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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현 Aug 10. 2020

기억하고 싶지 않은 면접

3부. 학교 안에서 할 수 있는 사회복지 공부

3부. 학교 안에서 할 수 있는 사회복지 공부

3-2장.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라, '동아리, 학회' [기억하고 싶지 않은 면접]


이전 장에서  동아리와 학회를 왜 해야 하는지, 동아리와 학회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 활동들을 잘 마무리하는 방법까지 알아봤다. 그런데 이렇게 ‘잘’ 활동하는 법에 대해서 이야기했다고 해서 나 또한 그렇게 ‘잘’만 했던 것은 아니다.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더 잘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게 되어 새로 학교에 들어가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더 잘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정리한 것이다.


 이번에는 부족한 나의 이야기를 조금 하려고 한다. 이 글을 읽으며 타산지석으로 삼아 부족한 부분은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 그리고 잘 한 부분이 있으면 ‘이렇게 하면 좋겠다.’하는 마음으로 읽어주면 좋겠다.      


# 기억하고 싶지 않은 면접

첫 번째 이야기는 ‘면접’이다. 원하는 동아리나 학회가 있다고 해서 다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원해도 면접을 보다가 떨어질 수도 있고, 그렇게 간절하지 않았는데 지원했다가 덜컥 되는 경우도 있다. 운명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1학년 1학기 나의 이야기가 그랬다.


때는 1학년 1학기 2주 차,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생에게 동아리 활동은 대학생활의 로망이자 꼭 해봐야 하는 것이었다. 이리저리 동아리 홍보를 둘러보던 나의 눈에 들어온 동아리는 3곳이었다. 첫 번째는 대학교를 대표해 고등학교, 각종 대외 행사에 참여하는 ‘학생 홍보대사 동아리’였다. 학교의 얼굴과 같은 느낌이라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을 것 같았다. 두 번째는 ‘테니스 동아리’였다. 운동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즐거운 대학생활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세 번째는 ‘워십 선교 동아리’였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무대에 서는 것을 좋아했고 선교에도 관심이 있었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관심 있었던 동아리들을 보면 알겠지만 성격이 완전히 달랐다. 그래도 그중에서 선호도를 표하자면 앞에서부터 1,2,3 순위였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할 수 있듯이 3순위로 희망했던 ‘워십 선교 동아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도대체 앞의 두 동아리 면접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처음 면접을 봤던 ‘학생 홍보대사 동아리’에서는 총 3차에 걸친 면접이 진행되었다. 1차 면접은 3대 3 면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동아리 면접은 처음이었기에 따로 뭘 준비해야 할지 생각 없이 그냥 쉼 호흡만 크게 하고 들어갔다. 그런데, 나만 아무 생각이 없이 면접을 보러 갔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오래지 않았다.


‘네. 각자 자기소개 부탁해요.’

가장 오른쪽에 앉아 있던 내가 먼저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000에 지원하게 된 14학번 000입니다.’

간략하게 자기소개를 마치고 다음 사람의 자기소개를 기다렸다.

‘안녕하십니까.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해피 바이러스, 14학번 000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손으로 이렇게 저렇게 흔들며 한껏 밝은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하는 옆 사람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 뭔가 잘못됐다.’ 그렇게 옆 사람이 자기소개를 마쳤고 바로 그 옆 사람도 자기소개를 하는데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앞에 수식어를 열심히 준비해 왔다는 티가 나는 자기소개였다. 첫 동아리 면접에서 첫 자기소개였는데 나만 준비를 안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 자신감이 확 줄어들었다.

그 뒤로 지원 동기, 관련 활동 경험 등의 질문이 오고 갔다. 쉽지 않았다. 어찌어찌 1차 면접이 끝나고 곧이어 2차 면접을 준비해야 했다. 2차 면접은 발표 면접이었다. 통 안에 여러 가지 단어가 적힌 종이를 넣고 무작위로 1개의 단어를 뽑아 1분 동안 그 단어가 들어가도록 발표를 하는 것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단어는 ‘바나나’였다. 준비할 시간 30초가 주어졌고 열심히 머리를 돌렸다. 바나나와 관련된 나의 경험을 생각해내서 나름 기승전결을 가지고 발표를 마쳤다. 다른 지원자들의 분위기를 살폈을 때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 고비를 넘겼다. 문제는 마지막 3차 면접이었다. 사실 동아리가 3차 면접까지 보는 데는 많지 않다. 이 때는 특별히 졸업생 선배가 와서 추가로 면접을 본 것이었다. 그렇지 말지.......

3차 면접은 실제 고등학교에 가서 학교를 홍보한다고 생각하고 돌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보는 면접이었다. 내 앞의 지원자에게 주어진 상황은 ‘발표하는 중에 떠드는 학생들이 있을 때’였다. 피 면접자였던 학생은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학생들에게 다가가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하고 집중을 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리 어렵지는 않아 보였다. ‘나도 같은 상황을 주려나’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나에게 주어진 상황은 ‘외국에서 살다가 와서 한국어를 잘 못하는 학생이 있을 때’였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 어떻게 하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그러다 내 입에서 나온 단어는 충격적이었다. “what up?"이라는 단어와 함께 면접 도우미로 외국에서 온 학생 역할을 하고 있던 선배에게 흑인식 포옹을 하려고 했다.

아뿔싸.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등에서 땀방울이 흘렀다. 도망가고 싶었다.

어떻게든 해결하려 ”do you understand korean little bit?"이라고 외쳤고 그 선배는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No."라고 했다. 망했음을 직감하고 더듬더듬 말을 이어가는데 시간이 다 되었다고 마무리하겠다고 면접관이 이야기했다.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첫 번째 나의 대학교 동아리 면접은 이렇게 끝이 났다. 결과는 뻔했다. 탈락. 면접을 보고 난 후 기숙사로 돌아온 지 얼마 있지 않아 문자로 탈락 통보를 받았다.


빠르게 마음을 접고 두 번째 면접을 준비했다. 두 번째 면접은 3순위로 마음에 두고 있었던 ‘워십 선교 동아리’였다. 두 번째 면접은 앞의 면접에 비해 순탄했다. 3대 1 면접 한 번으로 끝이 났다. 지원동기와 이전에 워십을 해본 경험이 있는지, 선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을 물어봤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해외 단기선교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갔다. 다행히 면접에서 다른 지원자 없이 혼자 들어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대답과 비교를 하지 않아도 돼서 편한 마음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이제 세 번째 면접이 남았다. 세 번째 면접에서는 두 번째 면접과 비슷하게 3대 1로 진행되었다. 우선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지원 동기와 동아리 정모 시간에 참석할 수 있는지를 물어봤다. 차분하게 운동에 관심이 있고 열심히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다음 질문이 문제였다.


‘혹시 다른 동아리 지원한 것 있나요?’

이 당시 첫 번째 봤던 동아리에서는 불합격 문자가 온 상태였고 두 번째 본 면접에서는 아직 결과 통보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한 곳 면접을 봤는데 아직 결과는 안 나왔습니다.’

‘그럼 두 곳 중에 어디에 들어가고 싶나요?’

‘합격시켜주는데 들어가겠습니다.’


면접은 너무 솔직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몰랐다. 3일 후 마지막으로 면접을 본 ‘테니스 동아리’에서 불합격했다는 소식이 왔다. 이렇게 나의 1학년 1학기 동아리 면접은 끝이 났다. 다시 1학년으로 돌아간다면 결코 이렇게 면접을 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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