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레터
어느 순간부터 사람에게 스펙이란 단어가 적용되었다. 마치 상품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상품 스펙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듯 사람도 그 스펙에 따라 분류되는 세상이다.
스펙을 쌓으려 많은 사람이 노력하고 있다. 사립영어유치원, 좋은 대학, 자격증, 외국어 등 자기계발도 결국 스펙 쌓기의 일부인 셈이다.
어려서 돈 안되는 일을 하면 부모에게 혼났다. 철학과와 같은 인문학 계열이나 예술 계열 학과를 선택할 때 부모와의 다툼이 컸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돈이 되는가, 쌀이 되는가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가치 기준이다.
결혼 상대자를 선택할 때도 중요하다. 결혼 생활에 경제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는가는 가장 중요한 결정사항이다.
만약 이런 스펙이 상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하다면 궁금증이 생긴다. 그 스펙이 사라지면 더이상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그렇다면 사랑이란 이름으로 그 사람과 함께 지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스펙 있을 때와 없을 때로 구분된다. 나에게 유익한 가치가 있는가와 없는가로 나뉜다는 뜻이다.
과연 난 배우자가 나에게 가치가 없을 때도 선택할 수 있을까? 휠체어 탄 불구자 아내 곁에 머물 수 있을까?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가 판단하는 기준은 '쓸모 있을 때'가 아니라 '쓸모 없을 때' 제대로 드러난다.
사람이 돈 안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그것을 정말 좋아한다는 의미다. 돈 되는 일도 안하려 하는 데, 돈 안되는 일을 좋아서 한다면 정말 좋아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장자는 '쓸모 있음과 없음'에 대해 사색한 철학자다. 나에게 쓸모 없음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쓸모 있는 것이다. 돈 안되는 데 좋아서 하는 그 일은 나에게 큰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강신주 철학자의 장자 강연을 듣다 작성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