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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공리셋 Feb 27. 2022

내 마음이 폭발했다

시아버님의 호통

결혼 초기에는 시어머니로 인해서, 후반기에는 시아버지로 인해서 상처받고 살아가는 12년 차 큰며느리다.

새삼스레 나를 소개하고 싶은 건 10년이 지나도 '가족'안에서 며느리는 어떤 위치와 역할을 하는 건지 의문이 없어지지 않아서이다.


도장깨기 1탄.

열명(동서네 네 가족, 우리 네 가족, 시부모님) 생일날 열 가족이 모이지 않기.

며느리 둘이 다섯 번씩 나눠서 생일상 차리지 않기가 맞겠다.

일하는 큰며느리(나) 생일상에 미역국 찰밥은 친정엄마의 몫이었기에.

식당을 가지 못하게 된 코로나로 안 하게 될 줄 알았으나 무서운 가족문화를 깨부술 순 없었다.

가족은 4명이 아니라 10명이라는 생각으로 인해서.


1탄 글을 직전에 썼는데 시아버님이 별 연락이 없으셔서 도장깨기 성공한 줄 알고 있었다.

2주가 지난 지금 글을 쓰는 건 성공한 게 성공한 것이 아니라, 시아버님께서 한마디 하시려고 벼르고  계셨던 모양이었다.

 

2월 첫 주 설 연휴를 4박 5일 열식 구가 함께 지냈고   2월 11일이 남편 생일이었지만 2월 25일은 시어머니 칠순 생신으로 2월 이벤트의 연속이라 코로나로 어차피 식당도 못 가니 남편 생일 생략하고 25일 시어머니 칠순상만 차려서 함께 하자고 제안했었다.


날인 24일 갑작스레 시아버님의 호출이 동서에게로 왔다.

둘째들은 유치원에 보낸 후고 첫째들은 방학이라 집에서 엄마들과 실랑이 중이었는데 동서에게 호출이 와서는 형님과 함께 점심을 먹자고 하셨다고 했다.


매번 나에게 콜을 하셔서 동서를 불러보라고 하시는데 오늘 타깃은 남편 생일을 그냥 넘어간 '나'인가 이런 직감은 보통 잘 맞아떨어진다.


엄마들은 집에 있는다고 있는 게 아니다.

아이가 방학이니까 밥 차려, 숙제 봐줘, 하루가 더 바쁘게 돌아간다.

점심식사 콜을 받아서 급하게 하고 있던 숙제도 그만하게 하고 데리고 나가는데... 이렇게 일상이 바쁘게 돌아갈 때 가족 어른의 갑작스러운 호출은 불편하지만 거절할 수도 없다.

10살이 된  아들은 "지금 나가야 한다고요? 숙제 다 못했는데""어쩔 수 없지 그냥 가져가""선생님이랑 다 해가기로 약속했는데""그러게 어제 좀 하지!"

물론 오늘 호출이 있을 줄 알았다면 어제ㅜ시켰겠지...

괜히 아이한테 짜증이다...


아이들 둘, 며느리 둘, 시아버님이 함께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다.

아버님이 어깨가 불편하셔서 2주 정도 병원을 오가며 고생을 하신 모양이었다. 물론 그 내용도 동서에게 어제 들었다.

'안부 인사하려고 부르신 건 아닐 텐데...'

어제 저녁에 시어머니로부터 본인 생일상 필요 없다는 통보를 받았고 '아! 무슨 일이 있구나' 직감했다. 호출과 관련이 있겠구나 막연히 추측만 했다.


우리남편에게 " 내가 무슨 생일상이고! 다 필요 없다"고 시어머니가 얘기 했다고 했다. 휴...어디부터 꼬인건지...무슨일이 있었던건지, 어쨌든 추측만 가득 안고 만나러 나갔다.

분명 낮에 동서랑 시어머님이 통화할 때는 집에 있는 갈비 가져다 쓰라고까지 하셨는데 저녁시간 저런 말씀은 분명 시아버님과 시어머님 사이의 다툼이나 무슨 일이 있을 거라 예상했다.


관련된 얘기를 하시겠지 생각하며 음식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는데 "그래,  내일 너희 시어머니 생일은 하나?"서왈 "네, 당연히 해야죠."

"내가 오늘 보자고 한 거는, 첫째 놈(우리 남편) 생일 때도 뭐 생일이 의미 있냐고 안 한다고 해서 시어머니 생일은 뭐하러 하냐고 내가 어제 뭐라 했다. 그래서 아마 너네한테 시어머니가 화냈을 거다"


나의 예상이 맞았다. 두 분이 다투셨고 자식들에게 불똥이 튀었다.

남편 생일 열명이 모여서 하지 않은 것에 기분이 나빠 계셨던거였다. 내가 이 상황에 입 다물고 있을 수 없었.

"남편이 생일 의미 없다고 표현한 건 저 생각해서 그렇게 말한 것 같은데, 제가 제주 4박 5일 다녀온 여독도 풀리지 않았고 너무 피곤해서 시어머님 생신도 남아 있고 하니까 이번 당신 생일은 그냥 넘어가자고 말했어요"

"그럼 솔직하게 피곤하다 말하지, 아들은 생일이 무슨 의미가 없다고 하니!"

...

