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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공리셋 Apr 05. 2022

내가 '시어머니'처럼 될까 봐?

'투사'라는 단어.

"나 어제 쫓기는 꿈 꿨다"

"당신 본래 꿈 잘 안 꾸지 않아?"

"꾸더라도 기억이 잘 안 날 뿐이지. 근데 어제는 너무 무섭더라 생생하다 "

"혼자 몰래 공포영화보다 잤지?!"


웃고 넘겼지만, 왠지 모르게 걸렸다.

쫓기는 꿈은 주로 심적으로 불안할 때 흔히 나타난다고 알고 있다.

최근에 내가 두 번의 연이은 퇴사를 겪은 후라 그 말이 그냥 넘어가지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결혼 전부터 자기는 맞벌이에 대한 로망이 있다고 말해, '이 사람 완전 비호감인데?'생각했었다.

"평생 네가 놀고먹으라 해도 안 놀 거거든!! 말이라도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라고 말해주면 어디 덧나냐?!!"

연애시절 빈말 못하는 남편 성격 알고,

표현이 서투르지만 속 깊은 남자인 거 알아서 그러려니 했다.


막상 진짜 전업주부가 될 위기에 놓이면서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우리 애들 더 잘 키우면 돼지'라고 말해주었다.

남편이 평소 해오던 말은 아니라 어색했지만...

굳이 깊게 되새겨보지 않았다...


남편이 맞벌이에 대한 로망이 생긴 거에 대한 이유는 오래전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맞벌이라기보다 자기 일을 하는 여자였다.

첫째 아이를 임신하고 초기에 입덧이 심해

"나 그냥 이참에 회사 다 때려치우고, 집에서 태교하고 애 키우면 안 되겠나?"

...

"나는 우리 엄마의 삶이 그렇게 행복해 보이진 않더라"

이 무슨 뚱딴지같은 대답이지?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으니

"그냥 좀 참고 나가서 일하고!"

표현방식은 거지 같아도, 남편의 언어를 재해석해내는 몸 쓸 능력이 있어서 그냥 넘겼다.

입덧하느라 새벽에 잠 못 자고 화장실 들락거리고 아침에 건건히 일어나 출근하는 걸 보며 본인이 해줄 수 있는 건 없고, 집에서 쉬라고 하면 와이프가 그 말을 덥석 받아먹을까 봐 불안하고...


그 말을 덥석 받아먹으면...

 자기 엄마처럼 될까 봐...

그런 본인의 마음이 모두 함축되어 나온 말이었다.


시아버님이 사업을 하시는 동안 시어머님은 퇴근 후 돌아오신 시아버님의 스트레스를 다 받으시고, 없는 살림 아껴서 생활하시고, 친인척들을 찾아다니며 아버님 대신해 보증서 달라고 하시고...

시어머니의 삶의 모토가 가족 안에서 '희생'이었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남편이 보는 엄마의 노후 삶이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 않은 거였다.

보상심리로 자식들과 며느리에게 자꾸 바라게 되고,

그렇고 보니 가족 간 트러블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그러다 보니 본인도 다치고...

중간에서 남편도 머리로 이해하는 엄마의 모습과 마음이 대하는 엄마가 다르고 보니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나'를 이해하기로 마음먹은 이후로 심리학 관련 책이나 영상들을 많이 찾아보게 되었다.

이런 남편의 말들을 이해할만한 심리학 용어를 발견했다.


투사(投射) : 자아에 의해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욕망이나 동기가 타인에게 귀속화(歸屬化)되는 것

집안일만 하며 희생하던 행복해 보이지 않던 부정적인 인물(엄마)에 대한 기억이

내 와이프는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거였다.


세상에는 수많은 워킹맘들이 있는데, 아이를 다른 사람 손에 맡기고 직장을 다니는 동안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분명 아이들이 잘 크고 있는대도 불구하고...

자꾸 내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도  '투사'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유년시절 엄마가 딱 1년 직장생활을 하셨었는데 난 당시 1년이 10년 같았기에 그 말을 믿지 않았었다.

하교 후 빈집에서 엄마 퇴근 시간만 기다리며 시계를 들여다봤던 기억, 혼자 역할 놀이했던 기억, 오빠라고는 있어도 동생 두고 나가 노느라 혼자 심심해했던 기억, 누가 벨이라도 누르면 놀라서 숨었던 기억...


유년시절 별로 기억나는 게 없어야지 행복한 시간을 보냈었을 확률이 높은 거라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불안도가 높은 기질의 나에게 엄마 자리 1년의 부재 기간 유년시절만 생생한 걸 보면 나에게는 꽤나 무서운 경험이 되어 우리 아이들에게 투사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되었다.


랬거나 저랬거나 남편의 그런 마음을 좀 더 이해할 수는 있었다.

결국 남편이 스스로 극복해 나가야 할 부분이기에...

너무 애쓰지 않기로 했다.


좀 미안한데 고마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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