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않을까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앞으로 머리핀이나 인형 같은 거 보지 마시고요. 자동차나 드론 이런 거 보세요.”
임신 6개월에 접어든 딸아이에게 오늘 의사는 조언을 했다. 둘째 손주가 사내아이라는 것은 명확해졌다. 초음파 사진인데도 첫째 미카엘과는 다른 분위기가 감지됐다.
미카엘은 태안에서부터 둥글둥글했다면 둘째 라파엘(예정 세례명)은 오뚝한 콧날에서부터 섬세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미카엘은 운동계로, 라파엘은 예술계로.’ 딱 부러지게 정리해 입 밖으로 내어보니 정답을 만난 듯 후련한 기분이 든다.
돌 지난 미카엘을 쫓아다니는 것이 요즘 만만치가 않다. 폭발적인 동력 에너지를 어디서 보급받기에 저렇게 잠시도 멈추지 않고 힘을 낼 수가 있나. 내년이면 아들 손주만 둘이 되는데 배가 되는 에너지를 감당할 수 있을지 살짝 긴장이 된다.
첫딸을 낳고 아들을 낳았던 나는 당시 대세였던 남아선호 사상에 겨우 턱걸이를 했다. 1989년 12월 23일, 첫 딸을 낳은 날은 크리스마스 전야를 하루 앞두고 있었고 그날따라 내가 입원한 병원에서는 산모들이 연달아 아들을 출산하며 성탄을 향한 분위기를 달구고 있었다.
독자였던 시아버님은 38세 늦은 나이에 겨우 큰 아들인 남편을 보았다. 대놓고는 아니었지만 시부모님은 당연 아들 손주를 원했고 때맞춰 임신 8개월이었던 나에게 의사는 “뭐가 보이네요”라는 말로 아들임을 암시했다. 그날 제일 늦게 출산했던 나는 당연 아들일 거라는 확신에 젖어 있었다.
제왕절개 출산이었던 나는 당시의 이야기를 막내 동생에게서 들어야 했다. 그날의 축제 분위기에 당연 아들이어야 하는 명제를 깨고 나는 딸을 출산했고 딸이라는 소리에 그대로 몸이 굳어 버렸다는 시어머니의 모습은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죄인 된 심정이었다. 더군다나 눈치코치 없는 남편은 축하 꽃다발을 사옴으로써 기어이 시어머니의 화를 부채질했다. 그렇게 죄인이 되었던 나는 몇 년 후 아들을 낳아 허리를 폈으니 당시엔 이것만으로도 120점짜리 며느리였다.
지금은 아들 공화국이다. 가까운 친구 손주들이 열에 여덟은 아들이다. 그러니 한국인의 그 끝없는 아들 선호 사상에 삼신할머니도 백기를 든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아들 손주들이 커서 ‘장가나 제대로 가겠냐’는 말에 그때에는 결혼은 희귀한 선택사항이 될 거란다.
아들만 둘이면 엄마는 깡패가 돼야 한다는 험한 말이 있다. 그만큼 육아가 힘드니 행동이 거칠어진다는 표현일 것이다. 주위에서 보건대 아들 둘을 가진 엄마는 일단 목소리가 우렁차다. 사분사분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들들에게 밀리거나 우유부단하지 않는 리더십이 있다.
요즘 내 눈엔 아들 둘 가진 엄마만 보인다. “터울이 얼마나 되냐, 힘들겠다”라는 말을 꼭 하게 된다. 아들만 둘인 6층 새댁은 볼 때마다 감탄이 나온다. 큰 아들을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내려오는 승강기 안에서도 꼿꼿한 허리로 작은 아들을 업고 큰 아들 손을 꽉 잡고 있다. 빈 틈 없는 육아의 자세이다.
언젠가 떼쓰고 울며 따라오던 큰 아이가 아파트 입구가 가까워지자 소리가 팍 줄어들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까지도 6층 새댁은 초연한 얼굴로 아이 울음에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더라는데 알아서 살길을 찾는 아이와 떼쓰는 아이에게 휘둘리지 않는 새댁의 기백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딸아이도 곧 아들 둘의 엄마가 된다. 아들이 하나인 벌써부터 아들 손주의 감정에 희비가 엇갈리는 전형적인 요즘 엄마다.
지난 일요일 산책길에서 아들만 둘인 가족을 보았다. 큰 아이는 엄마 옆에 본드를 붙인 것처럼 엄마와 한 몸이 되어 걸어가고 있었고 네, 다섯 살가량의 둘째는 그 뒤에서 팔랑팔랑 자유롭게 걸어가고 있었다.
“너도 어서 형처럼 엄마 옆에 가서 같이 걸어”라는 아빠 말에 작은 아이는 “그러면 엄마가 힘드실 텐데요”라고 대꾸했다. 존칭에 엄마 상태까지 헤아리는 차분한 말씨에 앞서가면서도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됐다. 성숙한 작은 아이의 감수성에 형 동생이 바뀌었나 싶기도 했다. 엄마의 사랑을 뺏기고 싶어 하지 않는 큰 아이의 애틋한 감정도 전해져 큰 손주의 미래 모습도 겹쳐 보였다.
요즘 아들 손주만 셋인 친구에게서 육아 조언을 듣곤 한다. 아이들이 감정을 표출하지 않고 표현하게 하라고 한다. 제 때 감정을 표현하지 않아 감정이 쌓이면 언젠가 행동으로 걷잡을 수 없이 표출된다는 것이다. 표현과 표출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그때 그때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성숙한 육아를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시대에는 표현의 자유에서는 그다지 자유롭지 못했으니까
“엄마, 성윤이도 크면 방문 쾅쾅 닫고 들어가고 그럴까?” 딸아이가 묻는다. 고등학생쯤 되면 넘치는 에너지로 때로 방문이 부숴지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들만 둘이었던 친구 남편이 주말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 운동장에서 하루 종일 공을 함께 찼던 것이 이제야 이해되기 시작한다. 그 그림 안에 손주 둘과 공을 차는 우리 부부의 모습도 그려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