(솔직하게 말했어도 섭섭해하셨겠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 큰며느리 니도 내가 어깨가 아프단 소리 들었을 거고 했을 건데 2주 동안 시어머니한테도 안부전화도 없고, 전화 좀 하고 그래라"


2월 6일 마지막으로 열 가족이 만나고 24일까지 화 한 통 안 한 것 화근이었다.

게다가 시아버님 어깨가 아픈 건 안부전화를 안 하니 당연히 몰랐고 동서가 어머님 생신상 안 하신다는 얘기 하느라 어제서야 듣게 됐으니 딱히 할 말 없었다.

애들이 방학이고 일상이 바쁘다보면 문안인사 하듯이 못하고 까먹기도 하고 고작 2주가지고 ...10년차 며느리에게 한마디 하시고 싶은건가..

"아버님 어깨 아프신선 제가 어제서야 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안부인사 문안인사...

너네도 바빴겠지...라고 이해해주시길 바라는건 사치였던가...


13년 다닌 회사를 퇴사하자마자 설 연휴가 와서 제주로 열식 구가 다녀온 후라, 게다가 3월부터 새로운 분야에 스스로는 도전이자 출근이라 아이들 하교 후 학원 스케줄 짜고 상담 다니느라 , 나를 챙기느라 그냥 엄마 노릇하느라...

퇴사 후 2주가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른 채 시간이 흘러버렸는데 안부전화 얘기에 사실 별생각이 없었다.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죄송합니다"는 아니었다.


결혼초부터 전화 안 한다고 뭐라 하셨으니 나도 2주에 한번 전화 또는 찾아뵙기를 나름 규칙으로 세웠지만, 25일이면 또 만남 예정이니 전화 안 하고 마음 놓고 있다 보니 , 아니, 일상이 너무 바쁘고 보니 14일을 넘기긴 했네...

휴...


"너희도 결혼 10년이 넘고 했으면 서로 잘 알잖아. 우리가 여태 너희들(며느리 둘) 손님처럼 대했잖아(여기서 1차 가격). 더 잘해라(2차 가격)"


여기서 내가 평소처럼 머리 숙여 "네"라고 대답했어야 했다.

그런데 욱하고 말았다.


"아버님, 저희도 최선을 다 하고 있어요, 생일도 그래요. 제가 피곤해서 안 하고 넘어갔지만 작년 동서 생일도 본인 생일상 다 차렸잖아요. 본인은 쉬면서 하고 싶은 거 하는 게 생일 아닐까요. 아버님 어머님 보자고 하시면 웬만한 급한 약속이 아니면 취소하고 만나고... 이런 소소한 것들이 서로 배려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예요"

아버님  "그럼 안 만나면 되겠네"

동서 왈 "아니 그렇게 모 아니면 도로 말씀하시지 마시고요"

"전화 한 통 하는 게 힘드나? 그 얘기했다고 이래 대드나?"

"전화드려요. 이번에는 제가 너무 바빠서 그랬고요... 왜 어머님 말씀만 듣고 그러세요"

어머님이 큰 며느리 전화 없다고 아버님께 말했던 모양이었다.

그동안 어머님의 뒤통수에 여러 번 당했던지라 순수 어머님 말만 듣고 우리를 혼내러 오셨나 싶어 나도 이미 감정이 앞서가고 있었다.

"큰며느리 니 그렇게 안 봤는데, 이제 보니 참 못됐네"


결혼 12년 차에 나는 못 뗀 며느리 되었다.

나의 욕구나 힘듦을 참아가며 오랜 시간 애써온 내가 듣게 된 말이 이건가...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어른이 말하면 "네"하고 듣고 있었어야만 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어른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방식대로 잘해주셨을 테고...

 방식이 힘들었을 테고...

말했으면 서로 오랜 시간 쌓이지도 않았을 것을...


더 잘할 자신이 없어서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말대꾸했던  결국 못 뗀 며느리가 되었다.


빈말이라는 걸  못하고,

짓말도 못해서,

상대가 듣기 싫어하는 말 못 해서,

거절 못해서,,,,,


중요한 건 이 모든 상황을 10살이 된 아이들 둘이 보고 있는 거였다.


"큰엄마 할아버지한테 혼났어"

"엄마랑 숙모 vs 할아버지 싸움 났어"


두 아이의 보는 눈은 조금은 달랐만...

싸웠다고 보고 있는 우리 첫째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오후 3시에는 새로 일하게 될 곳에 원장님과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뒷수습을 해야 하는데 감정이 복받쳐 꾸 눈물만 흘렀다.


나름 최선을 다하며 지켜온 큰 며느리라는 역할과 어깨 짐이 얹힌 채로 지나온 시간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었다.

시어머니가 삼삼오오 모여 산에 가면 남들은 자식들 자랑하는데 우리 자식들은 자랑할 게 없더라는 소리,  지금보다 더 잘하라는 소리...


언제까지...


지금 우리는 자의 역할 늘 다하고 있다고 생각는데,

어른들의 욕구 갭은 결코 줄어들 수 없다는 생각 하니, 이 심심찮게 터지는 힘든 여정은 끝나지 않을 것만 같해지기 시작했다.


좋은 감정. 좋은 생각이 오래 남으면 좋을 텐데 왜 인간은 부정적인 감정이나 기억만 오래 남는 것일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둘러싸인 창살 없는 감옥 같은 깨부수는 건...

현명한 길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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