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레터
혜시가 장자에게 말했다. "그대의 말은 쓸모가 없네."
장자가 말했다. "쓸모없음을 알아야 비로소 쓸모에 관해 함께 말할 수 있네. 세상이 넓고도 크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사람에게 쓸모가 있는 것은 발을 디딜 만큼의 땅이네. 그렇다면 발을 디디고 있는 땅만을 남겨두고 나머지 땅을 모조리 파고들어가 황천에까지 이른다면, 그 밟고 있는 땅이 사람에게 쓸모가 있겠는가?"
혜시가 "쓸모가 없지"라고 대답했다.
장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쓸모없음이 쓸모가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네."
- <장자>, 외물 편
어른들은 아이가 무언가를 하면 "그거 하면 쌀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라고 묻곤 한다. 우린 자연스레 쓸모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쓸모의 기준은 나에게 있지 않다. 사회가 제시하는 기준이다. 내 행복과는 무관하다. 자녀가 행복하길 바란다는 부모도 자녀가 행복해서 하는 일보다 쓸모 있는 일을 하길 바란다.
장자는 무용의 철학자라고 불린다. 무용 개념을 획일적으로 정의하기보다 맥락으로 이해해야 한다. 장자는 우리에게 사색할 질문을 던진다. "아무런 쓸모가 없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사랑할 수 없는가? 부모, 배우자, 자녀를 무용으로 사랑할 수 없는가? 바람, 물, 새와 물고기도 무용으로 좋아할 수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