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손주 출산도 역시 지켜보지 못했다.
이번에는 보호자 1명으로 제한하는 병원 규칙, 즉 코로나가 이유였다. 이른 새벽 와 달라는 딸의 전화에 한 걸음에 달려가 보니 미카엘은 이미 깨어 있었다. 출산 가방을 들고 나서는 딸 부부 내외를 배웅하고 간단한 놀잇감을 챙겨 미카엘을 데려왔다. 한 나절 외에는 엄마를 떨어져 본 적이 없던 터라 걱정이 많았다.
3시간이 채 안되어 둘째 손주의 출산소식이 전해졌다. 본시 엄살이 없는 딸아이는 미카엘의 안부부터 걱정했다. 전화 목소리라도 들려주고 싶었지만 열흘간 만날 수 없는 처지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까 하여 포기했다.
세상은 너무나 발전하여 생생한 화면으로 모든 걸 전할 수 있는 영상 환경이 됐다.
딸아이가 조리원에 있는 열흘간 실시간으로 큰 손주의 영상을 보내고 둘째 손주의 모습을 전해 받았다. 낮에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밤에는 아빠와, 게다가 어린이집까지 가게 된 미카엘은 급격한 변화의 시간들을 겪어 나갔다.
어린이집에 들어갈 때마다 손주가 대성통곡한다는 사위의 이야기는 딸이 퇴원하는 날까지 이어졌다. 어쩐지 기가 죽은 미카엘이 안쓰러워 퇴원 며칠 전 딸아이와의 영상통화를 시도했다. 영상을 통해 엄마의 모습을 접한 미카엘은 연신 ‘엄마! 엄마!’를 외쳤고 그 모습에 딸의 눈물샘이 터졌다. 엄마 못 보는 손주 걱정만 했는데 미카엘과 떨어져 있는 딸의 상실감도 만만치 않았다는 것이 그제야 생각됐다.
딸아이의 퇴원 전날 곧 엄마를 만나게 될 미카엘의 머리 커트를 했다. 미카엘의 첫 미장원 방문이다. 비바람이 부는 날이었지만 열흘 만에 엄마를 만나게 될 미카엘과 눈이 빠지게 아들을 그리워할 딸아이를 위해 미장원 방문을 강행했다. 우려와 달리 미카엘은 커트포를 잘 두르고 앉아 있었다. 서걱거리는 가위에도 놀라지 않았다. 엄마와 떨어져 있는 며칠 사이에 부쩍 자라 있었다. 미카엘의 미장원 영상을 본 딸의 얼굴에 눈물 대신 웃음꽃이 폈다.
몇 년 전, 그 자리에 앉아 커트와 염색을 하시던 시어머님이 떠올랐다. 고관절 수술 후 조리를 위해 한 달을 우리 집에 머무르시던 어머니를 집에 돌아가시기 전 날 미장원에 모시고 갔었다. 단정하고 깨끗하게 머리손질을 마친 어머니는 환자에서 건강한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 와 있었다. “어머니. 저희집에 계시면서 불편한것도 많으셨죠.”라는 내 말에 “그만하면 애썼다”라며 진심으로 고마워하시던 어머니와의 미장원 기억은 내 기억창고에 오래 남아 있었나 보다.
미카엘의 미장원 방문은 우리 집에서 열흘을 보낸 손주가 건강하게 엄마와 동생을 만나게 되는 기념의 의미가 있었다. 하나의 과정을 끝내고 다른 세계를 시작하는 중간 정류장이기도 한 것이다. 사랑을 독차지하고 살았던 세상에서 동생을 받아들여야 하는 조금은 커진 가족공동체로의 진입이다.
미카엘은 요즘 무엇을 하든 처음인 날들을 보내고 있다.
(2021년 3월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