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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공리셋 Jul 19. 2021

팀장님 앞에서 멘붕 온 순간

리더에 대한 기대가 가져다준 실망

'공문이 났는데도 팀장님은 왜 아무 말씀이 없으심??'

 

우리에게 아무런 설명 없이 인원감축이 있을 거라는 예고도 없이 공문 보고 알으라는 팀장님 대처.

여기저기 다른 부서의 소문으로 그림을 그려왔던 우리.

타 부서 이동 2명 공문이 났고, 이제 남은 사람 중에 한 명인 나는 찾아갔다.

"공문 난 거 봤습니다, 팀장님"

"어? 공문이 났다고? 어디에?"

....

"어, 그렇네, 그래"

"두 명이 남겨지게 됐는데, 여타 부타 말씀 없으셔서 찾아왔습니다.

남은 인원은 무슨 일을 어떻게 하게 되는 건! 현재 하고 있는 잡다한 일을 계속 가져가는 건지! 단 한 명 휴가라도 가게 되면 한 명이 다는 못합니다"

(사전에 업무 파악 없었고, 몇 명을 보내고 남길지 의논조차 없었고, 윗사람이 그렇게 하라고 했기 때문에! 분명 그렇게 했을 것이고, 중간 조율을 하는 사람이 팀장님인데도 불구하고 모두 일방적인 수용을 했을 것 뻔하고, 평소 우리를 관심 있게 보시지 않으시기 때문에... 말이 예쁘게 안 나왔지만 아주 공손하게 말씀드리려 했다)


"그렇게 일을 감정적으로 대처하지 말고!

다른 직원들은 아침부터 왔다 갔다 움직이며 땀 흘리고 고생하는데... 힘든다는 말 하는 거 아이다! 나도 봐라! 아침마다 이런 거 보고 올리고... 이렇게 앉아서 노는 거 같아도...(어쩌고 저쩌고, 막 무언가를 보여주신다...)"


'뭐지? 지금 이 타이밍에 팀장님 본인 힘드시다는 얘기를 왜? 팀장님이 아침마다 뭘 하시는지 나에게 왜? 지금 누가 감정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거지?'.... 하... 멘붕 온다...


예상치 못한 답변에 지금 내가 뭐라고 말했는지 조차 잊어서 멍 때리고 있었다.

"아니 제가 지금 힘들다는 얘기를 하러 온 게 아니고요..."

"라, 내가 그러니까 그런 거 하나하나 신경 쓰면 인사도 조직관리도 못하게 된다"


'이런 거 하나하나가 업무랑 관련된 일인데, 그럼 누구랑 무슨 얘기를 하라는 말이지?

그냥 주는 대로 받아먹으라는 거?...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하라면 하는거?....'

열정은 없지만 하다보니 잘하게 됐고, 그래서 남겨졌는데

내가 해야할 일이 뭔지 궁금해 하는거가 비정상인건가?...


악순환의 반복이네...휴....현타온다...


AI에 대체된 자리를 불안과 두려움으로 버틴 시간에서 이제는 해방되어,

어떤 새로운 일들로 채워질지! 나름 설렘으로 채워보려 했건만...

남게 되어 행복한 게 될지! 빠르게 다른 부서로 전보되지 않아서 불행하게 된 건지!

그냥 잘한 건지 못한 건지, 잘된 건지 잘못된 건지...

부서의 리더라면, 몇십 년 더 근무해본 리더라면... 그냥 다른 얘기를 해주실 줄 알았다.


아... 정말... 쓸 때 없는 기대를 했었나 보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누구와 하고 있는 거지?'생각 드는 순간 할 말을 잃고,

네, 네, 반복하다가만 다시 돌아왔다.


노발대발하시는 팀장님에게 나야말로 감정적으로 압도당해 한마디 방어도 못하고 나왔다.

'많이 힘드시겠네요,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죄송합니다'했어야 하는거야?!

'이 띵시... 뭔 기대를 갔고 갔던 거야... 으휴...'


똑똑한 관리자는 세 사람 몫을 해낸다는데, 이직까지 직장생활 15년 넘게 해오면서 여러 리더들을 직간접적으로 겪어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아랫사람의 잘못을 너그러이 안아주는 리더 그리고 직원의 말에 귀 기울여 들어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다못해 대신 욕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지만 그건 뭐 양심부재라 생각하지만 가끔!책임감으로 대신 욕은 들어주지만 두고두고 은근히 괴롭히는 사람이 있었다!

욕 듣고 와서 따끔한 충고와 따뜻한 위로를 함께 건네주는 리더가 참 좋았다.

곤란한 일은 네가 알아서 처리하라고 여러 가지 방안만 나열해주는 사람보다, 진심으로 동행해서 가이드해주는 리더가 참 좋았다.


'힘들다고? 내가 더 힘들다!'의 리더는 또 처음이네.


적어도 팩트 기반한 소통은 돼야는 거 아...

사람이 힘들다고 느끼는 포인트 개개인 다르고 직종마다 하는 업무 다른데 그걸 가지고 얘기를 하다니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답변이라 더 말문이 막혔다.

어디부터 얘기를 해야할지 몰라서...


이렇게 해서 남은 두 사람이 미친 듯이 일 잘 쳐내면 아무 일 없이 흘러가게 되고, 일이 안 돌아가서 난리 나서 사고라도 한건 터지면, 일 잘해라 할꺼고! 혹이나 그때! 팀장님이 더 윗사람에게 불려 가면 그땐 내 말이 먹히기라도 하겠다...싶다


답답하구나...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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