석을 하면 보너스 점수를 준다고 하기에 어찌어찌하다가 참석하게 되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 동안 진행되었는데 처음 이틀은 까먹고 가지 못했고 3일째 되는 날 처음으로 강독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특강이 진행되는 강의실에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둥그렇게 책상이 세팅되어있었고 책상에는 몇 장의 프린트물이 놓여있었다. 십여 명 정도가 앉아서 삼삼오오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혼자 특강을 들으러 온 나는 약간 뻘쭘하게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곧이어 특강이 시작되었다. 50대 정도로 되어 보이는 남자 선생님께서 교실을 둘러보시더니 ‘복지요결’ 강독회를 시작하셨다. 처음 온 사람들이 있어서 조금 복습을 하는 차원에서 책의 머리말을 다시 함께 읽자고 하셨다.      

'사회사업 바르게 하고 싶습니다. 사회사업 잘하고 싶습니다.
근본 있는 사회사업가이고 싶습니다.
 사회사업이 어떤 일이며 무슨 가치가 있는지 의미도 모르고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문제의 근원이 무엇이며 복지의 바탕이 무엇인지 원리도 모르고 개입할 수는 없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이상과 철학도 없이 달음질할 수는 없습니다.
어찌해야 사회사업 바르게 했다 잘했다 할 것인지 기준도 없이 그저 열심히 할 수는 없습니다.
얼마 동안은 남들 하는 대로 시키는 대로 할 수도 있겠으나 오래 하지는 못할 일입니다.
현실이 어렵다고 마냥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근본이 있어야 합니다.
근본을 좇아 행하고 근본으로써 성찰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복지요결은 사회사업을 근본으로부터 이야기하는 사회사업 원론입니다'


 한 문단씩 돌아가며 천천히 글을 읽는데 묘하게 끌리는 것이 있었다. 딱딱한 교과서의 문어체가 아니라 담담한 고백과 비슷한 구어체로 된 글을 한 문장 한 문장 씩 읽으니 더 집중이 되었다.     


“달리기 시합을 할 때 목표지점이 어디인지 모르고 달렸다고 생각해봅시다. 100m를 달려갔다고 해도 그 방향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달렸다면 그게 앞으로 나아갔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사회복지, 사회사업을 하면서도 아무리 열심히 했다고 해도 그 사회사업의 목적이 무엇인지 세워두지 않으면 오히려 뒷걸음질 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새로운 내용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후에 선생님께서 예시로 들어준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 내용을 들으며 남을 돕는 일에도 철학과 방향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내가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던 ‘도움을 준다.’는 것도 제대로, 잘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게 되었다.


“사회사업을 하는 것은 사람을 돕는 것인데 사람다움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도움을 주면 오히려 그 도움은 그 사람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겨울철에 봉사활동으로 김장 담그기 활동을 많이 하는데 보통 기관들에서 어떻게 할까요? 봉사자들 모집하고 사회복지사들 모여서 힘들게 김치 만들고 독거노인들 가져다 드립니다. 받는 어르신들은 어떨까요? 고마운 마음도 있지만 매번 받기만 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여기저기 기관에서 김장 김치라고 가져다주니 ‘여기서 만들어주는 김치는 맵다, 짜다, 싱겁다.’ 불평하기도 하고, 봉사자와 기관은 대단해 보이고 받는 독거노인들은 초라한 모습이기 쉽습니다. 어르신들이 어르신 노릇 하기 어려워지고 점점 더 아이와 같은 모습이 됩니다. 같은 동네에 어떤 할머니는 받고 어떤 할머니는 못 받으면 좋던 사이에서 갈등, 다툼 일어납니다.” 


 뜨끔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수능이 끝나고 학교에서 김장김치를 담그는 행사를 한 적이 있다. 수 천 포기의 김장 김치를 학생들이 담가 주변 지역의 독거노인분들에게 전달을 해드리는 행사였다. 나름 열심히 했고 뿌듯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김장김치 담그기 행사의 주인공은 우리들, 학생들이었다. 사실, 김치를 담그면서도 우리끼리 놀고, 맛보고 했지 그 음식을 받으실 독거노인분들에 대한 생각은 많이 하지 못했다.  사실, 우리가 잘 못한 것은 아니었다. 봉사의 마음,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했고. 물질적으로 그래도 도움을 드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도와주는 마음을 가지고 도와준다고 해서 모두 좋은 것은 아니라고 하셨다. ‘걸언(乞言)’ 즉, 당사자와 지역사회에 인사하고 여쭙고 의논하고 부탁하고 감사하는 일을 하지 않고 돕는 다면 오히려 도움을 받는 사람은 이름만 사람이기 쉽고 그저 주는 대로 받거나 시키는 대로 하기 쉬워진다고 하셨다. 부족해도 서로서로 돕고 살아갔던 지역사회가 힘을 잃는다고 하셨다.


충격이었다. 그냥 돕는다고 좋은 것이 아니구나. 사람에 대해, 사회에 대해 공부하고 성찰하지 않으면 오히려 그 사람의 존엄성과 사회적 관계를 망치게 하는 일이 될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어진 강독회에 참석하면서 사회복지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하게 봉사활동을 하는 것을 넘어서 어떻게 사람을 사람답게 돕고 사회를 사회답게 만들 것인가를 공부하는 학문임을 알게 되었다. 어떤 철학과 방향성을 가지고 현장에 나가느냐에 따라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이 크고 중요함도 알게 되었다. 강독회가 끝나는 날,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지만 새로운 세계를 만났던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 더 이 학문을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지금까지 2부 1장에서 4장까지가 내가 사회복지를 전공으로 선택하기까지의 이야기이다. ‘근원적 체험’을 통해 앞으로 살아갈 삶의 방향을 잡고 내 성향과 흥미를  고려하여 ‘전공 선택의 기준’을 세우고 ‘수업과 특강, 그리고 강독회’를 통해 나에게 맞을 것 같은 전공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이 이후부터가 제대로 된 사회복지 공부의 시작이지만 지금까지 사회복지를 공부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 이유는 이렇게 나만의 이유를 세워왔기 때문이지 않은가 싶다. 이렇게 전공을 선택하는 것이 꼭 정답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공을 한 번 정하면 최소 수년 이상 공부를 해야 하고 많은 경우 직업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 조금 더 성찰하고 직업에 대해서도 더 잘 알아보고 선택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다음 3부부터는 본격적으로 사회복지 전공생으로서 어떻게 학교 안과 학교 밖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강독회 때 만난 ‘복지요결’이라는 책은 ‘자연주의 사회사업’이라는 복지의 한 가지 방법론에 대한 책인데 웬만한 복지기관에 한 권씩은 다 꽂혀있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은 책의 저자 한덕연 선생님께서는 이 책을 6개월마다 한 번씩 개정 작업을 거쳐 지난 10여 년간 수십 번을 고쳤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2020년에도 이 책을 개정하셔서 5월 25일부가 있다는 것이다. ‘사회복지정보원’ 홈페이지에 무료로 올라와 있으니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읽어보길 추천한다.


복지요결을 읽어보고 싶으신 분들은 요기 클릭해주시면 홈페이지로 넘어갑니다. -> 사회복지정보원


복지요결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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