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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공리셋 Jul 16. 2021

신경정신과 선생님과 만났다

나만 아는 내 상태

"2016년 이후 처음이시니까 오랜만에 오셨네요"

"아, 네 그때는 육아고민이었고, 오늘은 저 때문에요..."

"네, 말씀해 보세요"

"저... 제가 쓴 글 좀 읽어봐 주실 수 있으실까요?"

"아, 네!"

.

.

.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어서 막 써 내려갔던 브런치 글을 보여드렸다.

읽어 내려가시며 "아...(끄덕)... 아...(끄덕)"

'내가 나를 몰라서 정리했던 글인데 선생님은  것 같은 걸까? 처음 만나는 의사가 한 편의 글을 읽고 내 깊은 속속들이 마음을 읽어낼 수 있다고? 그신(神)이지'


다 읽으시고 핸드폰을 건네주시며...

"음... 이미 글로써 자기 성찰을 충분히 하신 분 같은데... 하하...

글도 참 잘 쓰시고요... 하하하.

제가 무슨 말을 해드리면 좋을지..."

뭐야, 기대했던 답은 안 주시고...


"사전 체크 사항에도(진료실 들어오기 전 사전 질문지가 있어서 30분 동안 체킹 했었다) 큰 우울감이나 문제가 나타나지 않아요"

"아... 저 하루에도 기분이 몇 번씩 오르내리고 가끔 가슴도 두근거리고... 그런데요..."

.

.

.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사람마다 원하는 라이프 스타일이 모두 달라요.

그런데 본인이 힘이 드는 건 원하는 것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갭이 너무 크니까 힘이 드는 거예요.

어떠한 결과를 위한 성취를 목표로 삶을 가져가지 말고, 안정적인 삶을 가져가는 것을 목표로 해보세요.

.....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들 있죠?

지금처럼 갑작스러운 업무환경의 변화라든가, 내가 원치 않았던 사람이 같이 일하게 됐다던가, 그리고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도 변수들이 많잖아요? 이런 상황들은 모두 나에게 방해요인들이 될 거예요.

그런데 그건 다시 말하지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잖아요! 갭을 더 벌어지게 만드는 거죠.

그러니 본인이 너무 힘이 드는 거예요"

.

.

.

머라가 팽그르르... 백퍼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미래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 지금처럼 이렇게 자리를 잃을 위기가 또 올 수 있잖아요"

"뭐가 불안하세요?"

"... 그니까... 그런 거...."

"지금처럼 바쁘게 살지 않았을 때 정확하게 본인을 불안하게 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세요"

.

.

.

정적이 흘렀다.

불안요소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회사에서 잘릴까 봐?'

'아이들이 어긋나게 클까 봐?'

"그냥 제가 원하는 삶의 형태로 살아가고 싶은데요,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그냥 말 끝을 흐렸다.


"환자분이 20대 같으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목표를 정하고 힘 내보라는 방향으로 말씀을 드리겠어요. 하지만 본인은 남편도 있고, 아이도 있고 그리고 잘린 것도 아니고 회사에서 일도 하고 있고

과정이라는 게 있는데 삐뚫빼뚫 지그재그로 나아가는 거지 일직선으로 달려가지는 게 아니라고요.

(아... 자기 계발서에서 많이 읽어서 나도 아는데...)

그래서 지금은 0에서 마이너스만 되지 않게 목표를 다시 잡아보라는 거예요.

그리고! 지금은 아이들이 어려서 그나마 본인이 원하는 곳에 끌어다 앉혀 놓을 수라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조금만 더 커봐요. 지금보다 상황이 더하면 더하죠! 그럼 더 힘들어질 텐데요?!"

.

.

.

진료실을 나오면서 든 생각은

내가 원하는 삶의 형태는 알겠는데,

'이건 불안이라기보다 그냥 내가 원하는 대로 쭉쭉 나아가지지 않는데 대한 짜증의 과부하가 걸린 걸까?'생각이 들었다.

의사 선생님은

'달리기 바빴던 삶을 대하는 태도나 습관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할 때를 알려주시고 싶었던 건 아닐까'

생각도 해보았다.


파도치던 마음 타인의 시선으로 천천히 읽어봐 주시니 좀 진정되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삶의 형태로 방향은 설정해놓돼, 속도를 조금 늦추어 현재를 살아보기로 했다.


요 몇 달 불안했던 정서를 자극적인 음식들로 채웠던 탓에 무섭게 커져버린 내 몸뚱이에게 사과를 전하고 망가진 몸과 마음에 활력을 불어주는 것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


아자!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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