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는 영감이고 퇴고는 예술이다

글쓰기 인문학

by 안상현

글쓰기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 대부분은 좋은 문장을 처음부터 쓰려고 한다. 막상 첫 문장을 쓰기도 전에 키보드 앞에서 한참을 망설인다. 왜냐하면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너무 거칠고, 엉성하고, 어딘가 부끄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완벽한 문장은 없다. 글의 진짜 힘은 초고에서 나오지 않고, 퇴고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초고는 조각가가 처음 대리석을 마주하는 순간과 같다. 그는 완성된 조각상을 상상하지만, 눈앞에 있는 것은 오직 거대한 돌덩이일 뿐이다. 먼저 망치를 들고 큰 덩어리부터 쳐낸다. 그것이 영감이다. 그저 손이 가는 대로, 머리에 그려지는 대로 거칠게 조각한다. 초고는 바로 그 망치질이다. 불완전한 문장들, 주어와 서술어가 맞지 않는 어색한 흐름, 말도 안 되는 결론조차도 그것이 글의 첫 재료이고 출발점이다.


그 다음 단계가 퇴고다. 퇴고는 조각가가 끌을 들고 하나하나 형태를 다듬고, 질감을 살리며, 섬세한 손끝으로 다듬는 작업이다. 이때는 감정보다 논리와 구조가 중요하다. 문장이 제대로 된 자리에 놓여 있는가, 흐름은 자연스러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독자에게 닿을 수 있는가를 따져야 한다. 마치 거친 조각에서 얼굴의 표정을 조각하듯, 한 문장 한 단어를 다듬는다.


또 글쓰기는 정원에 씨앗을 심는 일과도 닮아 있다. 초고는 씨앗이다. 아주 작은 아이디어 하나, 어제 친구와 나눈 대화 한 조각, 새벽에 떠오른 막연한 감정 하나가 초고가 될 수 있다. 그것을 그대로 묻어두지 않고 종이에 옮겨 써야 씨앗은 비로소 심어진다.


하지만 그걸로는 아무것도 피어나지 않는다. 퇴고가 물 주고, 햇볕 들이고, 가지치기하며 돌보는 일이다. 오늘 쓴 문장을 내일 다시 읽어보며 다듬고, 감정이 과했나 싶으면 덜어내고, 논리가 부족하면 문장을 바꾸는 과정이 바로 그 정원 가꾸기다. 글은 씨앗에서 시작하지만, 정성껏 가꾼 뒤에야 꽃이 핀다. 그 꽃을 독자가 발견하고 향기를 느낀다.


글쓰기를 말하기에 비유하는 사람도 많다. 나 역시 동의한다. 초고는 친구와 속 이야기를 하는 것과 같다. 말이 거칠어도 괜찮고, 논리가 비약해도 감정이 앞서면 용서된다. 우리는 친구 앞에서 정제되지 않은 채 내 감정을 털어놓을 수 있다. 초고도 그렇다. 감정이 앞서도 괜찮고, 문장이 울퉁불퉁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내 안에서 나온 진심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그 말을 사람들 앞에서 전달하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퇴고는 바로 그 ‘발표 준비’의 과정이다. 청중이 이해할 수 있게 정리하고, 논리적으로 구성하고, 때로는 잘 보이게끔 다듬기도 한다. 퇴고는 그만큼 독자를 의식하는 작업이다. 초고가 나를 위한 글이라면, 퇴고는 독자를 위한 글이다.


우리는 흔히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감을 잃는다. 쓰다 보면 “나는 글재주가 없어”, “문장이 어색해”라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묻는다. 그 글, 퇴고는 했나요? 대부분은 초고만 쓰고 낙심해버린다. 아직 조각을 다듬지 않았고, 씨앗을 가꾸지 않았으며, 발표용으로 정리하지 않았다. 퇴고가 되지 않은 초고로 글을 판단하지 말자. 좋은 글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가꾼 자의 결과다.


나는 글을 쓸 때마다 내 초고가 너무 부족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 부족함을 인정하고 시작하는 것이 글쓰기의 용기다. 그리고 천천히 퇴고의 끌을 들고 다시 문장으로 돌아간다. 글을 쓰고, 다시 읽고, 다시 다듬는다. 조각하듯, 가꾸듯, 말하듯 그렇게 쓴다. 그렇게 쓰는 글은 언젠가 누군가에게 닿는다. 그것이 글쓰기의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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