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엘이 형이 되고 나서 쪽쪽이(예전엔 공갈 젖꼭지라고 불렸다) 집착이 심해졌다. 모유가 적어 일찍부터 분유를 맛들인 미카엘은 젖병 꼭지와 느낌이 같은 쪽쪽이를 신체의 한 부분으로 여기는 듯했다.
쪽쪽이는 잠이 오려고 할 때나 자다가 깨어났을 때 잠투정을 일시에 진정시키는 육아 필수 품목이었다. 그렇게 존재감을 키워갔던 쪽쪽이는 17개월 만에 형이 된 미카엘에게 절대 강자로 군림해갔다. 어린이집을 가야 하는 급격한 환경의 변화와 사랑을 나눠가져야 하는(뺏겼다고 느낄 수도 있는) 정서적 충격에 쪽쪽이는 미카엘의 불안한 정서를 진정시키는 긍정적인 역할을 맡아 주었다. 그러나 어린이집에 가면서까지 쪽쪽이를 물고 가게 되자 이젠 쪽쪽이 애용을 중단시켜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집에서 쪽쪽이를 물고 있는 유일한 원아가 미카엘이란 것을 아니 마음이 더 급해졌다.
병원에 갈 때도 쪽쪽이는 해결해야 할 문제로 부상했다. 단골 소아과에서 확실하게 존재감을 드러낸 사건(?) 때문이었다.
미카엘은 고구마를 스틱 형태로 구워주면 잘 먹었다. 당시 앉으나 서나 쪽쪽이 사랑이 지나쳐서 무엇을 먹을 때도 쪽쪽이를 옆에 두고 수시로 입에 물었다 뺏다를 반복했다. 그날도 역시나 병원을 경유해서 어린이집에 가야 하는 관계로 서둘러 병원에 갔는데 진료실에서 마스크를 벗기자 턱! 하니 쪽쪽이를 야무지게 문 얼굴이 드러났다. 그때까지는 간호사도 웃으며 “성윤아, 쪽쪽이 잠깐 빼자”했는데 입 안을 보기 위해 다시 “아~ ”했을 때 쪽쪽이를 뺏긴 미카엘은 입을 조개처럼 다물고만 있었다. 웬만해선 입을 벌릴 것 같지 않은 미카엘을 달래기를 반복하여 겨우 입을 벌리게 했는데 웬걸! 이번엔 턱! 하니 고구마가 입 안 가득이었다. 수시로 쪽쪽이를 무느라 미처 씹지도 못하고 넘기지도 못한 고구마가 그대로 입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마스크 속 쪽쪽이, 쪽쪽이 속 고구마’
이렇게 미카엘은 쪽쪽이 고구마 사건으로 당시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냈다.
쪽쪽이가 입속을 가득 채웠을 때 느꼈을 충족감으로 당시의 상실감을 달랬을 것이니 누군들 미카엘을 탓할 수 있었겠는가.
미카엘의 가장 좋은 친구인 쪽쪽이
이렇게 쪽쪽이에 집착했던 미카엘이 19개월째 들어서서 쪽쪽이와 안녕을 했다. 그때가 미카엘이 형이 된 것을 스스로 인정하게 된 신호탄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30여 년 전, 내 육아 환경에서 쪽쪽이는 등장도 하기 전이었다. 대체로 유아들이 손가락을 심하게 빠는 게 문제가 됐다. 늘 물고 있다 시피해서 불어버린 엄지손가락과 막 돋기 시작하는 치아가 뻐드러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더해져서 손가락 빨기를 빨리 끓어야 한다는 조급함이 생기던 시절이었다.
