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회복지사 박동현 Mar 31. 2020

내게 집이란 무엇인가?

ASK 매일 쓰는 성찰 에세이


  집이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로는, 영어로 house라고 불리는 건물, 재산으로써의 물리적 집과 두 번째로 home으로 해석되는, 생각만 해도 편안해지는, 마음의 고향이라고 생각되는 심리적 집이 있다. 두 가지 정의에 따른 집은 같은 공간일 수도, 다른 공간일 수도 있다. 꼭 물리적 집이 심리적 집이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쯤 가출한 경험이 있다면, 부부싸움을 한 경험이 있다면, 이 두 가지 집의 분리가 이해가 되시리라 본다. 가장 좋은 것은 물론 이 물리적 집과 심리적 집이 동일시되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그것이 쉽지는 않다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 26년을 살며 나는 이 ‘집’이라는 것에 대한 이질적인 느낌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 


  나에게 집이란 무엇일까? 엄마의 뱃속. 태초의 온기. 안전한 울타리. 나를 충전하고 페르소나를 벗어버릴 수 있는 곳. 마음의 고향. 돌아올 수 있는 곳. 우선 이런 감정적인 단어들이 떠오른다.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해보니 이런 장면이 떠오른다. ‘눈 내린 쌀쌀한 겨울밤. 너도밤나무 숲 가장자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담한 크기의 오두막집에 몽글몽글 모닥불 연기 피어난다. 해야 할 것이라고는 무사히 이 추운 겨울을 나야하는 일뿐인 세 식구. 엄마 아빠. 딸. 모닥불 주위에 살을 맞대고 않아 따뜻한 수프를 마시며 꾸벅꾸벅 졸고 있다.’ 상상만으로 뭔가 따뜻한 것이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의 심리적 집의 원형은 이런 모습이다. 물론 지금 계절이 겨울이라 이러한 심상들이 떠오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지금은 그렇다. 소박하지만 소중하다. 실제로 내가 나의 집에서 하는 일들도 그렇게 거창하지는 않은 것 같다. 잠자는 일. 같이 혹은 혼자 밥 먹는 일. 책을 읽는 일. TV를 보는 일. 소파에 누워있는 일. 빨래하고 설거지하는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


  조금 현실로 돌아와 생각해보면 조금은 답답해진다. 얼마 전 강남구와 서초구의 집값이 한 평에 1억이 넘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거기는 뭐 그럴 수 있지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뉴스에서 서울 시내 전세 아파트로 3억 원대 매물이 찾기 힘들다는 소리를 들려준다. 이 수많은 건물 중에서 내 건물 하나가 없다는 게 참 비참해지는 순간이다. 원룸 하나에 월세를 40~50만 원씩 내고 살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누군가는 ‘서울에 안 살면 되지’라고 할 수 있다. 맞는 말일 수 있으나, 20년 넘는 학창 시절 내내 우리들에게 인서울, 인서울을 외치던 어른들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이것이 물리적 집의 현실이다. 


  1인 최소 주거면적이라는 개념이 있다. 국민이 쾌적하고 살기 좋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건설교통부 장관이 정한 개념인데 현재 우리나라의 1인 최소 주거면적은 14㎡로 4.2평에 해당한다. 그런데 2015년 통계청 자료를 보면 전국의 8.2%가 최소 주거면적보다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최소 주거면적도 각 나라마다 상대적인 것이어서 이 개념을 만든 사람의 ‘사람의 삶’에 대한 이해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아니, 혹은 이해당사자들의 욕심에 따라 정해지는 것일 수도 있다. 이 기준에 따라 집을 만든다고 해서 책임 끝.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는 소리다. 내가 쾌적하고 살기 좋은 집은 내가 정하는 것이지 어떻게 나를 알지도 못하는 건설교통부 장관이 정할 수 있냐는 말이다. 


  최근에 군대에서 병사들과 책 모임을 하는데 이번에 읽는 책이 마이클 센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읽고 있다. 시장지상주의 시대에 대한 비판으로 시장가치로 환산하면 위험한 것들, 대리 줄 서기 사업, 전담 의사 제도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핵심은 각 행위에 대한 본 가치를 훼손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심리적 의미의 ‘집’보다는 물리적, 재산적 의미의 ‘집’이 커져버린 이 땅의 ‘집’ 또한 이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에 당연히 들어가는 것이었을 텐데. 


  다시 내가 생각하는 심리적 의미의 집으로 돌아가 보자. 시골 마을의 20여 평 정도 되는 집 한 채를 만들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 돈은 둘째치고 필요한 서류만 봐도 단열재 납품 확인서 및 시험 정석서, 절수설비 확인서 및 사진, 도로명 주소 설치 사진 등등 머리가 아프다. 온갖 규정과 절차 때문에 돈이 있어도 건축, 토목에 무지한 나로서는 집을 지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실제로 이렇게 집을 짓고 살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소수일 것이다. 결국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 마음속에 있는 소박한 집에서 살기 위해서는 이미 만들어진 집에 들어가야 한다. 


  재산으로서의 집에서 보금자리의 집으로 개념이 회복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래서 나의 집에 대한 이질감이 조금은 줄어들 면 좋겠다. 아주 크거나 세련되지 않아도 나의 가족이 안전하게 머물고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는 공간을 은행의 도움 없이도 자립해서 살아갈 수 있기를. 집이 집이 될 수 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전쟁 같은 하루에 굴복하는 당신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