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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회복지사 박동현 Apr 12. 2020

나의 장례식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듣고 싶은 말

ASK  성찰 에세이

Q. 질문 - 나의 장례식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가장 듣고 싶은가?



 지난 20일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부대에서 코로나와의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한창 치르고 있던 나에게 갑자기 들려온 외할머니의 소식은 전장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와중 뜨거운 하늘에서 떨어진 빗방울 같았다. 부끄럽게도 옅은 슬픔과 그래도 이 상황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부대에서 벗어나 할머니의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운전하며 창밖을 보는데 날이 참 따뜻했다. 


 장례식장에 도착해 보니 부모님, 이모들과 이모부들, 그리고 사촌 형, 동생들이 먼저 와있었다. 차분한 분위기였다. 외할머니는 7년 전부터 치매와 기저질환으로 요양병원과 집을 왔다 갔다 하시며 생의 마지막 한 마디를 버텨내고 계셨다. 그래서였을까 약간은 담담한 표정으로 남은 가족들은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었다. 나도 상복으로 갈아입고 손님들을 맞이하고 조의금을 받는 일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튿날, 장례 일정에 따라 입관 시간이 다가왔다. 장의사의 인도에 따라 검은 상복을 입은 가족들은 장례식장 지하에 있는 회색의 입관실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하얗게 식은 외할머니의 몸이 있었다. 할머니는 옅은 분홍색 비단옷으로 몸을 둘러싸인 상태에서 얼굴만 밖으로 꺼내고 계셨다. 가장 먼저 보였던 것은 파랗게 변해가고 있는 귀와 주무시고 있을 때와 같은 할머니의 표정이었다. 할머니의 얼굴은 본 이모들은 어쩔 수 없는 슬픔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얼굴에 얼굴을 묻으며 오열했다. 예상했던 슬픔이지만 예상한다고 해서 그 슬픔을 억제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잠시 후에 장의사가 입관 기도를 대표로 드리 실 분은 앞으로 나오라고 이야기했다. 살아생전 교회를 오랫동안 다니셨던 할머니 셨기에 장례절차도 기독교 식으로 진행했던 까닭이었다. 6남매 중 넷째인 우리 엄마가 앞으로 나갔다. 보라색, 핑크색의 꽃들이 아래 놓인 관과 그 위에 놓인 할머니, 그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울음을 삼키며 고개 숙여 기도하는 엄마의 모습이 눈 앞에 생생하다. 


“하나님, 우리 엄마 잘 봐주세요.” 로 시작하는 기도를 듣는 순간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도를 하는데 내 마음속에 박혀버린 한 문장의 기도가 있었다. 


“딱 우리 엄마가 우리를 키운 만큼만 우리가 우리 새끼들을 키울 수 있도록 해주세요.” 


 나의 장례식장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가장 듣고 싶은가 라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면 우리 엄마가 했던 이 말이 그 답이라 말하고 싶다. 수 십, 수 백명의 조문객들이 찾아오겠지만 그 사람들에게 듣는 말이 아니라 내가 앞으로 결혼을 하고 내가 나아서 키울 나의 자식들에게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안심되는 말이 있을까? 임관식을 마치고 다음 날 할머니를 화장하고 선산에 묻어드렸다. 그리고 다시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나의 삶은 애속하게도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고 할머니에 대한 기억도 시간이 가며 희미해질 것이다. 죽음이라는 녀석은 어찌할 수 없는 놈이기에 또 이렇게 하얀 풍선을 하늘로 올려 보낸다. 



포항에 있는 '클래식 북스'에서 진행하는 ASK 에세이 쓰기 결과물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으로 성장하는가?' '나는 세상으로 어떻게 나아갈까?'에 해당되는 질문을 통해 나를 성찰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글을 적습니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고마운 분들께서도 위 주제를 가지고 고민해 보시면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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