육아에 미숙하기만 했던 나는 손가락 빨기를 해결하기 위해 주변의 조언대로 손에 양말을 신겼다(장갑보다는 손 전체를 통으로 감싸 엄지손가락이 따로 분리가 안 되는 양말이 효과적이다). 아마도 친정엄마의 조언이었을 것이니 상당히 고전적인 방법이었을 것이다. 삶아서 소독된 새 양말을 신기니 딸(지금의 성윤이 엄마)은 하루 만에 손가락 빨기를 멈췄다. 아들(성윤이 삼촌)은 좀 더 걸리긴 했지만 내 기억으로는 꽤나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그런데 지금 미카엘의 상심과 쪽쪽이 집착을 지켜보노라니 양말을 씌워 일시에 행동을 수정했던 것이 다소 폭력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육아 전문가들은 “어느 정도 욕구가 충족되면 저절로 쪽쪽이 빨기를 멈춘다”라고 하는데 그때도 지금도 마음이 급했다. 외국에서는 쪽쪽이를 물고 거리를 활보하는 서 너살 아이들도 많고 치아 발달과 쪽쪽이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는데 성격이 급한 엄마였던 나는 할머니가 되고도 조급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딸의 육아를 돕다보면 “라떼는 말이야”가 수시로 입에서 튀어나온다. 나는 육아 조언이라 하겠지만 딸이 듣기에는 비현실적인 소리로 들리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딸은 나의 조급한 마음에 동의하고 결단을 내렸다. 젖병을 떼내었던 내 클래식한 방법대로 쪽쪽이에 식초를 살짝 발라 주었다. 미카엘은 쪽쪽이를 입에 넣었다가 소리를 지르며 내동댕이쳤는데 잠시 후 다시 입에 넣었다. 신 맛 정도는 쪽쪽이가 줄 수 있는 안정감으로 능히 극복할 수 있을 터였다. 1차 시도는 이렇게 맥없이 끝났다.
방법도 진화하는 것이라서 그다음은 상황을 설명하는 거였다. 쪽쪽이에 살짝 가위 집을 내서 주니 미카엘은 쪽쪽이를 입에 넣었다가 두 눈이 동그래져서뺏다가 다시 넣었다를 반복했다. 틈이 벌어진 쪽쪽이를 입에 넣으니 바람 빠진 풍선처럼 돼서 입안이 충만한 느낌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쪽쪽이를 빼고 들여다보는 미카엘에게 딸이 한 마디를 했다.
“성윤아, 쪽쪽이가.. 아파.."
후로 며칠 동안 쪽쪽이를 찾을 때마다 딸은 ‘쪽쪽이 아파’를 반복했고 미카엘도 넣었다 뺏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미카엘이 ‘쪽쪽이 안녕’을 한 날은 며칠 뒤 침대 위에서 쪽쪽이를 찾던 때였다. 쪽쪽이를 찾던 미카엘에게 딸이 진지한 표정으로 “성윤아.. 쪽쪽이가.. 아파..”라고 하며 쪽쪽이를 건네주니 19개월 차 미카엘은 쪽쪽이를 가만히 응시하더니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그리곤 “아파.. 아파..”라는 말을 따라 하며 두 손을 안녕하듯이 바이바이하며 쪽쪽이를 침대 머리에 가만히 올려놓았다. 그리고 이후론 쪽쪽이를 찾지 않았다.
떼를 쓰고 쪽쪽이에 집착했던 때도 힘들었지만 눈물을 글썽였던 미카엘의 마음이 동생을 보고 일시적인 상실감에 쌓인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아 딸도 나도 순간 울컥해졌다. 그리고 이후로는 습관적으로 물던 쪽쪽이가 없으니 여러 가지 행동들을 하지만 나름 그 시간을 잘 견디어 내고 있다.
미카엘과 반대로 생후 3개월 차 라파엘은 쪽쪽이를 완강하게 거부한다. 처음부터 100프로 모유 수유를 받은 라파엘은 이질감이 느껴지는 쪽쪽이는 거들떠도 안 본다. 잠투정을 할 때도 무조건 젖을 물려야 하니 볼 때마다 딸과 거의 한 몸처럼 붙어 있다. 라파엘에겐 딸이 쪽쪽이인 셈이다. 쪽쪽이를 보면 미카엘을 자극할까 싶어 조심스럽게 라파엘에게 쪽쪽이 시도를 해 보지만 쪽쪽이는 라파엘 육아환경에서는 무용지물인 것 같다. 그러니 모든 투정엔 딸이 온몸으로 나설 수밖에.
이렇게 형제는 완전히 다르다. 엄마를 쪽쪽이 삼은 라파엘은 그 덕인지 형보다 얼굴도 더 크고 팔뚝도 더 굵은 우량아이다. 미카엘이 있을 땐 무조건 형에게 집중하는 우리 부부는 동생 라파엘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얼마 후면 형보다 더 덩치가 커질 것으로 보이는 라파엘이 형 미카엘보다 더 넉넉한 마음을 갖고 힘든 시기를 보낸 형을 잘 따라주기를 바랄 뿐이다. 어째 우리 부부는 미카엘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일까? 편애의 길에 들어선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