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계란을 좋아하던 미카엘이 얼마 전부터 계란만 보면 머리로 가져가 두들긴다. 냉장고를 열면 쏜살같이 달려와 어느 틈에 계란을 꺼낸다. 필시 모델이 있었던 것이 틀림없을 터, “엄마, 내가 그냥 재미로 흉내 냈던 건데..” 역시 행동모델은 미카엘의 엄마였다. 무엇이든 본 것은 바로 실습에 들어가는지라 이젠 말조심, 행동 조심은 필수가 됐다.
요즘 어린이집에서 부쩍 촉감놀이를 많이 한다. 두부 촉감놀이, 딸기 촉감놀이, 밀가루 촉감놀이, 미역촉감놀이. 이후로는 그렇게 좋아하던 두부도 입으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주무르고만 있다.
이제는 동생도 촉감놀이 대상이다. 얼굴을 여기저기 주무른다. 형제애의 발로인지 사랑을 나누어 가져야 하는 동생에 대한 소소한 시기의 마음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미카엘이 동생에게 가까이 가면 긴장하고 우선 지켜본다. 곤한 잠을 방해받은 신생아 작은 손주가 반갑다 방긋 웃을 리가 없다. “엥”하고 기어이 목청을 돋우면 머쓱해진 얼굴로 우리를 쳐다본다.
“아가가 예뻐서 그랬구나. 아가가 놀랬나 보다. 아가 잘 때는 가만 둬야 돼”
어느 말을 해도 상황에 적확한 말은 아닌 거 같다. 아직 말을 못 하는 미카엘이 그 복잡한 마음을 표현할 수 없으니 답답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작은 손주가 태어나기 전, 남편과 나는 “네가 형이니까 이래야 돼 저래야 돼”같은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했다. 준비하고 부모가 된 거 아니듯, 큰 손주 역시 준비하고 형 된 거 아니니까 그냥 17개월 된 아가로 보자고 했다. 엄마 젖 먹는 동생을 보고 시기심에 달려오는 형을 엄마가 두 발을 뻗어 막았다는데 그 이후에 상심한 큰 아이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1주일에 하루는 큰 아이와 오붓한 시간을 가지게 한다는 친구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동생을 본 초기 미카엘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엄지를 치켜들고 “성윤이 최고”란 말이었다. 육아 심리서는 읽지는 못했어도 입장 바꿔 생각하면 그 말이 쉬이 나왔다. 미카엘이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딸이 미카엘에게 집중하도록 도왔다. 내개 챙겨 먹이던 간식도 가능하면 딸아이가 먹이게 했다.
처음엔 동생에게 별 관심이 없던 미카엘이 요즘엔 동생 아는 척을 한다. 대체로 동생 머리 옆에 자기 얼굴을 들이밀거나 얼굴을 만진다(내 눈엔 쓰다듬는 것으로 보인다). 만지는 강도가 세지 않다 싶은데도 작은 손주의 울음이 동반한다. 그럴 때는 따끔하게 주의를 줘야 하지 않겠냐는 남편의 의견을 나는 선뜻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다. 모든 경우에 ‘인간의 보편적인 선’을 가르쳐야 한다는 오은영 박사의 이야기에 동의하면서 육아의 기본도 기다림에 있을 거라는 신념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